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망사용료 분쟁중인 이때 굳이…국내 OTT 육성 외면 유료방송 1위 굳히기 전략 비판론
KT가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와 손잡으면서 그 배경과 시장에 미칠 파급력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빌딩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KT는 지난 8월 3일부터 자체 IPTV ‘올레tv’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간 KT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 간 망 사용료 갈등이 커지자 넷플릭스와 제휴에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망 사용료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망을 이용하는 대가로 내는 비용이다. 넷플릭스는 그간 네이버 등 국내 CP와 달리 이를 부담하지 않았고, SKB가 지불을 요구하자 의무가 없다며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에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글로벌 CP와 국내 ISP 간 대립에 한 발짝 물러나 있던 KT가 8월부터 넷플릭스와 본격 제휴에 나선 것이다.
KT가 넷플릭스와 손잡은 이유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많다. SKT의 SKB와 LG유플러스(LGU)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올 2분기 영업이익과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모두 상승했다. SKT가 자사 OTT 웨이브로, LGU는 넷플릭스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키운 것도 한몫했다.
KT는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8.6% 늘었으나 매출은 3.6% 줄었다. 최근 현대HCN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절차를 밟는 중이고, OTT ‘시즌’을 내놨지만 넷플릭스와 웨이브, CJ ENM의 티빙에 밀려 점유율이 낮은 점이 실적에 반영됐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아울러 SKT는 카카오M과 콘텐츠 투자에 제휴를 맺고, CJ ENM과 JTBC도 올 10월 OTT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경쟁사들 투자 행보가 본격화하고 있다. KT 입장에선 IPTV와 OTT에서 모두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SKT처럼 많은 돈을 들여 자체 OTT를 키우기보단 넷플릭스 콘텐츠를 집어넣어 손쉽게 영향력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라며 “LGU가 넷플릭스와 손잡은 뒤 IPTV 요금제를 올리고 가입자를 늘리는 모습에 KT도 제휴를 원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난 3월 KT 대표이사로 취임한 구현모 대표의 실적 쌓기와도 연관된다. KT 주요 사업은 크게 △유·무선사업과 초고속인터넷 △IPTV와 OTT 등 미디어 △B2B로 나뉜다. 구 대표는 영업이익이나 신사업 차원에서 성과를 내는 동시에 황창규 전 회장의 색깔을 빼고 본인만의 사업체계를 굳혀야 한다. 구현모 대표는 KT 수장이 되기 전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을 맡아 IPTV 사업 강화와 시즌 론칭에 힘썼다. 특히 IPTV는 KT가 수년간 1위를 지켜온 핵심 사업으로 놓쳐선 안 된다. 따라서 시장 수요가 높은 넷플릭스를 끌어들여 유료방송 1위 자리를 굳히는 전략을 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미디어 시장을 넷플릭스가 잡아먹는 상황에서 굳이 대항하겠다고 새로운 서비스를 키울 필요가 없고 승산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구현모 대표 입장에선 바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유료방송 1위도 지켜야 하기에 넷플릭스를 집어넣어 단가를 올리고 LGU로 가려는 이용자 탈주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구현모 대표가 현대HCN 인수전에서 경쟁사들보다 비싸게 써서 무조건 인수하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KT가 콘텐츠 공룡 ‘넷플릭스’와 제휴한 것과 관련해 해외 OTT에 종속될 수 있는 국내 미디어 생태계는 무시한 채 점유율을 뺏기지 않으려 플랫폼을 내줬다는 비난이 제기된다. 사진은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AI/DX 데이’를 열고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업의 중요성과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사진=KT
이유가 어떻든 KT에 대한 업계 시선은 곱지 않다. 넷플릭스는 2018년 당시 3위 사업자였던 LGU와 독점 계약을 맺고 빠르게 가입자를 늘렸고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OTT 수요 증가로 영향력을 크게 확장 중이다. 국내 미디어 시장의 해외 OTT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시장 잠식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KT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것은 미디어 생태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점유율 지키기에만 급급한 행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콘텐츠업계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K콘텐츠 투자 확대로 제작사들 입장에선 투자자가 늘어 당장은 좋을 수 있어도 이 추세가 장기화하고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을 독점할 만큼 거대해지면 K콘텐츠 해외 유통망까지 독점할 수 있고 국내 제작사 협상력도 약해질 수 있다”며 “이 와중에 유료방송 1위 KT까지 콘텐츠 사업 강화 차원이 아닌 IPTV 사업에서 손쉽게 마케팅하려고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이는 행보는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한국판 OTT를 키우겠다며 유료방송사업자 점유율 제한 합산규제 폐지 등 지원책 내놓은 상황에서 KT가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은 건 기조에 어긋나는 행보로 정부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망 사용료 문제도 진행형이다. 최근 넷플릭스를 비롯한 콘텐츠사업자들이 망 사용료를 내야 하는 조항이 담긴 전기통신사업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콘텐츠사가 통신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망 사용료 등 구체적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이와 관련, KT가 “KT와 넷플릭스는 관련 법률을 준수하고, 서비스 안정화 노력을 함께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망 사용료 불씨를 해결하지 못한 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있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넷플릭스의 무임승차를 막고자 법을 마련했고 시행령도 준비 중인 와중에 KT가 넷플릭스와 손을 잡았다”며 “KT가 망 사용료와 관련해 조건을 계약서에 넣었다고 했지만 당장 받고 있다는 뜻이기보다 시행령을 내놓으면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는 등 협상 여지를 남겨뒀다는 의미로, 시행령이 약하게 나오면 KT가 말하는 ‘조건’은 아무 힘이 없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제휴는 올레tv 이용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KT는 미디어에서 오픈 플랫폼을 지향하기에 협의할 수 있는 곳들과 손을 잡는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망 이용료와 관련해서는 “넷플릭스와 계약에서 추후 국내 법이 나왔을 때 논의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해뒀다.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오면 다시 넷플릭스와 협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 사업에서 힘을 빼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시즌은 무료 오리지널 콘텐츠를 계속 추가해 가입자 수를 늘리려고 노력 중으로, 올레tv 가입자 수준으로 늘린 뒤 다양한 회사와 제휴해 대형 콘텐츠에 투자·유통할 계획”이라며 “미디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의견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