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구성 협상 유리한 고지 선점 포석…여야 관계 경색으로 ‘지각 국회’ 우려도
5월 26일 제21대 국회 원구성 논의를 위해 만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 사진=이종현 기자
21대 국회 본격적 원구성 협상에 앞서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강공으로 나섰다. 18개 상임위원장 전석을 맡아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5월 27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직후 “21대 국회는 민주당이 절대적이고 안정적인 다수다. 국회를 책임지고 운영해가라는 국민의 뜻이기 때문에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고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사무총장은 “13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여야 간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나눠 갖는 것이 관행화됐다. 이는 절대 과반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합의 없이 결정이 내려지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임위원장을 나눠가지며 국회를 다수결이 아니라 합의제로 운영했던 것”이라며 “13대부터 20대 국회까지 운영 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 발목잡기와 동물국회, 식물국회 등 그릇된 관행을 혁파하지 못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해찬 대표도 힘을 보탰다.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21대 국회는 잘못된 관행으로 얼룩진 잘못된 20대 국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관행을 근거로 한 야당의 논리와 주장 행태에 대해 우리 당 입장에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입장은 5월 26일 김태년-주호영 첫 원내대표 회동 이후 미래통합당 측이 “상임위원장 정수는 11 대 7로 정해졌다”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 이에 대해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를 없애라고 하라. 민주당으로 다 채워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올 수 있는 배경은 177석이라는 의석에 있다. 국회법상 민주당 주장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표결을 통해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5조는 ‘국회의원 총선 후 첫 임시회는 의원 임기 개시 후 7일에 집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어 48조는 ‘상임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본회의에서 선거한다’고 정한다. 그 시점은 총선 후 첫 집회일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하라고 돼있다. 즉 원칙대로면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되면 6월 5일 첫 집회를 하고, 6월 8일 안에 본회의에서 선거로 상임위원장을 정해야 한다. 그럼 민주당이 177석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올 수도 있다.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5월 28일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러한 국회법상 일정을 언급하며 “‘일하는 국회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민주당은 국회법이 정한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코로나19 극복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야당 발목잡기에 시간을 끌 수 없다며 법사위와 예결위 위원장직은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통합당은 의석수도 줄어든 상황에서 이들 위원장직까지 내주면 공룡 여당에 대한 견제카드가 없다며 ‘사수’를 부르짖는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여야 의견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협상이 늘어져 국회 개원이 이전 국회 때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국회 원 구성에 평균 41.4일이 소요됐다. 14대가 125일로 가장 길었고, 18대는 88일, 19대 40일, 20대 14일이 걸렸다.
민주당은 총선 전부터 ‘일하는 국회’를 강조해왔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개원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하며 국회법이 정한 시한인 6월 8일까지 상임위원장을 선출해 개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표결 카드를 꺼내든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가져가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길 거라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싹쓸이 카드를 꺼내 보임으로써 야당과의 원 구성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올 수도 없고, 독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석수만큼 상임위원장을 나누는 것이 맞다”며 “법사위와 예결위 등 핵심 상임위원장은 압도적 다수 정당이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는 협상의 기술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당도 결국 민주당 협상안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의 주장은 법사위와 예결위를 받기 위한 협상용 카드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표결로 상임위원장을 다 가져가면 21대 국회 초반부터 파국으로 갈 수 있어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통합당은 힘의 논리에 따라 거부할 명분이 없다.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받아 국회 정상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 결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6월 8일까지 원 구성 협상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법사위와 예결위 외에 반드시 위원장직을 사수하려는 상임위가 어딘지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21대 국회의 전반기 2년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와 함께한다. 따라서 힘을 주는 상임위를 보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방향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무위는 재벌개혁, 국토교통위는 부동산 문제, 교육위는 사학비리 등 어느 위원장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 후반기 정책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다수당의 ‘상임위원장 독식’ 주장은 12대 국회 이후에도 있긴 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통합당 전신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과반을 넘기자,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갖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려 했다.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야당에 상임위원장을 줘도 국정운영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국처럼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가져가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에 민주당은 ‘가난한 야당론’을 내세우며 들고 일어섰다. 노영민 당시 민주당 대변인(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의회 독재를 꿈꾸는 것입니까. 다수당이 상임위를 독식했던 것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이었던 12대 국회까지다”라며 “99마리 양을 가진 부자 여당이 100마리를 채우기 위해 가난한 야당의 1마리 양마저 빼앗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