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생존 방안이었던 M&A 무산…지분 투자자 물색 ‘플랜B’ 실패 땐 파산 불가피
제주항공은 지난 7월 23일 이스타항공과의 SPA(주식매매계약)를 해지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지 4개월 만에 인수합병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인수를 강행하기에는 감당할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것이 회사 입장이다. 제주항공은 인수 무산을 공식화하기 전날 이미 이스타항공과 국토교통부 쪽에 계약 해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거래 무산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거래 성사를 위해 마주앉는 대신 운항중지와 체불 임금, 조업사와 정유사에 지불해야 할 대금 등이 포함된 선결조건 이행 문제로 갈등만 빚어왔다. 결국 국내 항공사 간 첫 인수합병으로 관심을 모았던 계약서는 종잇조각이 됐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이번에 무산된 인수합병은 현실적으로 이스타항공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이스타항공의 지난 1분기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 1042억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지난 3월부터는 국내선과 국제선 전노선 운항을 모두 중단하는 ‘셧다운’에 돌입했고, 5월 말엔 운항을 위해 필수적인 항공운항증명(AOC) 효력도 중지됐다. 셧다운 이후 회사 매출은 ‘0’원이다. 그 사이 체불 임금과 항공기 대여료, 주유비 등 고정비용은 계속 발생해 미지급금이 17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자체적으로 주식 매각이나 자산 처분 등으로 끌어올 수 있는 현금 규모도 사실상 전무하다. 이스타항공은 이스타포트(100%)와 한국항공서비스(3.7%), 한국항공우주산업(KAI, 0.4%)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이스타포트와 한국항공서비스는 시장성이 없는 지분증권이다. 장부가액 기준으로 각각 3억 원과 5억 원 수준이다. KAI 지분은 처분해도 250만 원을 받는다.
대주주가 자금을 투입할 가능성도 없다. 창업주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전주을)과 이스타홀딩스 지분을 전량 보유하고 있는 이 의원의 두 자녀는 사재 출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6월 지분 헌납을 결정하면서 사실상 회사에서 손을 뗐다. 그러나 거래가 무산된 현재로선 대주주 지분은 사실상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에이프로젠KIC와 군산시청, 삼성증권, 에이스투자금융 등의 주주들이 이스타항공 지분 48.83%를 가지고 있지만 대주주가 회사에 등을 돌린 만큼 도움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도 없다.
새로운 인수자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항공업 정상화는 최소 2~3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매물로서 매력이 없다. 셧다운된 운항을 재개하려면 각종 서류 등을 새롭게 발급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검사 항목만 1000개가 넘는다. 보유 중인 항공기도 23대에서 15대로 줄었다. 제주항공과 갈등을 벌이는 사이 드러난 이상직 의원 일가를 둘러싼 페이퍼컴퍼니 논란과 불법승계 등 각종 의혹, 1700억 원에 달하는 빚 역시 부담이다.
이스타항공 안팎에선 전북 지역 민간 LCC(저비용항공)인 만큼 전라북도가 자금 지원을 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군산시는 이스타항공 설립 당시 10억 원을 출자했다. 매년 주민세와 재산세, 지방소득세 등으로 7억 원가량 받아왔으며 이스타항공 군산, 전북지사 소속 직원들의 생계 문제도 있다. 군산공항은 미군 활주로를 빌려 쓰고 있어, 이스타항공이 담당하던 군산-제주 노선에 다른 항공사가 취항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이스타항공이 군산공항에 지급해야 할 체납료 1억 1000만여 원 문제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전라북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북도는 ‘대규모 자금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스타항공의 상황은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자금 수준을 이미 넘어선 데다가 비슷한 사례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직 의원 일가와 이스타항공의 관계를 고려할 때, 지자체가 먼저 나서 지원책을 마련하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인천공항에 계류돼 있는 이스타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마련하면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이 우선 계획을 내면 진행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는 방향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한 해외 국가에 선별적으로 운항을 재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산업은행이나 재정당국 등의 등판 카드도 고려할 수 있지만 현재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스타항공은 일단 신규 투자자를 찾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합병(M&A) 대신 소수 지분 투자 형태다. 이 경우 단일 투자자를 찾는 작업보다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 전라북도와 군산시에는 국내선 운항을 재개할 수 있는 내용의 협조도 요청했다. 운항 재개는 투자와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데 필수 조건이다.
만약 ‘플랜B’마저 실패하면 이스타항공에 남는 선택지는 파산이다. 보통 ‘법정관리’라고 불리는 회사정리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회생절차 등 사후적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회사가 다시 정상기업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지금도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고 있는 만큼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스타항공 파산 외에도 이번 거래 후폭풍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인수·합병 계약 파기 책임을 둘러싸고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소송전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두 회사는 “모든 책임은 상대방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법정 공방에 대비해 이미 법리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항공은 법무법인 광장에, 이스타항공은 법무법인 태평양에 자문을 맡겼다. 115억 원의 이행보증금 반환과 두 회사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1700억 원의 미지급금 발생 책임 소재가 핵심 쟁점이다.
두 회사 소송전과 별개로 책임론은 이상직 의원 일가와 이스타항공 경영진, 제주항공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실직 사태를 맞은 이스타항공 노동자 1600여 명과 대금 정산을 못한 협력업체에까지 파장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이스타항공 대주주와 경영진은 경영 실패 책임이 있으며, 제주항공은 협상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스타항공의 적기 매각기간을 놓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