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팝펀딩’ 연체율 95% 부도 위기…온투법 시행 앞두고 활성화 아닌 ‘규제’ 무게
지난해 11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팝펀딩 파주 물류창고를 직접 방문해 한 말이다. 업계에서 그 조상 격으로 꼽히는 ‘팝펀딩’은 2007년 설립된 P2P 업체다. P2P 대출은 온라인으로 채무자와 채권자를 바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P2P 대출이 사람들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린 건 2015년 이후다. 2007년 설립된 팝펀딩은 10년 정도 앞섰다고 평가된다. 팝펀딩은 흔히 P2P 업체들이 취급하는 신용 및 부동산 담보대출 외에도 음악, 공연, 영상 등 동산 담보를 특화해 재미를 봤다. 특히 팝펀딩은 홈쇼핑 대출 상품이 높은 호응을 이끌며 금융 혁신사례로 꼽히게 됐다.
1세대 P2P 업체였던 팝펀딩이 연체율 95%를 기록하고 있다. 연체액은 1200억 원을 넘었다. 사진=팝펀딩 홈페이지
하지만 업계 선구자이자 금융위원장이 직접 칭찬한 팝펀딩이 최근 부도 위기에 몰려 있어 P2P 업계에 공포감이 느껴지고 있다. 한 P2P 업체 관계자는 “13년을 넘게 버텨온 팝펀딩마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업계 전체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팝펀딩이야말로 갖은 풍파를 넘었는데 이번에는 어렵다는 분석이 시간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팝펀딩의 연체율은 95%를 넘어섰다. 고객에게 줘야 할 돈을 지급하지 못하는 거래가 95%에 달한다는 건 P2P 업계에서는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체율 95% 업체에 누구도 신규 투자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팝펀딩이 도산 위기에 몰리면서 P2P 업계에서도 공포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P2P금융을 하나의 금융산업으로 인정한 국가다. 그 기반이 되는 법이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이다. 이 법이 지난 3월 30일 국회를 통과했고 8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제화를 시도하려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P2P 시장이 워낙 커졌기 때문이다. P2P 시장정보업체 미드레이트에 따르면 2017년 말 1조 6820억 원이던 국내 P2P 누적 대출액은 6월 3일 기준 10조 3250억 원을 돌파했다.
최초 온투법은 P2P 시장을 금융산업으로 인정하고 활성화하려는 분위기에서 초안이 나왔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시행을 앞둔 현재 분위기는 초기 분위기와는 정 반대로 이 법이 P2P 규제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행을 앞둔 온투법의 규제 부분이 업계 예상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온투법 핵심 내용은 이렇다. 먼저 P2P 업체 등록에 대한 요건을 신설했다. 기존 금융업 수준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갖춘 경우에만 P2P 업체로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사기 등 범죄가 의심되어 소송‧수사‧검사 등이 진행 중인 경우 등록 심사를 보류하도록 했다. 기존에 영업 중인 P2P 업체도 일정 유예기간 후 8월 말까지는 같은 요건을 갖춰야 한다.
P2P 업체에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연체율도 일정 기준 이상 높아지면 업체에 영업방식 제한이나 공시 의무 등 규제를 가한다. 연체율 10% 초과 시 새로운 연계투자를 제한하고, 15% 초과 시 경영 공시, 20% 초과 시 리스크 관리 방안 마련, 보고 등의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지나친 고위험 상품도 플랫폼에서 취급할 수 없게 됐다. 다수의 대출채권을 혼합한 구조화 상품, 가상통화, 파생상품 등을 담보로 한 연계대출, 대부업자에게 다시 대출을 내주는 방식 등은 제한된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P2P 업체가 대출 규모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준비금도 준비하고 폐업 시에도 유지하도록 했다. 투자자의 투자 한도도 축소했다. 개인 투자자의 경우 P2P 전체 투자 한도를 3000만 원, 부동산의 경우 1000만 원으로 제한했다. 이미 3000만 원 이상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는 신규 투자가 제한된다.
당초 P2P 활성화 대책이 될 것으로 보였던 온투법이 규제안으로 급변하게 된 게 팝펀딩 때문이란 건 P2P 업계 공공연한 얘기였다. 한 중소규모 P2P 업체 관계자는 “솔직히 진실은 모르지만 업계에서는 금융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칭찬했던 팝펀딩이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돈다. 금융위원장이 큰 망신을 당했기 때문 아니냐는 추측이다”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규제안을 두고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의견과 대부분의 P2P 업체가 고사하리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전문 P2P 투자자는 “10% 연체율 이상인 업체는 수두룩하다. 메이저라고 하는 업체들도 연체율이 10%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또한 투자자 한 명당 투자 제한액이 3000만 원인데, 이건 너무 적다. 결국 전체 파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 투자자는 “제1, 제2 금융권에 기댈 수 없어 P2P로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도산하면서 돈을 못 갚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시기에는 P2P 투자에 신중해야 하는 건 맞다”면서도 “규제안으로 높아진 기준과 전체 시장 파이가 줄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메이저 업체도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아직 코로나19 사태가 시장에 충격을 주기 전 상황에서도 P2P 업계 연체율은 올라가고 있다. 미드레이트 분석에 따르면 2017년 P2P 업계 연체율은 5.5%에서 2020년 6월 3일 현재 16.78%까지 치솟았다. P2P 업계가 10조 원 규모 시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연체된 돈만 1조 6700억 원에 달하는 셈이다.
앞서의 중소규모 P2P 업체 관계자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P2P 업체가 사기치고 감옥에 간 사례가 너무 많다. 규제안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은 맞다”며 “차라리 이번 규제안이 자정작용을 해 저질 업체들이 정리되는 기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