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방송법 지키려면 합병·매각이 해법…태영 “SBS 매각 계획 없다”
지난 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SBS미디어홀딩스의 대주주 변경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태영그룹 지주사 체제 전환에 파란불이 켜졌다.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사진=박은숙 기자
하지만 태영그룹은 SBS 자회사 개편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방통위가 SBS미디어홀딩스 최대주주 변경 조건으로 6개월 내 주식 소유 위반 해소 방안 제출을 태영그룹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태영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지배구조는 ‘TY홀딩스→SBS미디어홀딩스→SBS’로 이어지며 SBS는 TY홀딩스의 손자회사가 된다. 그런데 SBS 자회사 12곳 중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3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태영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SBS는 자회사들에 대한 지분을 100%로 늘리거나 매각해야 한다.
#SBS미디어홀딩스·SBS 합병해야 자회사 유지 가능
방통위가 올해 말 예정된 SBS 재허가 심사에서 SBS 자회사 개편 이행 실적을 반영할 계획이기에 태영그룹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더욱이 일부 SBS 자회사는 지분을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일례로 SBS가 지분 40%를 가진 광고판매대행사 SBS엠앤씨의 경우 방송광고판매대행법상 방송사는 광고판매대행사 지분 4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기에 추가 지분 취득이 불가능하다. 또 KBS·MBC와 미국에 합작 설립한 KCP나 SK텔레콤·KBS·MBC와의 합작법인 콘텐츠웨이브(웨이브 운영법인)의 지분을 100%로 늘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TY홀딩스와 SBS미디어홀딩스를 합병하거나 SBS미디어홀딩스와 SBS를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SBS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2008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됐고, 태영건설은 당시 보유 중이던 SBS 지분을 SBS미디어홀딩스에 넘겼다.
SBS미디어홀딩스를 합병하면 SBS 구성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1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SBS 노조·위원장 윤창현)는 태영그룹에 SBS미디어홀딩스와 SBS의 합병을 요구한 바 있다. SBS미디어홀딩스의 다른 자회사들이 SBS가 제작한 콘텐츠로 수익을 벌어들여 SBS의 수익이 유출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사측과 방통위의 반대로 SBS미디어홀딩스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SBS미디어홀딩스 합병을 반대했던 태영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이유로 합병을 추진하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SBS 노조 관계자는 “SBS미디어홀딩스 합병을 하지 않기로 한 후 SBS는 사업구조 정상화를 위해 800억 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해 SBS콘텐츠허브(당시 SBS미디어홀딩스 자회사)를 인수했다”며 “SBS미디어홀딩스와 SBS가 합병 수순을 밟을 것이었으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SBS콘텐츠허브를 인수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어 “TY홀딩스와 SBS미디어홀딩스가 합병하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며 “당시 사측이 SBS미디어홀딩스 합병을 반대한 이유가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회사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법 위반 해소를 위해 SBS미디어홀딩스와 SBS를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을 준수하더라도 방송법에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 서울 양천구 SBS방송센터. 사진=최준필 기자
SBS미디어홀딩스와 SBS가 합병해 공정거래법을 준수하더라도 방송법에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 현행 방송법상 자산 규모 10조 원 이상 대기업은 신문사·통신사·지상파방송사 등 언론사 지분을 10% 이상 가질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태영그룹의 자산 규모는 9조 7000억 원이다. 2018년 말 태영그룹 자산 규모 8조 3000억 원에 비해 1조 원 이상 늘어나는 등 자산이 늘고 있어 조만간 10조 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태영그룹 입장에서는 SBS 매각 싫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한편에서는 아예 SBS 매각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김현용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그룹이 미디어 사업에 대한 지배력을 잃고 싶지 않다면 비주력 자산 등을 매각하면서 자산 규모를 10조 원 아래로 맞추는 방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속적인 해결 방안이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매각으로 가는 것이 현 시점에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태영그룹 입장에서 SBS는 매각하기 싫은 계열사다. 방송사 특성상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지만 사업적으로도 적지 않은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BS는 2019년 매출 8177억 원, 영업이익 126억 원을 거뒀다. 김현용 연구원은 “1년에 1000억 원 이상의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고 방송 플랫폼을 갖춘 사업자는 CJ ENM, 제이콘텐트리, SBS 3사뿐”이라고 전했다.
SBS를 매각하지 않고 종합편성채널(종편)로 변경하는 방법도 있다.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지만 종편은 30%까지 보유가 가능하다. 하지만 종편은 라디오 방송 등이 불가능해 대규모 사업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방통위가 종편 허가를 내준다는 보장도 없다.
방통위에 따르면 윤석민 회장 측은 방통위에 SBS의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의 확인, 공정거래법 위반 해소 등과 관련한 이행각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방통위와 태영그룹은 각서를 공개하지 않아 윤 회장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SBS 노조는 성명을 통해 “조건부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윤 회장이 제출했다는 각서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며 “각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실효성이 있는지 등의 여부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전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각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각서에는 공정거래법 해소 방안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경영기밀도 포함돼 있을 수 있어서 각서를 외부에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태영그룹 관계자는 “SBS 매각 계획은 없다”며 “SBS 자회사 문제는 방안을 준비 중이지만 어떻게 할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