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무기징역→파기환송 “범행동기 확실치 않아, 졸음운전으로 봐야…보험은 재테크 활용”
#검찰 “보험금 노리고 아내 살해”
검찰은 “A 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를 살해했다”며 A 씨를 살인,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사진=연합뉴스
‘보험금 95억 원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 사건’이 보험사기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남편 A 씨는 2014년 95억 원의 보험금을 받기 위해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살인과 사기 혐의였다. 그로부터 6년의 법정 공방 끝에 무죄가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의견이 다수지만 대법원과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A 씨의 범행 동기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검찰의 기소내용에 따르면 2014년 8월 23일 새벽 3시 41분쯤 A 씨는 천안시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갓길에 정차되어 있는 화물차를 들이받아 교통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캄보디아 출신의 아내는 저혈량성 쇼크 등으로 숨졌다. 당시 아내는 임신 7개월이었다. 검찰은 A 씨가 아내 앞으로 25건, 약 95억 원에 이르는 보험에 가입한 점을 확인하고 살인과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매달 약 360만 원의 보험료를 내왔다. 교통사고 발생 이후에는 화물차에 지급해야 할 1000여 만 원의 합의금을 보험회사로부터 받기도 했다. 2심 재판부는 “A 씨가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자 약 95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을 목적으로 아내를 살해했으며 보험회사가 합의금을 대신 지급하게 함으로써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판단했다. 살인과 사기 모두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과 파기환송심의 반전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가 사건이 발생한 천안 고속도로에서 현장 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고의 사고라는 판단을 내릴 만큼의 정황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2심을 파기했다. 통상 살인죄와 같은 무거운 범죄의 경우 직접증거가 없다면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 인정이 가능하다. 단, 이때의 간접증거는 직접증거에 버금가는 매우 우월한 증명이 돼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범행 동기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사고 발생 당시 정황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사고지점 반대편 휴게소에 설치된 CCTV 영상과 사건 이후의 정황뿐이었다. 한편 A 씨는 경찰 수사에서부터 일관되게 졸음운전을 주장해왔다.
또 대법원은 “많은 금액의 보험금을 수령한다는 이유만으로 살해 동기를 인정할 수 있는지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매우 절박한 상황에 있거나 범인의 인성이 원래부터 잔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A 씨의 월 수익은 약 1500만 원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지능검사 및 심리테스트 결과에서도 살인 범죄를 저지를 만한 심리적 위험 요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유죄의 정황 증거로 쓰였던 높은 금액의 보험의 경우, A 씨가 다른 저축 수단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보험을 예금이나 적금과 같은 금융거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점이 참작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는 보험을 가입한 뒤에는 필요에 따라 보험계약대출, 보험료 중도인출 등을 이용하는 등 보험을 일종의 자산운용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외에도 △피해자 사망에 따른 보험금 95억 원 중 54억 원은 일시에 나오는 게 아닌 점 △A 씨 혼자가 아니라 다른 법정 상속인과 나눠 지급받게 돼 있는 점 △전처소생의 아이를 위한 보험도 많이 가입했던 점 △본인이 가입한 대다수의 보험 계약 내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 △사고가 A 씨 본인의 생명이나 신체를 위협할 정도였다는 점 등이 유리한 정황으로 작용했다.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대전고법도 대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여 살인과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대전고법 재판부는 “사고 당시 차량 운행방식에 고의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고 피고인의 설명에 의구심이 있지만 고의라고 단정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범행 동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수면유도제가 검출된 경위나 사고 당시 정황 등에 대해서도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살인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특히 아내의 몸에서 나왔던 수면제 성분이 A 씨 혈흔에서 발견된 점도 언급됐다.
다만 재판부는 “졸음운전을 했더라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기에 예비적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된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죄로 금고 2년을 선고했다. 금고형은 교도소에 감금은 되지만 노역은 과하지 않는 형벌을 말한다.
한편 대전고검은 8월 15일 ‘범행 동기와 범행 전후 피고인 태도 등의 간접증거로 보아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상고장을 냈다. 대전고검이 파기환송심에 불복하면서 이번 사건은 대법원에서 또 한 번 다투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법조계 관계들은 검찰이 파기환송심 결과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보내고 있다. 한 변호사는 “최근 이춘재 건 등 재심 사건이 다수 진행되면서 법원이 확실한 범행 동기나 직접적 증거 없이는 쉽게 유죄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게다가 한 차례 대법원 판단이 내려진 사건이라 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일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