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부동산 해결책으로 제시…통합당 “국면전환용” 일축했지만 내부에선 손익계산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여권 핵심 인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연일 행정수도 이전 논의의 군불을 지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7월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에 내려가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며 “행정수도 완성은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의 혁신성장을 위한 대전제이자 필수 전략”이라고 밝혔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낙연 의원 역시 7월 14일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 “세종시에 국회의사당을 옮기는 것이 빨리 시작돼야 한다”며 “충청권에 혁신도시를 포함해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다. 추가 이전할 공공기관도 정해져 있다. 속도를 내 빨리 추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의원과 당권 레이스를 펼치는 김부겸 전 의원은 7월 21일 YTN라디오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자꾸 수도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책을 세워봐야 한계가 있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도했던 국토균형발전 철학을 되살려보자는 뜻 같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김두관 의원은 7월 22일 ‘행정수도특별법’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16년 만에 행정수도특별법안을 다시 제출한다. 이 방안 말고 서울 집중이 불러온 주택·교통·환경 등 산적한 난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행정수도 이전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 국가를 꿈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염원”이라고 밝혔다. 행정수도 이전 범위는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대법원, 헌재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권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다시 꺼내든 표면적 이유는 산업 및 인구 분산을 통한 서울·수도권 부동산 문제 해결이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도심 고밀도 개발 등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같은 일시적 공급책보다 수도권 인구 과밀화 해소 및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서울공화국’을 해체해 나가야 서울·수도권 집값 폭등 등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야당 미래통합당 반응은 부정적이다. 민주당이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등 부동산정책 실패로 성난 민심을 돌려보려 꺼낸 국면전환용에 불과하다는 판단에서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20일 “지난번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미 결정됐다”며 “이제 와서 헌재 판결을 뒤집을 순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수도권 집값이 상승하니 행정수도 문제로 관심을 돌리려 꺼낸 주제”라며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세종시 자체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논의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을 다시 추진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이 문제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국가균형발전특별법·지방분권특별법 등 3대 특별입법을 준비하며 임기 내 추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2004년 ‘관습헌법’ 이론을 내세워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판결의 핵심은 ‘수도는 대통령과 국가의 핵심정책을 결정하는 기관들이 집중돼 있는 곳’이라며 ‘정치·행정 중추적 기능을 하는 청와대와 국회가 있는 곳이 수도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 헌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헌재 판결로 제동이 걸리면서 행정수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 일부 중앙행정기관만 세종시로 이전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도중 대화를 나누는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이낙연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개헌이 아닌 여야 합의를 통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7월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관습헌법을 앞세운 헌재 판결은 2004년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또한 당시 헌재 결정문은 ‘시대 변화에 따라 관습 헌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여야가 합의해 ‘행정중심복합도시법’을 개정하는 입법 차원의 결단으로 행정수도 완성이 가능하다”고 국회에 행정수도완성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노무현 정부 때는 수도권 사람들이 서울에 집중된 자본과 인구 권력을 절대 뺏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반면 현재는 서울 수도권 사람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 서울 수도권은 과잉상태로 삶의 질 개선이 아닌 생존의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며 “이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포함한 ‘서울공화국 해체’는 유의미하게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선 2022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차기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캐스팅보트를 쥔 충청권 표심 확보가 중요하다. 더군다나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을 통한 국토균형발전 논리는 충청권뿐 아니라 전국적 민심을 얻을 수도 있다. 수도권 역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발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집권여당으로선 이러한 정치적 계산을 충분히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당의 반대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전계완 평론가는 “부동산 문제와 연계해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시비를 걸고 있지만, 제대로 논쟁이 붙으면 통합당 논리가 빈약하다”며 “국민 다수 의견이 세종시 이전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통합당이 저지하고 나서면 국민들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7월 22일 자신의 SNS에 “통합당이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론에 왜 반대로 일관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민주당의 국면전환용이라는 이유로 일축하고 있다면 결국 손해보는 쪽은 우리일 것”이라고 했다. 장제원 의원뿐만 아니라 충청권 중진 정진석 의원과 ‘잠룡’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일부 인사들도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며 긍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행정수도 이전 효과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국회와 청와대 등 행정수도를 이전했을 때 부동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거라고 판단했는지 묻고 싶다. 서울의 관문도시 성격이 바뀌는 것 아니다”라며 “여당은 거시적 국토균형발전을 이야기하는데, 국민들은 지금 당장의 부동산 현안이 문제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법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든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전직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 취지는 전국균형발전이다. 서울 집값 잡는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생활 이권 중심이 서울에 남아있는 현 구조에서 청와대 국회 정부부처가 세종시에 내려간다고 공무원들이 따라 내려가겠나. 서울 부동산 문제 해결책은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충청도 표심을 잡기 위한 노림수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효과 없었다. 세종시에 일부 행정기관 이전하며 인프라 확충했는데, 충청도 전체 표심에 큰 영향 주지 않았다”며 “전국적 차원에서 봐야지, 특정 표심 잡으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