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조사 조기 종결 대가 뒷돈 챙긴 혐의 ‘엄 씨’…주가조작 세력-금융당국 ‘네트워크’ 드러날지 주목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가 엄 아무개 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엄 씨가 지난해 9월 금감원 검사를 조기에 종결해 주겠다면서 금감원 및 금융위 관계자 등에 대한 청탁과 알선 명목으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에게서 5000만 원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금감원 해결해 줄게” 업계 관계자 구속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가 6월 23일 엄 씨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엄 씨가 지난해 9월 금감원 검사를 조기에 종결해 주겠다면서 금감원 및 금융위원회 관계자 등에 대한 청탁과 알선 명목으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에게서 5000만 원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엄 씨의 신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엄 씨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혐의 구속 기소 사실을 공지하면서도 “엄 씨는 사기업 사람”이라는 게 추가 설명의 전부였다.
하지만 법조계는 엄 씨를 주목하고 있다. 엄 씨는 과거 주가조작으로 악명이 높았던 S 사 임원으로, 평소에도 업계에서 금감원 등 사정당국과의 ‘네트워크’를 자랑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건을 잘 아는 시장 관계자는 “엄 씨는 최근에도 주가가 급등했던 H 사·N 사 등 S 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주가조작 세력의 중심에 있던 인물 중 한 명”이라며 “평소 사석에서 사정당국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자랑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이런 이유로 뒷돈을 받았다가 구속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엄 씨가 금융당국을 상대로 한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고 알렸지만, 엄 씨가 그 외에 인맥들까지 과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S 사에서 부회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진 엄 씨는 주가조작의 ‘대명사’로 평가받는 S 사의 모회사 K 사가 N 사를 인수하자 N 사의 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핵심 인사였다는 얘기인데, S 사와 N 사 모두 주가가 급등했던 곳들이다. 특히 N 사는 지난해 상반기 600원 대였던 주가가, 갑자기 급등해 같은 해 8월에 4400원까지 거래가 됐다. 현재는 1200원 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당시 급등 배경은 인수 후 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었지만, 시장에서는 의도적인 주가 부양이었다고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이에 엄 씨가 깊게 관여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추측이다.
#“친분 실체 파악 필요”
이처럼 주가조작 세력에서 주축 역할을 담당했던 엄 씨가 구속되면서 금감원이나 금융위, 검찰과 같은 사정당국과의 네트워크 실체를 수사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사채(CB) 투자업계의 큰손인 한 인사는 “엄 씨가 구속됐을 때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왜 나왔겠나. 엄 씨가 그동안 평소에 하고 다닌 얘기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평소 엄 씨가 금융당국 관계자들과의 친분을 자랑했다는 것인데, 그는 “원래 이 업계가 ‘친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실체는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5000만 원을 받아낼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추가 수사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이종필 전 부사장이 엄 씨에게 청탁했다는 지난해 9월은 금감원이 라임에 대한 검사에 착수한 시점이다. 사안이 크게 확대될 수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에 대한 로비가 실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다. 당시 금감원은 라임에 대해 파킹 거래, 부실 자산 매각, 수익률 돌려 막기, 도미노 손실, 좀비기업 투자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살펴보고 있었다.
라임자산운용 관련 수사는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다. 다만 라임 자산운용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주문해 온 윤석열 검찰총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변수가 됐다는 후문이다. 검찰이 서울 여의도 IFC 내의 라임자산운용을 압수수색할 당시 모습. 사진=연합뉴스
라임 수사는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게 변수다.
검찰 움직임을 보면 라임자산운용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정·관계 로비 의혹 가운데 수사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여당 소속의 K 의원 정도다. 그마저도 엄 씨 관련 의혹은 아니다. 서울남부지검은 라임 사태의 핵심 고리인 김봉현 씨에게 정치권을 연결해줬다는 의혹을 받는 이 아무개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구속했다. 김봉현 씨는 4년 전 이 씨 소개로 K 의원을 만나 맞춤 양복을 선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검찰은 정치권 인사 중 K 의원 관련 의혹 정도만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주가조작 관련 수사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엄 씨 구속기소 이틀 뒤인 6월 25일,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코스닥 상장사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는 대부업자 황 아무개 씨를 구속기소했다. 황 씨는 라임 자금이 투자된 코스닥 상장사 E 사 시세조종에 가담해 100억 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득한 혐의다. 황 씨와 공모해 허위 보도자료 등을 배포하는 방식으로 에스모의 주가를 부양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는 5명은 이미 5월에 기소됐다.
이번 사건으로 수사를 받은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은 물론, 금감원 등 사정당국에 대한 로비 및 청탁 수사를 할 경우 얼마든지 수사가 커질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수사를 강하게 추진하던 윤석열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과의 갈등으로 인해 힘이 빠지면서 수사 동력이 없어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 역시 “7월 중 간부급 검사에 대한 정기 인사가 예정된 만큼, 그 전에 라임자산운용을 둘러싼 수사도 마무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