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만에 주세법 바뀌며 수제 맥주 급상승…테라 앞세운 하이트진로, 장기집권 오비맥주 추격
다양한 요인으로 수제 맥주의 인기가 높아지자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보다 더 많이 팔리고 있다. 특히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95%를 차지하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10년 만에 업계 순위가 바뀔지도 관점 포인트다. 사진=허일권 기자
#국산 맥주, 이유 있는 고공행진
최근 국내 맥주 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수제 맥주의 상승세다. 실제 지난 5월 28일 CU가 내놓은 곰표맥주는 3일 만에 10만 개가 완판됐다. 누적 판매량도 일주일 동안 30만 개에 달한다. 제주맥주가 내놓은 임페리얼 스타우트 에디션은 2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3일 만에 3000병이 다 팔렸다. CU와 세븐일레븐은 올해 1~5월 수제 맥주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355.6%, 394.8%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선택지도 한층 넓어졌다. 핸드앤몰트의 ‘마왕 임페리얼 스타우트’, 세븐브로이 ‘엠버 에일’, 플래티넘비어 ‘대한IPA’, 플레이그라운드 ‘루비세종’ 등의 다양한 수제 맥주들이 출시되고 있다.
수제 맥주의 상승세는 52년 만에 바뀐 주세법 덕분이다. 올해부터는 원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에서 생산량에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가 도입됐다. 종량세 도입으로 수제 맥주 업계는 세금 부담을 덜게 됐다. 편의점에서는 국산 수제 맥주 ‘4캔에 1만 원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제 맥주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은 600억 원대로 전체 맥주 시장의 약 1.5%지만, 2013년 이후 매년 30~40% 성장하고 있다. 실제 GS25 캔맥주 매출 중 수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2.1% 수준에서 올해 1~5월 8.4%로 4배 늘었다. 전국 소형 양조장 수도 1년 만에 114개에서 151개로 34% 증가했다. 업계는 수제 맥주 시장이 5년 뒤 약 4000억 원대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지난 5월 19일 정부는 위탁 생산 허용과 배달 판매 허용을 골자로 한 주류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해 수제 맥주 산업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한 관계자는 “종량세 도입, 일본 불매운동, 소비자 취향 다양화 등이 수제 맥주의 인기 요인으로 볼 수 있다”며 “특히 정부가 시장보다도 선제적으로 규제 완화를 발표하며 수제 맥주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제 맥주 인기는 국산 맥주의 외연을 확대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올 1~5월 CU에서 판매된 전체 맥주 매출 중 국산 맥주의 비중은 50.3%로 4년 만에 수입 맥주를 따돌렸다. GS25는 아직 수입 맥주가 앞서고 있지만, 곧 따라잡힐 전망이다. 올해 1~5월 국산 맥주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2% 증가했고 수입 맥주는 4.5%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지난해 40%대로 떨어진 국산 맥주 매출 비중이 올해 58%까지 올라섰다. 관세청 수출입통계를 보더라도 올 1~4월 맥주 수입액은 6743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7% 감소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를 역전한 요인 중 일본 불매운동이 제일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며 “또 주세법 개정으로 인해 수제 맥주 매출이 늘어나면서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국산 맥주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맥주의 왕’은 누구인가?
국산 맥주 인기 속 업계 1·2위 간 경쟁도 치열하다. 10년 가까이 정상을 지켜온 오비맥주의 1위 수성과 ‘테라’를 앞세운 하이트진로의 1위 탈환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하이트진로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3월 21일 출시한 테라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테라를 활용한 ‘테슬라(테라+참이슬)’, ‘테진아(테라+진로이즈백)’의 인기가 뜨겁다. 하이트진로의 맥주 시장 점유율은 올 1분기 40%대로 올라서며 오비맥주와의 격차를 크게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 테라는 올 1월 280만 상자를 판매한 후 코로나19 사태에도 월 판매 200만 상자를 상회했다. 5월은 하이트진로 기준 역대 최고 맥주 판매량인 300만 상자로 추정된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정용 판매가 늘었는데, 그 수혜를 하이트진로가 흡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통 식당·주점의 업소용과 마트·편의점 등의 가정용 시장의 비율이 6 대 4. 그런데 코로나19로 이 같은 구도가 역전돼 업소용과 가정용 비중이 4 대 6으로 바뀌었다.
이정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1분기 맥주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했으나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출시된 맥주 테라 판매가 순항했다”며 “5월 테라는 월별 최대 판매량을 달성했고 진로이즈백도 꾸준히 100만 상자를 넘어서는 호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이트진로는 1분기 영업이익 56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2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극적인 반전이다. 매출도 533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늘었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신제품 테라를 전면에 내세운 맥주 부문이 흑자로 돌아선 것이 흑자전환의 동력이 됐다. 하이트진로 주가도 10년 만에 4만 원대를 회복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코로나19 초반부터 현재까지 가정용 시장이 매출을 이끌고 있고 업소용을 판매할 때 들어가던 마케팅 등 판촉비용이 큰 폭으로 줄었다”며 “하반기에도 가정용 판매 비율이 줄지 않고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