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스페셜
1964년 5월 경남 김해의 한 마을. 총각이 처녀에게 키스하려다 혀가 잘려 나가는 전대미문의 ‘혀 절단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직후 키스를 시도한 남성의 부모는 기왕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이니 두 사람을 결혼시키자고 혼담을 보내왔다.
하지만 처녀의 집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놈하고 어떻게 결혼해서 살 수 있냐”며 가해 남성을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화가 난 남자의 집에서도 처녀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다.
당연히 정당방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처녀와 가족들. 하지만 놀랍게도 성폭행을 방어하기 위해 혀를 깨문 행동은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처녀는 가해 남성보다 무거운 형벌을 받고 말았다.
56년 전 성폭행하려는 남성의 혀를 깨물어 유죄 선고를 받았던 열여덟 살 소녀가 지난 5월, 일흔넷 노인이 되어 다시 법원 앞에 섰다.
일흔넷 최말자 할머니는 “저는 너무 억울해서 56년 만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반드시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무죄를 입증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진심을 말한 뒤,재심 청구서를 들고 법원으로 향하는 그녀. 일흔넷 최말자 할머니는 재심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제 일같이 생생한 기억에 비해 기록은 오랜 세월처럼 바래고 흐려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상황. 그때 재심 청구의 중간 점검과도 같은 재심 기각 의견서가 최말자에게 도착한다.
확정판결을 뒤집을만한 새로운 증거나 당시 수사 과정의 위법성을 증명할 증인이 나오지 않는 한 재심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의견서.
최말자 할머니는 “내가 증인입니다 내가. 대한민국 사법, 정말 실망이에요”라고 말했다.
판결문 중에는 ‘범행 직후 피고인 A(최말자)가 친구 E 씨를 만났을 때 당황하거나 괴로워하는 표정 없이 위 친구를 집에 데려다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이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중략) 피고인 A가 본건 범행 장소까지 간 것은 A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한 것이고 (중략) 남성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대담하게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는 데 어느 정도 보탬은 되었을 것이라는’이라고 적혀 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친구 E 씨의 진술은 최말자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데 취재 도중 E 씨가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E 씨는 “나는 노 씨(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날 최말자를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옆집에 살아서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만약 판결문에 그날 제가 ‘최말자를 따라 범행 현장 직전까지 갔다’고 기록됐다면 기필코 명예 훼손으로 고소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일흔넷 최말자는 재심을 이뤄내 56년간의 한을 풀 수 있을지 살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