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3일
29일 방송되는 KBS ‘다큐멘터리 3일’은 626회는 강원 인제 곰배령 72시간을 담았다.
청초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린 비밀의 숲, 곰배령. 곰배령은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하는 점봉산 남쪽 자락 해발 1164m의 넓은 초원 지대이다.
사계절을 따라 다양하게 핀 야생화를 만나볼 수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한반도 자생식물의 20%인 약 850여 종이 서식한다. 점봉산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구역, 산림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보존 가치가 높은 천연 원시림이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봄 개장이 연기되다 5월 초에 첫 문을 열었다.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이 우거진 강원 인제 곰배령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얼레지꽃, 큰앵초, 미나리아재비, 바람꽃, 처녀치마 등 영롱한 꽃잎을 반짝이는 야생화는 노루와 숨바꼭질하고 1급수에서만 사는 열목어가 작은 폭포를 뛰어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펄떡인다.
점봉산의 주인은 이곳에 사는 동식물들이다. 이들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점봉산 탐방 시간은 철저히 관리된다.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입산할 수 있고 오후 2시부터 하산해 4시까지는 산을 비워줘야 한다.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받는 탐방객은 하루 900명으로 제한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탐방객들은 설레고 들뜬 모습으로 자연을 만끽한다.
숲 해설사 동료들은 다함께 야생화를 발견하며 뛸 듯이 기뻐하고 중년 부부는 빗길을 서로 챙기며 깊어진 애정을 확인하고 정상에 오르자 신난 다섯 명의 노년이 개구쟁이 소년으로 변신한다.
곰배령의 사계절이 모두 다른 풍경인 것처럼 일상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어른이’가 되며 각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
비록 악천후로 원했던 풍경을 보지 못해도 ‘가을에 다시 오면 된다’고 다짐하며 내려가는 탐방객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점봉산 산림생태관리원들은 탐방객 안전을 관리하고 생소한 야생화를 알려준다. 매일같이 4개 조가 교대로 정상까지 왕복하며 가끔 꽃에 반해 지각한 탐방객들이 등산을 마칠 수 있게 돕곤 한다.
틈틈이 직접 숲 곳곳을 헤치고 들어가 야생화를 채취해 압화 표본을 만든다. 생태관리센터 강남지 행정원은 ‘야생화는 그 꽃을 알고 나면 보인다. 가까이서 봐야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이 야생화’라며 야생화 발견 비법을 전수한다.
해발 800m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강선마을. 이곳에서 직접 펜션을 짓고 운영 중인 김철남 사장은 10년 전 도시에서 하던 사업을 과감히 청산하고 내려왔다.
배수관을 직접 날라 설치하고, 공산품 구매는 기다렸다 몰아서 하는 것은 기본. 배달 음식은 당연히 없고 택배도 직접 가서 가져와야 하는 동네. 이러한 불편함이 있어도 김철남 사장을 사로잡은 강선마을의 매력은 단연 ‘자연의 맛’이다.
직접 기른 곰취와 취나물, 버섯이 그날 저녁 밥상 위에 올라가고 갖가지 담금주로 하루의 고단을 털어내어 버리는 그 맛. 천천히 기르고, 냄새를 맡고, 묵혀야 느낄 수 있는 그 맛 덕분에 이들은 조금 불편해도 행복하다.
점봉산 아래 진동 2리는 강설량이 많아 설피를 신고 다녔다 해서 ‘설피 마을’이라 불린다. 원래 화전민들이 살던 이곳은 지금은 하나둘 마을을 떠나 남은 원주민이 몇 없다.
어린 시절 약초를 캐어 팔던 박태수 씨는 30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산마늘’ (명이나물) 품종 재배에 성공했다. 눈물에 젖은 옥수수밥을 입에 넣으며 그는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녀 박은정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생들 밥을 해주며 읍내에서 어렵게 공부를 마쳤다. 이제 산마늘은 지역의 대표 특산물이 될 정도로 성공했지만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많아 서운한 딸.
과연 부녀는 그동안 말 못 한 서로 간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천상의 화원,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곰배령에서 펼쳐지는 사람과 자연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공개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