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몸처럼 일하고 손님처럼 배려를
▲ 생맥주전문점 가르텐 호프&레스트(위 왼쪽), 꼬치구이주점 꼬지마루, (아래)일본라멘전문점 하코야. |
베이비붐세대 선두주자로 지난 2월 정년을 맞아 퇴직을 하게 된 홍 아무개 씨(55). 재취업은 힘들 듯해 66㎡(20평) 남짓한 삼겹살전문점을 열어 인생 2막을 시작하기로 했다. 5개월 남짓한 준비기간을 거쳐 이제 개업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개업일이라 손님이 몰려들 텐데, 일손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결국 그는 이모와 여동생, 누나, 처남 등 가까운 친인척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드디어 개업일,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종업원들도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초보자인 친인척들이 섞이면서 심각한 실수가 발생했다. 주문의 순서가 뒤바뀌는가 하면 한 테이블에 주문서 없이 같은 음식이 두세 번 나가는 일까지 생기고 말았다. 결국 첫 손님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만 남기고 말았다.
창업 전문가들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사전에 관련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점포에 절대 부르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일손이 조금 모자라더라도 직원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일하는 게 중요하지, 초보자가 섞이면 혼란만 더할 뿐이라는 것이다.
부산에서 여동생과 함께 178㎡(54평) 규모의 고깃집을 운영하던 정 아무개 씨(여·53)는 여동생과 수익 분배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가게 문을 닫고 말았다. 2007년 3월, 창업 초기만 해도 친절한 서비스와 맛도 좋다는 평가로 장사가 잘 됐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서서히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출이 줄어들자 원재료 값을 조금이라도 낮춰야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정 씨는 고기의 질을 낮췄다. 그랬더니 웬걸, 고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인근에 경쟁 점포가 두 곳 생기면서 매출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매출이 떨어지자 자매의 사이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2000만 원 정도를 더 투자했기 때문에 이익을 조금 더 챙기겠다는 정 씨와 4시간 일찍 출근하고 마감 시간 후에도 매장을 정리하는 등 일을 더 많이 하고 있으므로 이익을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동생의 주장이 대립한 것.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창업 1년 3개월 만인 2008년 6월, 결국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닫고 말았다. “권리금은커녕 보증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사업을 접었다”는 정 씨는 “금전적 손실보다 동생과 사이가 나빠진 것이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평소 돈독한 사이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함께 일을 하게 되었을 때 100% 의견이 맞는 경우는 없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장은 “가족창업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는 것이 장점이자 곧 단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며 “수익분배와 업무분담 등 점포 운영에 대한 원칙을 확실히 세우고 각 구성원별 능력·적성에 맞춰 역할을 분담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을 잘 활용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의 비결은 뭘까. 서울 노원구 노원역 인근에서 생맥주전문점 ‘가르텐 호프&레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김소현 씨(여ㆍ49). 그의 점포는 남편과 딸, 여동생까지 가족 4인의 찰떡궁합으로 월평균 5000만 원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단다. 김 씨는 “주위에서 가족창업을 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견 충돌이 잦아 운영이 힘들다고도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오픈할 때부터 역할분담을 명확하게 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성공비결을 밝혔다.
그들 가족은 각자의 성격에 맞춰 김 씨와 남편은 주방을, 여동생과 딸은 홀 관리를 맡기로 처음부터 영역을 확실히 나눴다. 김 씨는 “조금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것이 훨씬 장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일본라멘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우 씨(51)도 가족창업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단다. 이 씨는 25년간 금융업에 종사해오다 지난해 4월,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56㎡(17평) 점포임대비(1억 5000만 원)를 제외하고 6500만 원의 자금을 들여 매장을 열었다. 창업비용은 퇴직금과 집 담보 대출금으로 충당했다. 그리고 자신은 주방을 맡고 적극적 성격인 아들에게는 홀 서빙을, 아내는 카운터와 고객 응대,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에는 홀 서빙 업무를 돕도록 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면서 ‘하코야’ 대치점은 15개 테이블과 42개의 좌석으로 일평균 1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단다.
이 씨는 “창업 1년 만에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든든한 아내와 믿음직한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가족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가족창업의 장점으로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어 창업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것과 인건비 부담이 줄어 수익이 자연스레 높아지는 점을 꼽았다. 가족이 함께 매장을 운영하다 보면 일에 치여 서로에게 소홀해질 수 있으므로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쉬는 날을 정하고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이 씨는 “당장은 투자금 회수가 가장 큰 과제지만 잘 운영해서 10년쯤 후에는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뉴타운 상가에서 꼬치구이주점 ‘꼬지마루’ 정릉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부 이혜숙 씨(37)도 가족창업 예찬론자다. 그는 두 자녀의 교육비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남편, 시동생과 의기투합해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낮에는 육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주점을 택했다. 주점 창업에 든 비용은 7500만 원(점포비용 제외).
영업시간은 오후 3시부터 새벽 2시까지인데 이 씨는 자녀들 저녁을 챙긴 후 저녁 8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장에 나와 일한다. 매장 오픈부터 저녁 8시까지는 시동생이, 이후 시간은 남편이 맡아서 운영한다. 현재 주변에 이렇다 할 경쟁 점포가 없어 월평균 4500만 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이 씨는 “가족이 각자 맞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며 “세 사람이 협력해 매출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며 소박한 꿈을 밝혔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