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민 지원 경은아! 밑바닥부터 시작해라”
▲ 미국서 오는 11월에 열릴 광저우아시안게임을 구상 중인 유재학 감독. |
# 은퇴 톱스타들에 한마디
“옛날 얘기 하나 할게요. 스물여덟 살에 모교인 연세대 코치로 갔어요. 농구대잔치에서 연세대 신화를 달성한 최희암 감독님 밑이었죠.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매일 아침 목이 돌아갈 정도였어요. 스카우트를 위해 고등학교 감독 코치 선생님들을 수시로 접대해야 했는데, 식사나 술자리를 마치고 나올 참이면 그분들 신발을 신기 편하게 돌려놔야 했어요. 그리고 상대가 뭐 가방이라도 하나 들었으면 대신 들어줬죠. 그뿐 아니에요. 최 감독님이 술이 약한 까닭에 술 먹는 것도 고역이었습니다. 고스톱이라도 치면 밤새 그걸 옆에서 지켜봐야 했어요. 사실 그때 너무 힘들어서 뉴질랜드나 호주로 이민 가려고 했어요. 그렇게 4년을 살았어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때 대학 코치들은 대부분 그랬을 거예요. 더 힘든 경험을 하신 분들도 있고. 지금 자꾸 저를 치켜세우니 그때 생각이 나네요.”
유재학 감독은 과장해서 고생담을 늘어놓거나, 잘난 척을 하는 스타일이 결코 아니다. 이 얘기도 최근 화제가 된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등 농구대찬치 스타들의 은퇴와 맞물려 나왔다.
“저는 (우)지원이에게 대놓고 얘기했어요.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밑에서부터 지도자로 고생을 해봐야 좋은 지도자가 된다고요. 고등학교, 대학교, 실업, 프로 등 지원이만큼 저하고 인연이 많은 선수도 없는데 제가 왜 그렇게 냉정하게 말했겠어요. 그게 사실이거든요. 아예 농구계를 떠나 석사학위가 있으니 공부를 해서 대학에 남는 것을 권하기도 했어요. 고마운 것은 결국 전력분석관 자리를 제의했는데 지원이가 얘기를 듣더니 받아들인 겁니다.”
유재학 감독은 모두 연세대 후배들이고, 직접 가르친 이 세 명의 은퇴 톱스타에게 이렇게 따끔한 말을 먼저 전했다. 특히 지도자는 고생을 해보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하는데 스타플레이어 경력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이다. 이런 것을 극복해 낼 때 좋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상민에 대해서는 뭔가 들은 것이 있는 듯 “미국에서 2년 유학을 마치면 아마 삼성에 지도자로 갈 겁니다. 워낙 똑똑해서 잘 적응할 것”이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 라이벌 감독에 대한 단상
슬쩍 전창진, 허재, 강동희 등 다른 팀의 감독들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먼저 친구인 전창진 감독(KT)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전 감독의 선친 얘기를 들려줬다. 초·중학교 때 경기나 연습을 하고 있으면 부모들이 와서 관전했는데 지금의 전 감독과 덩치와 외모가 거의 똑같은 분(전 감독의 선친)이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면 다른 부모들이 다 경청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전 감독과 너무나 흡사한 분위기였다는 것.
동부 강동희 감독에 대해서는 “깜짝 놀랐다”는 표현을 썼다. 강 감독은 처음 감독을 맡은 해부터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농구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비 전술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유재학 감독은 “나도 그렇게 시작하지 못했고, 한 10년쯤 흘러서 그런 걸 터득했는데 동희는 정말 대단해요. 다른 팀들이 동희의 색깔을 파악하려들면 또 다른 변화를 줘야 하는데 첫 해이다 보니 너무 정신이 없어서 변화주는 데 실패했을 뿐이에요. 아마 내년이면 또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챔프전 상대인 KCC 허재 감독에 대해서는 “많이 늘었다”고 짧게 평가했다. 함부로 평가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엿보였다.
# 아시안게임 설렘과 각오
화제는 대표팀으로 이어졌다. 최고의 선수였고, 최고의 지도자가 된 지도 제법 됐는데 유재학 감독은 의외로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었다. 일단 선수 때 82년 아시안게임은 나이가 어려서 못 나갔고, 86년 서울 때 대표팀으로 뛰었다. 88올림픽 때는 수술받느라 못 뛰었고, 이내 은퇴했으니 해외에서 열린 A급 종합대회에는 한 번도 못나간 셈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11월)은 홈팀 중국은 물론이고, 중동세가 워낙에 강해서 걱정이 많아요. 메달은 따야 하는데 말이죠.”
이 대목에서 유재학 감독은 한 가지 힘주어 말했다. 대표팀 최종 명단을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아무리 스타플레이어라고 해도, 사명감이 없는 등 정신상태가 나쁘고 성실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 여기 LA에서 레니 윌킨스 대표팀 고문을 만났어요. 제가 솔직하게 물었죠. ‘기술은 있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와 실력은 조금 달리지만 성실한 선수, 둘 중 누구를 택하겠냐’고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답이 바로 나오더군요. 무조건 후자래요. 모비스에서 저도 여지껏 그렇게 해왔고, 대표팀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양희종 김주성 양동근 등 실력과 성실성을 모두 갖춘 선수 외에는 과감하게 버릴 겁니다.”
훈련이 독하기로 소문난 유재학 감독은 대표팀도 6월 5일부터 소집훈련에 들어가 7월 라스베이거스, 8월 유진(오리건주) 등 아주 빡빡하게 짜 놓고 있다.
또 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김유택 코치(오리온스)와 대표발탁이 유력한 친아들 최진수의 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죠. 어차피 좁은 한국 농구계에서 둘 다 할 일들이 많은데 이번이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유재학 감독은 2010~2011 모비스의 전력에 대해서는 “함지훈(군입대) 김효범(FA 신분으로 SK행) 던스턴(NBA진출 모색) 등 주전 3명의 공백으로 플레이오프만 가면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매번 평균 이하의 전력으로 우승을 밥 먹듯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차기 시즌 모비스의 성적이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미국 LA=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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