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빙상환경 정치 필요성 느꼈다”
▲ 한나라당에 새로 영입된 쇼트트랙 스타 전이경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몽준 대표와 최고 위원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 정치 진출 선언 후폭풍
“요즘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아 아예 인터넷을 잘 안 봐요(웃음).”
정치 얘기를 꺼내니 조리 있게 말 잘하기로 소문난 전이경은 이렇게 농담조로 받아쳤다. 기사가 나간 후 주변으로부터 “미쳤냐?”, “왜 그런 곳에 발을 디디냐?”,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 뭐 하러 그쪽(정치)으로 가느냐?”는 등 항의성 안부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약과였다. 인터넷에서는 안티와 욕설성 댓글이 넘쳐났다고 한다.
전이경은 “사실 예비신랑은 얘기를 듣더니 적극적으로 (정치를) 권했어요. 그런데 보도가 나간 후 워낙 말이 많으니까 너무 놀라면서 ‘이 정도인 줄 몰랐다. 미안하다. 내가 경솔했다’라고 했어요. 정치에 대한 대국민 인식이 좋지 않은 줄 알았지만 실제 겪어보니 정말 심하네요”라고 말했다.
전이경은 일단 사실관계부터 정리했다. 한나라당에 입당원서를 낸 것은 맞지만 부산시의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너무 앞서간 보도였고, 결국 오보가 됐다고 정정했다. 물론 현재 생활의 근거지가 부산인 까닭에 부산 쪽 출마 얘기가 있었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아예 부산에는 공천신청서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력서는 중앙당에 제출했다. 따라서 공천 전쟁이 한창인 서울에서 비례대표 당선 가능권의 순위를 받으면 향후 정계진출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당원으로 남는 것이라고 했다.
“정당에 가입하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더라고요. 입당서류는 냈는데 당비도 내야 하고, 좀 시간이 걸리네요.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할 마음은 있지만 뭐 공천을 받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고 그러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를 영입한 중앙당에서 요즘 고민을 하는 눈치인 것 같아요.”
# 욕 먹을 각오로 입문
어쨌든 그렇다 해도 정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럼 왜 아쉬울 게 없는 전이경이 욕 먹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일까. 가만히 있어도 향후 한국을 이끌 스타플레이어 출신 스포츠리더로 호평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됐어요. 하지만 저 스스로 죽어도 정치는 안 한다는 원칙을 최근까지도 고수하고 있었죠. 정치 말고도 할 일이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이었어요. 링크(부산의 한 백화점 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걔네들이 링크를 돌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무력감이 드는 거예요. IOC 선수분과위원, 평창올림픽 홍보대사 등 1999년 은퇴 후 체육계 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체육계만으로는 되는 일이 없더라고요. 이래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런 차에 마침 안효대 의원님(한나라당 울산)이 강력하게 권유해서 입당하게 된 겁니다.”
생각보다 심플했다. 2005년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를 지낸 후 부산에서 올라온 두 학생에게 쇼트트랙을 가르친 게 인연이 돼서 부산으로 내려간 전이경은 눈이 잘 오지 않는 탓에 동계종목의 오지로 통하는 부산에서 빙상붐 조성에 모든 것을 바쳐왔다. 나름대로 성공하기는 했지만 척박한 부산의 빙상환경이 그에게 정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것이었다.
# 안과의사와 29일 웨딩마치
“남편은 아주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로 인해 언론에 이름이 나오는 걸 제가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신문기사에도 안과의사 박 모 씨 이렇게 나가고 관련 내용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어요.”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전이경은 예비신랑에 대해서는 가능한 말을 아꼈다. 알려진 대로 안과 전문의이고, 부산 토박이고, 자신을 너무 많이 이해해 주고, 그래서 성당에서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는 정도만 설명했다.
이에 마침 5월 29일 서울 하림각에서 치러지는 예식의 주례 선생님이 최근 <일요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라는 얘기를 듣고 좀 더 파고 들었더니 약간의 추가 설명이 더해졌다. 전이경은 김 전 부위원장을 가장 존경하고, 또 주례 약속도 이미 15년 전에 한 것이라고 했다.
“결혼 후 부산에 있는 시댁에서 시부모님과 같이 살 예정이에요. 아마 어른들이 우리 부부를 모시고 살게 될 것 같네요(웃음). 사실 시어머니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분이었어요. 신랑보다 훨씬 먼저 알았는걸요. 남편 이름은 알아서 확인하세요(웃음).”
그래서 확인해 보니 ‘쇼트트랙의 여왕’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주인공은 부산에서 안과의사를 하고 있는 박효순 씨(43)다. 부산의 한 성당에서 만나 1년 정도 교제를 했다고 한다. 좋은 매너와 배려심이 많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후문이다.
끝으로 정식 프로자격증을 딴 골프에 대해서 묻는 것으로 전이경의 변신 철학을 슬쩍 떠봤다.
“골프요? 정말 좋아했죠. 하지만 나이도 있고, 특히 왼쪽 어깨의 습관성 탈골로 인해 투어프로는 힘들게 됐어요. 일단 프로라는 목표를 달성한 만큼 세미프로 자격증을 딴 후 바로 골프채를 놨어요. 지금 목표는 일단 부산에서 더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고, 그리고 대학 강의 준비 등 공부도 하고, 그리고 기회가 되면 정치 쪽에서 체육계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요.”
94년 릴레함메르와 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로는 첫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을 달성한 전이경은 현재 신세계 센텀시티점 쇼트트랙 강사, 신라대 강사, 부산빙상경기연맹 경기이사, SBS 해설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또 한 번 정치라는 큰 변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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