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 쑥쓰~ 아이스쇼 땐 철판 깔았죠
▲ 곽민정은 인터뷰 내내 신세대 특유의 재치 있고 솔직한 답변을 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인터뷰보다는 수다에 가까웠다고 할까. 곽민정은 그를 귀엽고 수줍은 많은 소녀라 생각했던 기자의 선입견을 깨고 시종일관 솔직담백한 응답으로 되레 기자를 당황케 했다. 인터뷰 내내 어떤 질문에도 특유의 “허허~”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른 선수가 경기를 말아 주셔가지고” “부담 백배” “짜증 만땅^^” 등의 신세대 특유의 재치 넘치고 솔직한 답변을 해맑게 쏟아냈다. 중저음의 목소리에 거침없이 털털한 16세 소녀. 그것이 실제로 만난 곽민정에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를 만난 날은 ‘KCC 스위첸 Festa on lce 2010’ 아이스쇼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자연스레 인터뷰의 말문은 아이스 쇼에 대한 것부터 시작됐다.
―어제 아이스쇼가 성황리에 끝났다. 세계선수권 이후 바로 준비에 들어갔는데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어제 끝나고 아쉬운 마음에 참가 선수들과 호텔에서 밤새 뒤풀이를 하고 오늘 아침에야 집에 왔어요. 4대륙, 올림픽, 세계선수권까지 굵직한 대회를 세 개나 치르고 바로 아이스쇼를 준비한 터라 피곤이 누적된 상태였지만 연아 언니와 새벽까지 아쉬운 마음에 잠을 못 이뤘어요.
―아이스쇼 무대에서 ‘마시멜로우’와 ‘더 보이스 위드 인’ 두 곡을 보여줬다. 하나는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성숙함이 물씬 풍기는 여성스러운 안무였는데 어떤 게 진짜 곽민정일까.
▲(손사래를 치며) 진짜 솔직히 둘 다 제가 정말 안 해봤던 모습이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저는 귀여운 것이 아닌 거의 미소년적인 이미지예요. 두 작품 모두 사실 부끄러워서 안 해본 안무였거든요. 쑥스럽고 창피하고…. 얼굴에 철판 깔고 해야 되는데 저는 그걸 못 하겠더라고요. ‘늘 난 춤을 못 춰 난 안 어울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정말 그 벽을 깨보자’하는 생각에 공연 전에 ‘나는 곽민정이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췄던 거예요.
―세계 최대의 무대 올림픽이 열릴 때 마침 시니어로 승급했다.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 목표 순위는 원래 몇 위였나?
▲사실 20위권 안팎 정도로만 목표를 잡았었어요. 솔직히 올림픽 출전 몇 주 전까지 나가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11월에 열린 회장배 랭킹대회 일등이 밴쿠버 올림픽 간다는 거예요. 완전히 깜짝 놀랐죠. 최고의 무대에 선다는 게 너무 떨리는 거예요. 이런 무대도 서보는구나. 프리스케이팅까지 못 간다 해도 곽민정의 피겨 인생은 성공했다 생각했죠. 그런데 쇼트에서 두 명의 선수가 경기를 말아주셔가지고(망쳐서) 제가 쇼트 16위로 프리까지 진출한다는 거예요. 또 한 번 깜짝 놀랐죠. 이렇게 큰 무대를 밟아 볼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지 순위는 기대도 안 했는데 결국 종합 13위까지 했어요.
▲ 지난 1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선 보인 곽민정의 아이스쇼 모습. |
▲어우~ 부담백배^^. 저는 제 인생에서 목표를 지금껏 잘 이뤄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주변에선 김연아 언니가 제 나이였을 때와 비교 해 ‘쟤는 좀 아니잖아~’라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연아 언니처럼 제가 세계 1위가 돼야 한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아요. 그냥 아 곽민정이라는 피겨 스케이터가 있더라, 그 선수는 이런 색깔과 강점이 있더라 정도? 그런데 벌써 사람들이 저의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더라고요. 쟤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거 같지만 아직 연아만큼은 아니잖아 하는 말들을 할 때가 가장 부담이 되고 힘들어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눈물을 쏟기도 했는데 혹시 그런 심적인 부담이 영향을 미친 건 아닌지(내년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 3장이 곽민정의 순위에 달렸다는 말이 꽤나 부담이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토론토에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할 때가 최고였죠. 사람들이 이번에 제가 나가서 못 하면 두 장이고 잘하면 세 장이니까 사람들이 ‘차라리 곽민정이 안 나가면 김연아가 잘해서 석 장인데 제 꼭 나가야 되나’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내가 못해서 두 장이 되면 솔직히 정말 내가 안 나가는 게 나은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그때 정신적으로 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이탈리아에서 쇼트를 준비할 때의 마음은 차라리 쇼트 떨어져서 프리에 출전 안 했으면 좋겠다였어요.
―그리고 바로 쇼트에서 부상을 입었는데….
▲쇼트 때 제가 엉덩방아를 찧었잖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프리 연습을 시작하는 날 아침에 통증이 너무 심한 거예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지어 프리 시작 6분 전 워밍업 때는 전혀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의 통증이 몰려왔어요. 첫 번째 점프를 죽을힘을 다해 성공하고 두 번째 점프를 들어가야 할 때 고통이 이렇게 심한데 어떻게 뛸까 덜컥 겁이 났었어요. 나는 안 아프다 나는 안 아프다 계속 되뇌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뛰었어요. 점수는 솔직히 많이 낮았어요. 회전수가 모자란 점프도 있었고요. 끝나고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결국 끝까지 해냈다는 거에 대견해 울고, 생각해보니 그래도 그렇게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점수 낮아!’ 하면서 화가 나서 또 울었죠.
―그래도 또 프리 경기 출전권을 따냈다. 부상으로 기권할 수도 있었는데 어떤 마음이었나.
▲ 지난 18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선 보인 곽민정의 아이스쇼 모습. |
이날 총점 120.47점을 기록한 곽민정은 자신의 최고 기록인 155.53점에 35.06점이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첫 번째 과제인 ‘트리플 러츠+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하면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후의 점프는 감점을 받은 기술요소가 많았다.
―오서 코치와 사제지간이 된 것도 관심이 높다. 이제 토론토 전지훈련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니어에 왔지만 아직 주니어 티가 나요. 기술적인 면은 차이가 없는데 표현력이 아직 주니어에서 못 벗어 난 거 같아요. 이번에 전지훈련에서 오서 코치와 함께하며 어색한 표현력 부분을 가장 많이 보완하고 싶어요. 오서 코치는 정말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을 잘 끌어 올려 주시는 분이에요. 이번에 일주일 정도 제 동작을 봐준 시간이 있었는데 저에게 산뜻하고 가벼운 몸짓이 장점이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외국생활이 아직 낯설고 외롭지만 언제나 제 마음을 잘 알아주는 연아 언니와 오서 코치가 있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떠나려고요.^^
곽민정이 인터뷰하며 스스로 거듭 강조한 것은 “누구처럼, 누구만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싶지 않다”였다. 그저 곽민정의 피겨 인생을 쓰는 것, 1, 2위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이 빙상 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무대의 감동을 봐달라는 것이 그의 부탁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체력이 약해 겨울에 감기라도 걸리지 않기 위해 시작한 것이 피겨였어요. 지금도 체력은 피겨선수치고는 약한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여태껏 쌓아올린 모든 결과들이 순위를 떠나 저에겐 감사하고 제가 이만큼 견뎌냈다는 것이, 그 과정 자체가 금메달감인 것 같아요.^^ 저는 냉정히 말해 연아 언니만큼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스케이터로서 연아 언니와는 또 다른 느낌의 매력을 보여드릴 자신 있어요. 세계 1위를 할 수 있을까보다 곽민정만이 가진 장점과 매력을 더 많이 봐주세요”
●곽민정은…
▲출생 1994년 1월 23일
▲신체 160cm 40㎏
▲학력 군포수리고등학교 재학
▲수상 2010년 제15회 코카콜라 체육대상 신인상, 2010년 제64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시니어부문 2위
▲경력 2010 제21회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ISU 공인 개인 최고 기록 쇼트: 53.68점 (2010 전주 4대륙 대회), 프리: 102.37점 (2010년 동계 올림픽), 총점: 155.53점 (2010년 동계 올림픽)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