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기를 가르치려면 복식호흡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자아이를 눕혀놓고 배를 만졌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소를 당하게 됐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이미 시간이 꽤 흐른 사건이었다. 이상해서 물었다.
엄상익 변호사
“레슨을 맡은 제가 교수들에게 로비를 해서 그 애를 음대에 합격시켜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되지 않자 원한을 품고 저를 고소한 것 같습니다. 고소를 당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의 목소리에는 겁이 가득 배어 있었다.
“글쎄요, 조사를 받고 그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어 망신을 당하실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그는 앞이 캄캄한 표정이었다. 며칠 후 그가 아파트의 자기 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스로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을 가한 것인지 어리석은 도피인지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케이스가 떠올랐다.
오래 전 한 여성이 현직 대사로 있는 고위 외교관을 성폭행으로 고소해 달라고 했었다. 사연을 알아보았다. 한국의 최고급 요정에서 VIP를 담당하던 그녀는 외무부 장관을 수행해서 온 젊은 독신 외교관에게 빠졌다. 엘리트에 미남이고 예의도 깍듯했다. 그녀에게는 장래의 ‘대사 부인’이라는 꿈도 생겼다.
그녀는 그에게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 그러나 막상 그가 대사가 됐을 때 부인이 된 이는 대학교수 출신의 다른 여성이었다. 한이 서린 그녀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는 다른 여성 두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녀들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언론에 그 사실이 보도되면 그는 철저히 파괴될 게 틀림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여성들에게 화해나 타협 조정의 모든 권한까지 위임받았다. 그리고 해외에 있는 그 대사에게 편지를 썼다. 소장을 접수시키기 전에 그 여성들의 한을 풀어줄 방법을 강구하라는 내용이었다. 사형수에게도 마지막 말을 할 기회는 주는 법이다. 단번에 뒤통수를 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대사가 조용히 국내에 스며들어온 것 같았다. 얼마 후 세 명의 여자가 웃으면서 자기네들은 마음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 대사는 고위직 외교관 생활을 무난히 마치고 은퇴해서 지금은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아주 오랫동안 유력 정치인과 친하게 지낸 여성을 알고 있다. 그 정치인이 야당 대표 시절부터 가까웠던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사석에서 그를 오빠라 부른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묘하게도 그 정치인의 부인을 자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시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녀가 모든 걸 폭로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대충 사연이 짐작이 갔다. 사회적 폭풍이 엄청날 사건이었다. 그녀에게서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한 좌절감과 분노가 엿보였다. 나는 그녀를 말렸다.
그런 일들이 참 많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의 성적 스캔들 사건을 맡아달라는 여성이 있었다. 그 사건의 수임을 거절했다. 지방선거 막판에 그 여성을 조용하게 해달라는 지자체장 측 참모의 부탁도 받았었다. 그것도 사양했다.
뼈와 뼈가 부딪치고 돌과 돌이 마주쳐서 퍼런 불꽃을 일으키는 사회다. 성적 스캔들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허공에 떠돌고 있다. 경전은 그런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가르칠까. 불경을 보면 친차라는 여인이 부처의 설법장에 나타나 그의 애를 가졌다고 폭로했었다. 모략이었다. 부처는 침묵으로 대응했다. 사흘만 지나면 모든 소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성서 속의 다윗왕은 잘못이 드러나자 바로 무릎 꿇고 빌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벌을 감수했다. 예수는 죄 없는 자만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다. 서로 패를 갈라 집단화 이념화된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게 벽돌장을 집어 던지는 것 같다. 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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