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기’만 하다 ‘역전 홈런’ 맞을라
▲ 사진 위의 왼쪽부터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김진표 최고위원, 정세균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지난 4월 1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4·19 민주올레행사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청와대 회동 모습.연합뉴스 |
사실 이번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기류는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능력보다는 민주당의 지리멸렬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일단 우세하다. 하지만 “안주해서 이긴 선거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지지율 착시현상을 극복하고 특단의 공세적 대책들을 쏟아내야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특히 야권의 막판 단일화 효과와 ‘스폰서 검사’와 같은 여론형성 악재의 위협, 박근혜 전 대표의 비협조 등이 패배를 자초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지율 우세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계속 ‘위기론’이 터져 나오는 속사정을 따라가 봤다.
‘위기’를 얘기하는데 위기의 ‘실체’는 없다. 그렇다고 승리를 단정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한나라당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현재의 지지율만 보면 한나라당에서 나오는 위기론은 그 실체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 3곳의 후보 지지율만 보면 야권 후보들을 20~10%포인트까지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성적표를 손에 쥐고도 승리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상당히 많다. 한 친이계 의원은 “수도권이 비교적 낙관적이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 16개 시도 단체장 가운데 확실한 곳은 5~6개밖에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근거에는 ‘표심의 변화’와 ‘지지율 착시현상’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은 이제 2006 지방선거, 2007 대선, 2008 총선을 관통하던 ‘ABR 효과’(Anything But Roh:노무현 전 대통령과 무조건 반대로)의 약발을 더 이상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여권에서 터져 나오는 다발성 악재들은 모두 집권 3년 차를 맞은 이명박 정권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심으로 반영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선거는 ABR이 사라지고 ‘NBL’(Nothing But Lee:이명박 대통령의 책임 외에 아무런 것도 없다) 요소가 정치권에 등장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동안 노무현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와 일부 정책적 반대가 합해진 정권 심판의 기류가 선거전을 지배, 한나라당의 독주로 이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여겼던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실정이 반복되면서 표심도 이에 대한 심판으로 역전되는 첫 분기점이 이번 지방선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심의 변화 조짐과 함께 지지율 착시현상도 위기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의 근거가 된다. 당내 정두언 박순자 의원 등 친이 직계 의원들은 “한나라당의 낙관론자들이 지지율 착시현상에 빠져 현상유지에만 급급해 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이에 대해 “여권 지지율은 겉으로 나오는 숫자보다 10%포인트 정도 낮게 잡아야 한다. 대면조사 등에서는 야당 표 성향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천안함 사태 등으로 야기된 ‘공안기류’도 야권 지지 성향을 직접 나타내길 꺼리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보면 여권 지지율에는 15% 포인트 정도의 마이너스 요인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야의 선거 전략 지략가인 정두언 의원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히 “보통 여론조사가 현역 여당이 10% 앞서면 비슷한 것으로 봐야 한다”, “현역 여당 지지율은 10~15% 정도 빼고 봐야 한다”라고 말한 부분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두 가지의 위기론 근거를 배경으로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점차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선거 전략 관계자들과 의원들의 우려를 종합해보면 세 가지 불안요소가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야권의 단일화 효과가 심상찮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역대 각종 선거에서 야권이 전면적인 단일화를 한 예는 거의 없다. 이번에도 전국단위의 단일화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핵심지역인 수도권 3곳에서 단일화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
선거 비관론자들은 최근 터진 다연발성 악재가 ‘정권 중간평가론’으로 이어져 한나라당이 결국 패배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현재로선 그런 악재들이 지지율 조사에서 반영이 되고 있지 않지만, 결국 선거 막판에 표심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최근 여의도연구소(여연)는 ‘공직비리 척결방안 및 공수처 설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고, 향후 공수처 설치 관련 법안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당의 싱크탱크이자 여론조사 등을 담당하는 여연이 공수처 설치를 주도하는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여연은 선거에 관한 한, 그동안 백업해 온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확한 조사로 의원들 사이에서도 꽤 신뢰도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정두언 의원은 여연의 여론조사를 인용, “경기도를 빼고 모두 백중열세 정도로 분류된다. 경기도도 야당이 단일화를 하면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런 여연이 선거를 앞두고 민심에 악영향을 줄 만한 민감한 정무적 사안들이 너무 방치돼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여연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스폰서 검사’ 파문이 예상 외로 여론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여론조사 지표상으로 알 수 있다(지난달 여연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5.4%는 ‘검찰을 불신한다’고 답했고, 64.0%는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음).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편이다. 이런 악재들을 선거 전에 잘 관리하지 않으면 그 후유증이 총체적인 정권 중간평가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정무적 관리가 필요한 것은 ‘스폰서 검사’ 문제뿐만이 아니다. 여권은 천안함 사건의 경우도 ‘북풍’에 의한 보수층의 결집 효과를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지만 여기에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북한의 공격 가능성과는 별개로, 사건 과정에서 터져 나온 군 보고체계의 부실과 이명박 대통령의 아마추어적 안보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냉혹한 ‘재평가’가 정권 중간평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한나라당 위기론자들의 주장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선거 지원 불확실성도 승리를 어둡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박 전 대표가 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청했으나 박 전 대표는 묵묵부답이다. 특히 박 전 대표는 ‘당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선거를 이끌어가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내에서는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당이 곤란을 겪지 않도록 친박계 후보들을 교통정리한 것만으로도 박 전 대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선거 지원 부재는 예상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선거 영향력은 한국 정치사에서 신화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부재는 특히 박빙의 승부처에서 여당 후보들의 패배로 나타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여당 지지 성향의 부동층이 이명박 대통령의 잇단 실정에 대한 중간평가 의미로써 야당 후보를 지지하려고 할 때, 당내에서 일종의 야당 역할을 해왔던 박 전 대표가 그것을 막아줄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전혀 움직이지 않을 경우 이는 이 대통령의 통치행위에 대한 묵시적 반대 의사의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박 전 대표의 의중이 표심에 반영된다면 박빙 승부처에서 여당 후보들의 탈락이 잇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한나라당의 낙관론자들은 “조용한 야당과 달리 정두언 의원과 같은 이슈 파이터들이 공세적으로 선거 의제를 주도하고, 천안함 사태로 안보 정국을 조성해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사멸되다시피 한 ‘노풍’과의 대결 구도가 오히려 여당의 정책능력을 차별화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지율 착시현상에 빠져 악화된 민심을 관리하지 않고 박근혜 모시기에도 실패할 경우 한나라당의 위기론은 실체로 다가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