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 ‘장기집권’ 그늘에 새싹들 시들
#골키퍼
예비 엔트리가 발표된 이후 가장 말이 많았던 포지션은 골키퍼 부문이었다. 올해 초 K리그 구단들의 협조를 구해 국내파 위주로 남아공 현지에서 담금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운재(수원)의 주전 자리는 마치 떼어논 당상처럼 비쳐졌지만 현 시점에서 100% 신뢰를 보이는 이는 거의 없다. 오죽했으면 대표팀 김현태 GK 코치가 “골키퍼에는 변함이 없다. 더 이상 언론에 (이운재)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기자들에게 따로 부탁까지 했을까.
1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진 잠비아와 평가전(2-4 패), 2월 도쿄에서 있은 중국과 동아시아선수권 2차전(0-3 패)이 결정타. K리그에서도 불이 붙었다. 수원의 부진과 맞물려 실점 없는 경기가 없었다는 점에 근거, 이운재는 비난의 중심에 섰다. 이 와중에 최약체로 지목된 경남의 약진이 더해져 뒤늦게나마 이운재를 빼고, 40세란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는 김병지에 본선 골문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일각에선 K리그 최고 골키퍼 중 하나로 지목되는 권순태(전북)와 김용대(서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운재는 확연히 둔해진 몸놀림과 순발력, 잦은 실수, 약해진 발목 등이 문제로 지목됐다. 끝없는 비난 여론 탓일까. 예비 엔트리가 발표된 뒤에도 이운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김 코치의 K리그 관전 횟수는 줄지 않았다.
축구계 전문인들 상당수가 이운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한 해설위원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에콰도르 평가전(16일) 후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지도자도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지나친 맹신은 자칫 망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수비진
‘깜짝’ 발탁의 중심은 디펜스였다. 황재원(포항)의 경우가 그랬다. 대표팀은 중앙 자원(6명) 중 2명을 제외해야 한다. 이영표(알 힐랄)와 차두리(프라이부르크)가 주축이 될 좌우 측면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 가운데 센터백이 고민이다.
특히 강민수(수원)와 김형일(포항)이 페이스가 떨어졌다는 평가 속에 황재원이 1년여 만에 대체 자원으로 급부상했다. 2일 K리그 부산-서울전을 관전한 허 감독은 “둘(강민수-김형일)을 쭉 지켜봤는데, 페이스가 좋지 않다. (황)재원이는 잦은 돌발 행동과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지만 실력은 뒤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강민수와 김형일은 선발의 가능성이 낮은 반면, 황재원은 조용형(제주)-곽태휘(교토)-이정수(가시마)의 백업 자원으로 활용이 유력하다.
이밖에 재미있는 사실은 조원희(수원)를 디펜스에 올렸다는 점. 허 감독은 “딱히 의미는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으나 조원희는 수비형 미드필더뿐 아니라 풀백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멀티 요원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원희는 오랜만에 명단에 오른 김남일(톰 톰스크)과 경쟁할 것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중앙 요원 신형민(포항)과 구자철(제주)도 유력 변수로 작용한다.
물론 미드필더진도 만만치 않다. 왼쪽 날개 김치우와 함께 허리진 왼쪽 측면과 공격진 측면에서 뛸 수 있는 이승렬(이상 서울)이 이름은 올렸으나 선발을 확신하기에는 2% 부족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표팀 관계자도 “솔직히 미드필더 10명 중 최소 2명을 빼야 한다고 가정할 때, 이미 몇몇은 탈락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20세 이하 세계 청소년월드컵에서 맹활약한 김보경(오이타)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젊은 선수들을 월드컵에 일부 데려갈 수 있다”는 허 감독의 공언을 믿어야 하는 처지다. 단, 설사 탈락해도 부상 등에 대비, 2~3명 정도를 더 선발할 가능성도 있다.
#공격진
이변은 없었다. 설왕설래를 빚은 무적 신분의 이천수와 조재진(오사카)은 아쉽지만 아예 논외 대상이었고, 월드컵 출전을 위해 유럽 무대에서 K리그로 유턴한 설기현(포항)이 막판까지 허 감독을 고민을 깊게 했지만 더딘 부상 회복과 실전 감각이 매우 떨어진 상황에서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염기훈(수원)을 미드필더가 아닌, 공격수로 분류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왼쪽 날개로 포진이 가능한 염기훈은 캡틴 박지성(맨유)의 유력한 백업 멤버. 박지성을 허리진 중앙으로 돌릴 수 있음을 가정하면 염기훈처럼 적절한 카드는 없다. 왼쪽 발등 피로골절에서 회복된 염기훈이 선정된다면 최종 엔트리가 발표될 때 미드필더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왼쪽 측면에서는 박지성을 제외해도 김치우-이승렬과 더불어 최소 3 대 1 경쟁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허 감독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성남전을 관전하며 둘의 경기력을 꼼꼼히 체크했다. 한 축구인은 “둘 중 한 명만 뽑힌다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이승렬이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귀띔했다.
박주영(AS모나코)만이 유력한 가운데 나머지 공격수들도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예비 명단 발표에 앞서 정해성 수석코치가 직접 기량을 확인했던 안정환(다롄스더)이 보다 유력한 가운데 K리그 이동국(전북)은 다소 불안하다. 단순히 공격 포인트만을 놓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가정하면 특히 그렇다. 더욱이 오른쪽 허벅지와 발목이 좋지 않아 부상으로 탈락했던 2006년의 악몽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들쭉날쭉한 플레이로 불안감을 더해가는 이근호(이와타)는 박지성의 포지션 변경과 더불어 이승렬의 선발 여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