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돈기업’ 주식 여전히 보유 중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의 주식 투자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어 안정적으로 운용되어야 할 연기금을 가지고 위험도가 높은 주식을 사들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불거졌던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공단이 투자한 종목 중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있는 기업들에 ‘주목’해 이를 지적해 왔다. 현 정권 출범 후 연기금의 ‘수혜’를 입은 ‘친 MB 기업’들은 어떤 곳이고, 이들 기업에 대한 연기금의 투자 성적은 어떤지 들춰봤다.
지난해 2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연기금은 ‘5% 룰’을 적용받지 않았다. 5% 룰이란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가 그 보유 상황과 목적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제도. 그동안 금융당국은 연기금을 그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그러나 자통법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모든 연기금도 일반 지분 보유자와 마찬가지로 5% 룰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공단은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을 모두 공개해야만 했다. 당시 30조 원이 넘는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의 지분 현황은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몇몇 기업은 연기금 투자 여부에 따라 명암이 엇갈리기도 했다.
LCD 부품 제조업체인 ‘티엘아이’도 자통법 시행에 따른 국민연금공단의 지분공개 기업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3월 초 국민연금공단은 티엘아이 지분 6.82%(53만 298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티엘아이 주가가 대략 1만 1000원대였기 때문에 금액으로 환산하면 58억 원가량이었다. 연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기금운용본부 측은 “(이미) 2006년 하반기에 매입한 주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연기금 지분 보유 소식이 알려지자 그 전까지 가파르게 오르던 티엘아이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1월 초 5000원 대 초반이던 티엘아이 주가는 같은 해 3월 2일 1만 125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으나 국민연금공단이 지분을 공시한 다음날부터 상승세가 꺾였다. 그로부터 사흘 뒤, 국민연금공단이 티엘아이 지분을 추가로 획득했다는 공시가 등장했다. 8만 7202주를 더 사들여 지분을 7.93%로 늘린 것이다. 그 이후 주가는 다시 상승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티엘아이가 뒤늦게 ‘관심’을 받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 ‘형님’인 이상득 의원 가족과 관련이 있는 회사였기 때문. 당시 티엘아이 주주 명단을 살펴보면 LB인베스트먼트(옛 LG벤처투자)라는 회사가 1만 7400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창업에 필요한 자금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LB인베스트먼트는 이상득 의원 맏사위인 구본천 대표이사가 지분 22.24%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회사.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사촌지간이기도 한 구본천 대표는 이 의원 장녀인 이성은 씨의 남편이다. 이 때문에 증권가 일각에서 “국민연금공단이 범사돈기업인 LB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회사의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연기금은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또 투자하는 회사가 어떤 정치인과 연결돼 있는지 어떻게 일일이 다 알 수 있겠느냐. 특정 기업의 주가를 염두에 두고 지분을 사들이지는 않는다”면서 “이미 정해진 장기 포트폴리오대로 운용하기 때문에 외부 입김이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해가 불거지는 것은 아마도 그동안의 ‘전과’ 때문인 듯싶다. 특히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선 이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과 한국타이어에 대한 지분매입이 뒤늦게 알려져 도마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의원들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2008년 4월 30일부터 6월 26일까지 80만 주가량의 효성 주식을 사들였다고 한다. 금액으로는 약 543억 원에 해당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투자였다.
이를 두고 국민연금공단 측은 “수익을 내기 위해 저가에 매수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매입시기가 문제가 됐다. 국민연금공단이 주식을 사들였던 2008년 4월과 5월은 효성이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비공개로 수사가 진행되던 효성 비자금 사건은 4월 중순경 언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로부터 불과 보름 뒤 국민연금공단이 효성 지분을 매입한 것이다. 몇몇 야당 의원들은 국민연금공단이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지분을 사들인 이유에 대해 사돈기업 주가 부양을 위한 ‘정치 외압’을 주장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금융위기로 인해 효성에 대한 투자 대비 수익률이 2008년도에 -40%를 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민연금공단을 향한 비난은 더욱 거셌다.
한국타이어 역시 효성과 비슷한 경우다. 국민연금공단은 2008년 6월 한 달간 78억 원을 쏟아 부어 52만 5600주에 달하는 한국타이어 주식을 매입했다. 국민연금공단이 2008년 사들인 한국타이어 주식 66만 5110주 중 80%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공교롭게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등이 주가조작 혐의로 금융당국에 의해 검찰에 통보된 상태라는 것이 알려진 직후였다.
국민연금공단은 지금까지도 효성(지분율 5.01%) 한국타이어(4.21%) 티엘아이(4.34%)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티엘아이의 경우 지난해 LB인베스트먼트가 보유 지분을 매도해 ‘범 로열패밀리 관련 회사’에서 벗어난 상태다.
국민연금공단이 보유 중인 ‘친 MB 기업’ 주식은 또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08년 8~9월경 하나금융지주 지분 8.15%(1730만 주)를 사들였고, 현재 7.08%를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금융지주는 금융권의 대표적인 ‘MB맨’인 김승유 회장이 이끄는 곳. 기금운용본부 측은 “지나치게 가격이 하락한 주식이라고 판단했다. 수익률을 내기 위한 투자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투자는 내부에서조차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하나금융지주 지분을 사들일 당시 주가는 3만 7000원~4만 원 사이. 그 이후 주가는 크게 떨어졌고 최근 코스피 호황에 힘입어 회복되긴 했지만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4월 23일 종가 기준 3만 6050원). 더군다나 지난해 국민연금공단이 운용 수익률 10.8%를 기록하며 큰 수익을 거뒀던 것을 감안하면 하나금융지주 투자는 ‘실패’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격언도 있듯이, 만약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해 차익을 실현했다면 별다른 소문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8년 효성과 한국타이어, 지난해 하나금융지주 등은 손해를 봤기 때문에 ‘친 MB 기업’과 관련된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주식 투자 이외에 국민연금공단의 연기금을 거래하는 운용기관 중에서도 이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기업들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했던 LB인베스트먼트는 연기금의 대체투자사 중 벤처운용 부문을 맡고 있다. 또한 연기금의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들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는 IMM인베스트먼트 역시 이상득 의원 장남인 이지형 씨와 연관이 있는 회사다. 이 씨는 IMM인베스트먼트의 모회사인 IMM그룹을 일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IMM인베스트먼트는 이 씨가 사외이사로 참여한 대우증권그린코리아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의 최대주주(지분율 20.18%)이기도 하다.
물론 기금운용본부는 자신들이 투자하는 기업들 중 이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몇몇 기업들만 골라 내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기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한두 곳도 아니고 수백 개 기업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2008년에는 세계 경제 침체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지난해엔 정말 놀라운 수익을 거뒀다. 금융위기 때 비난을 감수하면서 주식을 사들였던 결과”라면서 “오히려 국민들 입장에서는 칭찬해줘야 할 일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국민연금공단 관리·감독부서인 보건복지부의 한 고위관계자 역시 “지금은 기금운용본부 독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확보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기업이라고 해서 지분을 산다거나 파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