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희 경기도 의원 “특정 직업군에 기본소득 적용은 보편성 거슬러”…경기도 “도시에 집중된 혜택 농민도 나누자는 취지”
경기도의회 원용희 의원.
[일요신문] 이재명 경기지사가 후반기 도정 과제 중 하나로 꼽은 농민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보편성을 거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기도의회 원용희 의원은 지난달 22일 도의회 5분 발언에서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은 경기도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한 특정 직업군에 대한 기본소득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기본 가치인 보편성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상인 등 다른 직업군에서도 기본소득을 요청할 수 있고 만약 재정 부족을 이유로 거절하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는 게 원 의원의 주장이다.
원용희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본격적인 논의의 궤도에 오른 기본소득 제도가 포퓰리즘에 기초한 실패 정책의 대표 사례로 전락할 수 있다”며 “농민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특정 직업군에 적용함으로써 기본소득 제도가 변질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원용희 의원이 기본소득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2017년 ‘생존불안시대,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기본소득을 깊이 연구하고 지지해 왔다. 원 의원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소득격차와 불평등 해소 등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정치인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을 추구하는 등 이재명 경기지사와 정책적으로 닮아 있는 지점도 적지 않다. 더욱이 ‘경기도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을 대표발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원용희 의원은 농민기본소득은 “기본소득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본소득이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충분성이라는 다섯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 이재명 지사가 그간 인용해 온 유럽의 기본소득 실험 사례들도 대부분 이 가치를 준용한다. 하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이라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지원이다. “아무데나 기본소득이란 용어를 가져다 붙이면 안 된다”는 것이 농민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농업정책과는 본지에 시도별 농정 예산 편성 현황 등을 근거로 농민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농정예산은 8478억 원으로 전체 예산 대비 3.6%에 불과하다. 전남의 1조 4717억 원(18%), 경북의 1조 1159억 원(13.2%)과 비교하면 액수와 점유율에서 낮은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농업 인구(2.2%)가 다른 직종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경기도를 단순 농정예산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농정예산은 지역 개발과 농업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지역별 농가 소득 수준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욱이 농가가 아닌 농민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의 경우 경기도 농민이 더 열악한 경제 상황에 처해 있다면, 전체 농정예산보다 중소농의 1인당 농민 소득액을 비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농업정책과에 따르면 그 같은 통계는 집계되거나 비교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을 두고 이재명 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의제인 ‘기본소득’ 개념을 확장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이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기본소득의 한 종류로 인식하며 이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이 지사가 반사이익을 거둔 것처럼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를 가능한 자신의 정책에 많이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뜻이다.
원용희 의원은 “농민기본소득이 기본소득 가치를 거스른다는 지적에 대해 집행부(경기도)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전남 해남군에서 최초로 도입한 농민수당도 농민기본소득과 자주 비교된다. 농민수당이 농민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보상의 개념이라면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일반적 기본소득의 개념을 담고 있다. 정책의 시행 주체도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로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원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경기도가 농민의 소득 보전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육성하고자 한다면 복지 프로그램의 일환인 농민수당의 확대 쪽으로 정책 노선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양대 노총에서 예술인과 건설노동자에 대한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일이 있자 특정 직업군에 대한 기본소득이 과연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벌어지는 등 기본소득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쪽과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실질적인 도움이 우선이라는 실용주의자들의 의견이 대립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보다 많은 복지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린 논쟁이라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국민들의 생활과 인식에 한층 가까이 다가왔음을 확인하는 대목이다.
한편 경기도 핵심 관계자는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보다 환경보호, 기후 변화 억제 등 우리 삶을 지원해 온 농촌과 농민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를 먼저 판단해 줬으면 한다. 수도권 대도시에만 집중돼 온 혜택을 농민들과도 함께 나누자는 취지”라고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