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 유통업계 규제 법안 잇따라 발의…오프라인 매장 물류 허브로 탈바꿈 등 변화 시도
유통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온라인 공세뿐만 아니라 거대 여당에서 1호 정책 공약인 유통업계 규제 개정안까지 발의되며 삼중고를 겪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유통업계 쇠락 부추기는 규제들
8월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 두 달여 만에 유통산업발전법 관련 법안 8개가 발의됐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법안 내용은 대형 유통점포의 영업 규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동주·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유통법 개정안은 백화점, 복합쇼핑몰, 아웃렛, 면세점 등도 대형마트처럼 매월 2회 의무 휴업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홍 의원 개정안에는 대규모 점포 등의 등록을 제한할 수 있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을 전통시장, 상점가 등 기존 상권이 형성된 상업 보호구역으로 확대 개편하고 상업진흥구역을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점을 기존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규모 점포 등의 개설을 위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고 대형매장 출점 제한 구역인 전통상업보존구역을 현행 1km에서 최대 20km까지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통산업 규제 법안은 집권 여당의 1호 정책 공약인 만큼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연간 발생하는 매출 손실이 업계 추산 약 10조 원에 달한다. 주말 매출이 평일보다 2배가량 높은 걸 고려해 격주 휴업시 발생하는 매출 감소분을 반영한 수치다.
의무휴업일 규제의 영향력은 17일간 진행된 동행세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형마트는 지난 6월 28일과 7월 12일에 의무휴업일이라 문을 열지 못했다. 그 결과 동행세일 기간 매출이 증가한 전통시장, 백화점 등과 달리 대형마트는 오히려 전년 대비 1.4% 줄었다. 앞서 대형마트는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도 배제돼 타격을 입었다.
규제안 발의 소식은 오프라인 유통업계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계 매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3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유통업체 동향에 따르면 오프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6% 감소했으나 온라인 매출은 17.5% 증가했다. 특히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매출은 각각 5.6%와 14.2% 감소했다.
대표적으로 이마트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가량 감소한 484억 원으로 집계됐다. 롯데쇼핑 1분기 영업이익은 52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6% 줄었고 순손실 433억 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증권업계는 이마트와 롯데쇼핑의 2분기 실적도 적자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롯데쇼핑은 결국 구조조정에 나섰다. 당초 3∼5년에 걸쳐 200여 점포를 정리하는 계획은 목표치의 절반 이상인 120여 개를 연내 닫는 것으로 수정됐다. 홈플러스 역시 점포 매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안산점에 이어 대전 탄방점의 연내 매각을 최근 확정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직격타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 규제를 강화되면 죽으라는 이야기”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점포 구조조정은 가속화될 것이고 일자리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위기를 타파하고자 대규모 할인행사 ‘대한민국 동행세일’이 진행됐지만, 대형마트만 의무휴업일 규제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었다. 사진=일요신문DB
#살아남고자 탈바꿈하는 대형마트들
악화된 경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한 각종 전략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를 거점으로 온라인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첫 번째다. 롯데쇼핑은 전국 1만 5000개 매장과 연계한 O4O(Online for Offline) 전략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마트도 SSG닷컴의 배송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작년부터 140개 모든 점포에 온라인 물류 기능을 추가해 전국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 허브로 만든 전략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롯데마트는 중계점과 광교점에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스마트 스토어 체제를 구축했다. 기존 매장을 물류 창고로 활용하며 2시간 이내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일평균 온라인 주문 건수도 다른 매장 대비 평균 322.7%에 달했다. 중계점과 광교점의 매출신장률도 전 점포 평균 대비 각각 13.7%와 12.4% 높았다.
이마트는 더 나아가 차별화된 개인 맞춤형 점포를 내놓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이마트는 19개월 만에 신촌점을 출점했다. 오픈 첫날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화제가 됐다. 대학가 상권과 1~2인 가구, 20~30대 인구 비중이 높은 걸 고려해 상품 구성을 차별화한 것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소포장 식료품을 구성한 매장 비중이 80%에 달한다. 지하 1층은 신선식품 위주로 구성했다. 1~2인용 초밥과 디저트 과일 등 편의성이 좋은 품목을 기존 이마트보다 20~30% 확대했다. 지하 2층은 대학생들을 겨냥해 저가 와인과 수입맥주, 칵테일 등으로 구성했다.
이마트의 리뉴얼 오픈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5월 리뉴얼 오픈한 월계점은 식품매장을 강화하고 다양한 식당을 입점시키며 복합몰 형태로 꾸몄다. 특히 ‘테넌트’라고 불리는 임대매장을 대거 늘려 유명 맛집과 키즈카페, 브랜드숍을 열었다. 가족 단위 고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쇼핑뿐 아니라 식사와 여가 활동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과는 바로 나타났다. 식품매장은 오픈 한 달간 40% 이상 매출이 늘었다. 임대매장 매출은 전년 대비 290% 증가했다. 이마트는 앞으로 전국 140개 점포 중 30% 이상을 월계점처럼 리뉴얼할 계획이다. 리뉴얼 비용으로만 2600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가속화하며 대형마트가 더 힘들어졌다”며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전통시장 등과 상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커머스 업계만 커질 뿐이다. 이는 결국 국내 유통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