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실족? 드라마처럼 사라진 그녀
실종된 다나하시 씨는 지난 2009년 12월 28일 홀로 한국으로 왔다. 개인여행을 할 만큼 그에게 한국은 익숙한 장소였다. 지난 5년 동안 류시원의 팬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며 그의 레이싱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한국을 방문했다. 실종 당시 묵었던 호텔 역시 세 번째 머무는 장소로 호텔 지배인은 “이전에도 혼자 한국을 방문했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다나하시 씨가 류시원의 팬이 되었던 것은 2005년 남편 다나하시 캉에몬 씨와 사별한 후부터다. 그의 세 딸은 일본 주간지 <여성세븐>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사별한 슬픔을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위로 받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딸들의 효심으로 시작된 여행이지만 예정대로라면 1월 4일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어야 할 그가 여태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장소는 강릉 주문진으로 친구에게 하얀 등대 사진과 류시원의 상반신 사진을 전송한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하다. 그의 세 딸들은 4월 15일 주문진을 방문해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전단지를 배포해 어머니의 소식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실종 직전 주문진에 갔던 이유는 류시원이 출연한 드라마 <진실>의 붉은 등대를 보러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애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춘천으로 갈 거라 안부를 전했던 그는 도착 후 ‘춘천은 재미가 없어 강릉으로 갈 거야’라는 문자를 친구에게 보냈다.
이후 그가 도착한 강릉시 주문진은 드라마 <진실>에서 최지우가 숨어 지내던 장소다. 최지우는 극중 류시원과의 이별을 결심하고 ‘아무에게도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강릉으로 가 숨어 지내게 된다. 이후 류시원은 지인으로부터 최지우의 근황을 듣게 되고 강릉 일대를 찾아 헤매던 중 주문진 붉은 등대 앞에서 최지우를 찾게 된다. 다나하시 씨는 바로 그 붉은 등대를 보러 갈 것이라고 한 후 붉은 등대가 아닌 10km 떨어진 부근의 흰 등대 사진을 지인에게 전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인근 횟집에서 홀로 소주를 마시는 것을 본 횟집 주인의 증언을 마지막으로 다른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강릉경찰서에서는 고속버스 운전사의 증언을 토대로 “저녁 8시 10분 발 고속버스를 타서 11시 10분 경 서울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지만 일본대사관에서는 “고속버스 운전사가 말하는 인상착의만으로 다나하시 씨라 확신하기엔 부족했다. 또 경찰 측에서는 ‘저녁 6시 경에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사진을 전송했다’고 했지만 친구에게 사진이 전송된 시간은 저녁 9시다. 따라서 주문진을 떠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릉경찰서에서는 실족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해안가를 수색했지만 어디에도 사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동안 그를 목격했다는 사람도 없었다. 다나하시 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횟집 주인은 “이미 끝난 사건으로 알고 있다. 장사하는 집인데 사건과 연관되면 곤란하다”고 전화를 끊었다.
다나하시 씨가 묵었던 호텔 관계자는 “당시 그의 객실에는 트렁크 가방이 있었고 그 안에는 ‘류시원이 그립다’고 적은 노트와 류시원의 노래 가사들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다나하시 씨처럼 한국 드라마 촬영지나 스타를 보기 위해 혼자 여행 오는 중년 여성은 생각보다 많다”고 전했다.
일본대사관에서는 실종 사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러한 실종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한류 열풍이 시작된 후 세 번째로, 모두 한국 드라마 촬영장소를 보러 개인여행을 왔다 사라졌던 여성들”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살해되거나 납치된 것이 아닌 현재까지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또 다른 공통점 이다”라고 전했다.
최근 류시원은 그의 일본 팬 카페에 글을 올려 “실종된 다나하시 씨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일본 남자들 “한국드라마 무서워~”
총리 부인도 ‘한류처’
이번 사건을 두고 일본에선 우연한 실종사건이 아닌 ‘언제고 한 번 일어날 법한 일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일본 주부들의 한류열풍이 도가 지나칠 정도라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반응이다. 일본 타블로이드 신문 <석간 현대>와 주간지 <간세이>는 일반인 뿐 아니라 고위 관료의 부인들도 한류에 중독된 ‘한류처’라고 지적하며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아내 하토야마 미유키 여사를 예로 들고 있다. 미유키 여사는 평소 이서진의 팬으로서 이서진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그가 머무는 호텔까지 찾아가 선물을 주고 포옹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배용준이 홍보 차 일본을 방문하자 매니지먼트 쪽에 요청해 자신과의 극비 만남을 추진한 것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어 일본 현지 언론은 ‘아내가 동방신기 콘서트를 보러 몇 번이나 한국을 방문해 자신이 겸업 가정부가 됐다’는 A 씨의 사연을 보도하거나 아내를 위해 한국TV에서 방영된 드라마를 직접 녹화하고 번역해야 하는 B 씨의 고초를 보도하며 ‘일본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TBS에서 황금시간대인 9시에 ‘아이리스’를 방영하겠다고 결정하자 일본 언론은 이 드라마의 인기가 일본 가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 두렵다는 반응이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