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삼성SDI 1분기 적자 속 장비업체 계약 해지…ESS와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로 시장 재편 흐름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매출 6조 5550억 원, 영업손실 2078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줄었고 영업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북미 전기차 수요 약세와 주요 고객사의 전기차(EV) 파우치 제품 물량 감소, 북미 ESS 생산기지 확대에 따른 초기 안정화 비용 등이 발목을 잡았다. 삼성SDI도 1분기 매출 3조 5764억 원, 영업손실 1556억 원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6% 늘었고 영업손실은 64.2% 줄었다. 배터리 부문 적자는 이어졌다.
실적 부진의 주된 원인은 장기화되고 있는 전기차 캐즘이 꼽힌다. 2021~2022년만 해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고 북미와 유럽에 대규모 배터리 공장 투자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전기차 수요 증가 속도가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배터리 셀 업체들은 기존 투자비 부담을 안은 채 낮은 공장 가동률과 수익성 압박을 동시에 받게 됐다.
수요 전망이 조정되면서 투자 계획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아직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지 않은 공장이나 초기 단계 프로젝트는 완성차 업체의 생산 계획과 시장 수요에 맞춰 일정과 용도를 다시 따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배터리 셀 업체와 완성차 업체 사이에서는 공장 가동 시점 연기, 합작 구조 재편, EV용 생산라인의 ESS 전환 같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GM·삼성SDI는 인디애나 배터리 공장 양산 시점을 2026년에서 2027년으로 늦췄고, 2025년 말에는 SK온과 포드가 미국 배터리 합작 구조를 정리했다.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의 대규모 EV 배터리 공급계약도 취소했다. 2026년 2월 LG에너지솔루션이 스텔란티스의 넥스트스타 에너지 지분을 인수하고, 3월 GM·LG에너지솔루션이 테네시 EV 배터리 공장을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생산시설로 전환했다.
투자 재편 흐름은 최근 국내 2차전지 장비업체 공시에서도 확인된다. 제이스로보틱스(옛 제이스텍)는 지난 4월 3일 계약상대방의 경영상 사유에 따른 프로젝트 중단 요청으로 470억 160만 원 규모 각형 2차전지 제조설비 공급계약 해지를 공시했다. 지난 4월 30일에는 톱텍이 계약상대방의 해지 통보로 북미 2차전지 기업과 맺은 538억 원 규모 모듈라인 계약 해지를 공시했고, 자비스도 글로벌 2차전지 제조사와 체결한 77억 원 규모 2차전지용 CT 및 이물 엑스레이 검사장비 계약 해지를 공시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가 전기차 생산 계획을 늦추면 배터리 셀 업체의 공장 증설 계획이 조정되고, 이는 다시 공장에 들어가는 생산·검사 설비 발주에 영향을 준다”며 “기존에 세웠던 전기차 수요 전망과 실제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서 공장별 생산 계획도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장비 계약 해지 역시 셀 업체의 공장 증설 일정이 늦춰지거나 고객사 프로젝트가 재검토되는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업계가 기대를 걸고 있는 부문도 있다. 전기차 시장은 캐즘을 겪고 있지만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을 저장했다가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ESS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북미 ESS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 ESS용 배터리 셀을 공급할 수 있는 주요 업체가 한국 배터리 기업이라는 점도 기회 요인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서도 ESS를 2차전지 반등의 핵심 축으로 보고 있다. 대신증권은 5월 6일 2차전지 산업분석 리포트에서 “2차전지 섹터는 전기차 캐즘과 고금리 환경을 지나 회복 국면 초입”이라며 미국 AI 데이터센터발 ESS 시장 성장을 주요 투자 포인트로 제시했다. 대신증권은 미국 ESS 시장이 2025년 51기가와트시(GWh)에서 2030년 148GWh로 연평균 20% 성장하고, 국내 배터리 셀 3사의 북미 ESS 수주잔고가 200GWh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배터리업계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부담으로 작용했던 설비투자도 점차 마무리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그동안 10조 원이 넘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해왔고, 기존 전기차 전용 라인을 ESS 라인으로 전환하는 데도 큰 비용이 들어갔다”며 “하반기부터 투자 부담이 줄고 라인 가동이 늘면 매출이 발생하고 보조금 효과도 붙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통형 배터리도 하반기 수익성 회복 변수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 신규 수주를 100GWh 이상 확보해 4월 말 기준 수주잔고가 440GWh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BMW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에 적용될 46시리즈 배터리 공급사 선정 절차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순수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고객 확대 기대도 커졌다.
삼성SDI도 메르세데스-벤츠를 새로운 고객사로 확보한 데다 1분기 적자폭을 줄이는 과정에서 고부가 원통형 배터리 판매 호조가 수익성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에는 테슬라향 2170 원통형 배터리가 시장을 주도했다면 최근에는 4680 등 46시리즈 원통형 배터리의 제조 병목이 일부 완화되면서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공급 확대 기대가 커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고성능 전기차를 중심으로 46시리즈 채택이 늘어날 경우 ESS와 함께 2차전지 업황 반등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가 전기차 수요 회복을 이끌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 변동성이 커지고 내연기관 차량 유지비용 부담이 높아질 경우 전기차 구매 수요가 다시 자극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수요가 따라붙을 경우 업황 회복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배터리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 곧바로 배터리 업체의 수혜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기차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배터리 소재 가격과 운임, 공급망 비용 상승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다만 하반기 경기 회복 전망이 나오고 있고 그동안 이어진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도 점차 완화되는 만큼 수요가 회복될 경우 실적 개선 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 여파와 메탈 가격 강세로 단기 주가 변동성은 커질 수 있지만 업황 자체는 개선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도 지난해 대비 플러스로 전환되고 있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새로운 배터리 타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점이 변수”라며 “CATL의 소듐 배터리 등이 3분기부터 양산될 예정인 만큼 실제 시장 침투 속도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