‘레전드 세터’ 출신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 “이다영 성장 지켜보면서, 보람느낀다”
한국 여자 배구대표팀 주전 세터로 발돋움한 이다영. 사진=이영미 기자
[일요신문] 20일 막을 내린 2019 FIVB(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대회. 이탈리아 출신의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과 함께 VNL 5주의 여정을 마치는 동안 가장 눈에 띈 선수는 세터 이다영(23·현대건설)이었다. 이다영은 유럽, 중국, 미국, 유럽을 거쳐 한국에서 치른 5주차 경기에서 강행군을 펼쳤고 힘든 여정을 보내면서도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라바리니 감독은 빠른 토스를 바탕으로 한 공격 배구를 지향하는 스타일. 높은 토스보다 빠른 연결을 통해 레프트에 편중되지 않고 라이트, 센터 등에 고른 배분을 주문한다. 세터 이다영은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라바리니 감독 스타일의 배구를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배우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라바리니 감독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 배구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배우는 재미가 커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외국인 감독님과 대표팀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광이었다. 감독님으로부터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미숙한 점이 많아 감독님의 요구 사항이 상당히 많았지만 따로 불러서 설명해주고 잘 이끌어주셨다. 감독님의 주문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연습했던 부분이 경기할 때 잘 배어나지 않는 것 같아 조금 답답했다.”
이다영은 라바리니 감독이 강조한 부분이 다 기억에 남지만 그중 볼에 스피드를 줘 모든 공격수를 활용하라는 내용은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라바리니 감독은 상대 서브를 받아낸 뒤 세터가 빠르게 공격수에게 연결해주는 걸 강조하는데 이다영의 기억 속에는 지난 한일전에서 어느 정도 감독의 요구 사항들이 충족된 플레이가 나왔다고 본다.
“5주차 첫 상대팀이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그 경기에서 유독 많은 실수를 범했고, 경기도 1-3으로 패했다. 이후 한일전이 열렸는데 경기 직전 (김)연경 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 동안 (김)연경 언니, (김)희진 언니들이 정말 잘해줬다. 내가 부담을 가질까봐 격려도 많이 해주셨고, 워낙 뛰어난 공격수라 토스하는데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연경 언니도 잘 때릴 테니까 공을 편하게 올리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이다영은 김연경, 김희진 등 대표팀 공격수들이 자신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 부족한 면이 많다고 인정하는 이다영한테 대표팀 베테랑 선수의 조언과 격려는 큰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작용한다.
이다영은 지난 19일 일본전을 잊지 못했다. 벨기에전 첫 승 이후 9연패를 기록했던 대표팀은 충남 보령체육관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세트스코어 3-0(25-18, 25-18, 25-23)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세계 랭킹 6위인 일본을 상대로 이룬 완벽한 승리라 더 의미가 컸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를 마치고 실수한 내용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아픔이 컸는데 일본전을 통해 그 아픔이 많이 해소됐다. 특히 배구장을 찾은 한국 팬들의 뜨거운 응원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외국에서 경기할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팬들의 응원에 선수들이 힘을 냈다.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다영이 성장을 거듭하며 대표팀 주전 세터로 인정받기까지에는 묵직한 성장통이 존재한다. 그중 현대건설에서 레전드 세터 출신인 이도희 감독을 만난 건 ‘신의 한 수’. 이다영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감독으로부터 배구를 배우는 상황에 감사한 마음을 나타냈다.
“다른 분도 아닌 이도희 감독님으로부터 직접 배구를 배우는 상황에 감사할 따름이다. 감독님이 높은 타점을 위해 점프 토스를 주문했고, 오전, 오후, 야간으로 하루 세 차례 훈련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나를 전담해서 가르쳐주셨다. 수만 번 점프하면서 공을 올렸던 것 같다. 당시 ‘배구에 미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고된 과정 속에서 조금씩 공격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도희 감독이 현대건설을 맡게 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이다영을 주전 세터로 성장시키는 과제였다. 이 감독은 이다영의 근성과 배우려는 열정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영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지도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면서 “김사니(은퇴)가 화려하지 않지만 정확한 토스의 테크닉을 자랑한다면 이다영은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이다영의 정확도가 살아났고, 화려함과 정확도가 가미된 점프 토스는 이다영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6월 30일 다시 소집되는 대표팀 일정을 앞두고 잠시 부모님과 함께 짧은 휴가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하는 이다영의 꿈은 도쿄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