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의심했고 놀랄 만큼 무지했다” 맹공…“푸틴과 통화 후 외교노선 뒤집어” 주장도
이러한 볼턴의 행보를 지켜보는 트럼프의 심기도 편할 리 만무할 터. 회고록 출간 전날 트위터를 통해 “볼턴은 무능한 거짓말쟁이”라며 맹비난한 트럼프는 기밀 누설 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그리고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23일 공식 출간된 회고록에 대해 415곳가량을 수정 및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턴의 일방적인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긴 하지만 과연 그의 눈으로 지켜본 트럼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트럼프의 숨겨진 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을 짚어본다.
존 볼턴은 자신이 출간한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에서 작심한 듯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가 사우디 왕세자를 옹호했던 이유는 딸 이방카를 위해서였다
지난 2018년 10월,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이자 반체제 언론인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자말 카슈끄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이 사건을 두고 배후자로 지목된 인물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였다.
하지만 온갖 의혹이 불거졌던 이 사건에 대해 트럼프는 묵인했고, 한 달여가 지난 후에야 트위터를 통해 다소 엉뚱한 입장 표명을 했다. 이를테면 “세상은 너무 위험한 곳이다!” “그가 그랬을 수도 있고 그랬지 않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식이었다.
이에 대해 볼턴은 책에서 트럼프가 이런 괴상한 성명을 발표한 이유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딸 이방카를 위해서였다”라는 것이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하면 대중의 관심이 이방카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주장하면서 일종의 ‘시선 돌리기용’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하기로 결정한 것은 11월 19일 백악관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이방카가 개인 이메일 계정을 이용해 정부 관리들에게 수백통의 이메일을 보냈다는 보도가 터졌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는 트럼프와 그의 선거 캠페인이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맹비난했던 이유였기에 더욱 민감한 문제였다. 이에 스캔들을 묻어버릴 방법을 찾고 있었던 트럼프는 일부러 튀는 행동을 했고, 그의 의도대로 당시 성명은 상당한 논란이 됐었다.
그리고 트럼프는 “젠장, 이방카는 왜 휴대폰을 바꾸지 않았지? 그 휴대폰 때문에 우리가 엉망진창이 됐잖아”라고 말했다고 볼턴은 덧붙였다.
#백악관 보좌관들은 이방카 부부에게 불만이 많았다
볼턴은 책에서 이방카 부부에 대한 불만도 나타냈다. 불만을 가졌던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존 켈리 비서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방카 부부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주장한 볼턴은 “폼페이오가 우리들이야말로 ‘진짜 전사’이기 때문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켈리가 좌절하고 행정부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온 말이었다.
볼턴의 주장에 따르면, 켈리가 백악관을 떠날까봐 염려한 폼페이오는 “짐 매티스(전 국방장관)는 항상 해외에 나가있고, 스티브 므누신(재무장관)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치부를 감추는 데만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니까 여기에는 당신과 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만약 그(트럼프)가 진짜 전사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그저 여기를 둘러보면 된다(우리를 의미). 그리고 켈리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폼페이오는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도널드, 이방카, 재러드 쇼로 끝날 수도 있다!”라고 비꼬았다. 하지만 이런 만류에도 불구하고 켈리는 2019년 1월 백악관을 떠났고, 현재 정치 비평가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사위인 재정부 장관에게 직접 연락을 취한 사실에 대해서 폼페이오가 불같이 화를 낸 일화도 소개됐다. 볼턴은 트럼프의 사위인 쿠슈너가 어떻게 터키의 재무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게 됐는지 알게 됐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그저 둘 다 국가 지도자들의 사위라는 점 때문이었다고 적었다. 이른바 ‘사위 채널’이었다.
볼턴은 폼페이오와 므누신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이에 대해 책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므누신 장관에게 새롭게 형성된 ‘사위 채널’에 대해 브리핑했고, 이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쿠슈너의 외교 개입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썼다. 그러면서 “므누신 장관은 쿠슈너가 자신의 터키 카운터파트에게 따로 연락을 한다는 사실에 화를 냈고, 폼페이오 장관은 이것이 쿠슈너가 해서는 안 될 국제 협상을 하는 또 하나의 예라며 화를 냈다”라고도 적었다.
볼턴은 또한 켈리와 쿠슈너의 갈등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트럼프가 미국으로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의 수가 왜 줄지 않고 있는지 불만을 토로하고 며칠 후에 켈리는 쿠슈너가 멕시코 관리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켈리는 트럼프에게 “쿠슈너가 왜 멕시코 관리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습니까?”라고 불만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트럼프는 “내가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어떻게 하면 불법이민자들을 막을 수 있을까?”라고 응수했다.
볼턴은 책에서 자신뿐 아니라 존 켈리 비서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방카 부부에게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뒤에 서있는 이방카-재러드 부부. 사진=AP/연합뉴스
#측근들까지 뒤에서 트럼프를 조롱했다
볼턴의 책에는 트럼프를 조롱하는 백악관 관계자들의 사례가 여럿 소개되어 있다. 볼턴이 백악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켈리는 볼턴에게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당신도 곧 알게 되겠지만 여기는 일하기에 썩 좋지 않은 곳”이라고 경고했다.
심지어 충성파로 꼽히는 폼페이오도 트럼프를 가리켜 ‘허풍쟁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폼페이오가 볼턴에게 “다 헛소리야”라고 적힌 쪽지를 슬쩍 건넸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볼턴은 “폼페이오 장관은 한 달 뒤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 노력이 성공할 확률은 제로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또한 트럼프가 백악관 웨스트윙의 업무 환경을 불량하게 만들었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를 가리켜 ‘변덕스러운 사람’이라고 묘사한 볼턴은 “한사코 ‘리얼리티 TV 쇼맨십’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싶어했다”고도 비꼬았다. 그러면서 “이런 모습에 최측근들조차 사석에서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볼턴은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늘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했고, 음모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거대한 연방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백악관을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놀랄 만큼 무지했다”고 썼다. 이런 무지함은 브리핑 시간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서 볼턴은 “브리핑은 대부분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브리핑자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항상 보고자들보다 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으며, 그마저도 당면한 주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안들이었다.
이와 관련, 볼턴은 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브리핑을 듣는 시간보다 브리핑을 하는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듣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주장했으며, 이런 면에서 트럼프가 고위 참모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니키 헤일리가 러닝메이트가 될 뻔했다
볼턴은 책에서 이방카와 쿠슈너가 2020년 대선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버리고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를 부통령으로 교체하고 싶어 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볼턴은 트럼프가 2018년 휴가 무렵에 이런 식의 교체가 어떤지 자신에게 의사를 물었다고 주장했다.
책에서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정가에 널리 퍼져있던 2020년 선거에서 펜스 부통령을 버리고 헤일리와 함께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루머를 언급하면서 내 생각은 어떤지 물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당시 백악관에서는 이방카와 쿠슈너가 헤일리를 선호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이는 2018년 12월 헤일리가 유엔대사직을 내려놓는 시점과 맞물려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시 찬성파들은 헤일리가 여성 유권자들을 트럼프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반대파들은 펜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기독교 유권자들의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며 염려했다고 전했다.
당시 볼턴은 트럼프에게 “충직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교체로 인한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한 채 필요한 사람들(트럼프 상대에게 투표하지 않더라도 집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한편 볼턴은 어느 날 집무실에서 트럼프가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렉스 틸러슨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고도 회상했다. 당시 대화에서 트럼프는 헤일리와 틸러슨과 함께한 만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틸러슨이 그 자리에서 헤일리를 가리켜 ‘c***’라고 불렀다”라고 귀띔했다. 요컨대 헤일리에게 “당신은 c***에 지나지 않아. 절대 잊지 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볼턴은 회고록에서 “나는 실제 틸러슨이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고 언급하면서 “정상적인 정부라면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당장 해고시켰을 것이다”라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만약 틸러슨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나에게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전했을까?”라고 말했다.
볼턴은 트럼프가 외교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고 말했다. 영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고. 2018년 7월 테레서 메이 영국 총리와의 정상회담. 사진=AP/연합뉴스
#트럼프는 외교 문외한이었다
볼턴의 책에는 트럼프의 무지함이 여러 군데서 드러난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 그랬다. 이와 관련, 책에서 볼턴은 2018년 가졌던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 대해 언급했다. 이 부분에서 볼턴은 트럼프가 “놀라울 정도로 무지했다”고 말했다. 당시 배석했던 한 관리자가 영국을 핵보유국으로 지칭하자 트럼프는 놀랍다는 듯이 이렇게 되물었다. “아, 핵을 보유하고 있습니까?” 볼턴은 트럼프의 이 발언에 대해서 “농담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했다.
볼턴은 또한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기 전에 트럼프가 핀란드가 과거 러시아의 속국이었는지를 물었다고 전하면서 그가 얼마나 무식한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외교정책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인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도 막말에 버금가는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령 베네수엘라 문제를 논의하면서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는 것은 “쿨(멋질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베네수엘라를 가리켜 “그 나라는 사실 미국의 일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한 볼턴은 ABC 뉴스 인터뷰에서 “푸틴은 트럼프를 바이올린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책에서도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2019년 5월 푸틴은 트럼프와의 전화통화에서 베네수엘라 야당 대표이자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를 힐러리 클린턴에 비유하면서 비방했고, 트럼프는 푸틴의 이런 말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당시 이런 발언을 한 푸틴의 목표는 동맹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대외적으로 과이도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정상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트럼프 역시 이에 동의하면서 좌파인 마두로 대통령을 독재자로 낙인찍고 제재에 나선 상태였다. 하지만 볼턴은 트럼프가 푸틴과의 전화통화 후 ‘과이도는 마두로 대통령보다 연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측근들에게 노선 수정을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
볼턴은 책에서 “내가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재선을 염두에 두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결정을 찾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고 비난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의사결정은 2020년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적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중국을 대하는 트럼프의 이중적인 태도가 있다. 심지어 적대 관계로 알려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뒤에서는 자신의 재선을 지원해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볼턴은 지난해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트럼프가 자신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주장하면서 “놀랍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오는 미국 대통령 선거로 대화 주제를 돌렸다. 중국의 경제력을 암시하면서 시진핑 주석에게 반드시 재선에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농부들의 표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산 대두와 밀 수입량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율에 대한 허풍도 늘어놓았다. 볼턴은 “시 주석이 트럼프와 6년 더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국민들이 나를 위해 헌법상의 2선 대통령 임기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적었다. 요컨대 미국인들이 자신을 위해 헌법 개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볼턴은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너무 많은 선거를 치른다고 말하면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고도 썼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