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에서 ‘뚝딱’ 현장에선 ‘멱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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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과 욕설이 난무
“이봐. 권 구심.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야!” 지난 5월 22일 잠실구장. LG가 두산에 0-1로 뒤진 6회 2사 정성훈의 타석 때였다. 풀카운트에서 두산 선발 레스 왈론드의 몸쪽 낮은 공을 권영철 구심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하자 LG 박종훈 감독이 벤치를 박차고 나왔다. 이례적이었다. 박 감독은 이전까지 볼 카운트 판정과 관련해 항의한 적이 없었다. 되레 자기 팀 투수나 타자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뛰쳐나가 말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박 감독은 권 구심을 손으로 밀치며 거칠게 항의했고 결국 김영직 수석코치와 함께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일 뒤 대구 SK-삼성전에선 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SK 김성근 감독이 5회 말에 이어 6회 초까지 두 차례나 구심을 향해 스트라이크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자, 심판진도 강하게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감독, 선수와 심판이 맞붙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올 시즌처럼 스트라이크 판정 때문에 극한 대립을 빚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트라이크존과 관련해 퇴장당한 예가 2007년 2건, 2008년 1건, 2009년 2건 등 해마다 1~2건에 불과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벌써 스트라이크 판정 때문에 퇴장한 것만 4건이다.
따지고 보면 올 시즌부터 적용되는 바뀐 스트라이크 존은 예견된 재앙일 수도 있다. 이유가 있다. 야구규칙에는 스트라이크를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공’으로 규정한다. 심판들도 지금까지 야구규칙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했고, 선수들도 그 존에 맞춰 생활해왔다.
그러나 KBO가 시즌 전 갑자기 “삼진은 늘리고 볼넷은 줄이는 방법으로 ‘타고투저’ 완화와 경기시간 단축을 이끌겠다”며 “이를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기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공에서 좌우로 공 반 개씩을 넓히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 모든 게 어그러졌다.
팀당 40경기 이상을 치렀음에도 심판들은 여전히 통일된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지 못한 채 “경기마다 심판마다 스트라이크존이 제각각”이라는 혹평과 “심판들의 판정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과연 ‘KBO가 예상했던 새로운 스트라이크 존의 효과는 얼마나 나타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야구계에선 “몇 가지 기록만 살펴보면 어느 정도 효과를 파악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프로야구 공식기록업체인 의 도움을 받아 실제 데이터를 확인해봤다.
▲ 지난달 20일 롯데 가르시아가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 기록을 보면 지난해 전체 리그 ‘총투구수에서 스트라이크와 볼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60.5, 39.5%였다. KBO의 계산대로라면 올 시즌부터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졌으니 스트라이크는 많아지고, 볼은 줄어야 한다. 실제로 올 시즌(5월 27일 기준) ‘총투구수에서 스트라이크와 볼이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60.9, 39.1%로, 스트라이크는 다소 늘고 볼은 줄었다.
하지만 ‘올 시즌 삼진이 많아질 것’이란 KBO의 예상과 달리 경기당 삼진수는 지난해 6.94개에서 올 시즌엔 6.61개로 줄었다. 일부에선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며 타자들이 공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타격했기 때문에 삼진이 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맞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타자의 적극성을 판단하는 ‘전체 투구수에서 배트가 나온 확률(헛스윙+파울+타격/투구수)’은 지난해 42.9%와 올 시즌 43%를 비교해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삼진 가운데 루킹삼진(스윙하지 않은 채 서서 당한 삼진)이 차지하는 비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리그에서 ‘전체 삼진에서 루킹삼진이 차지하는 비율’은 28.2%였다. 올 시즌은 무려 4%나 뛴 32.5%를 기록 중이다.
최희섭(KIA)이 대표적인 희생자다. 선구안이 좋기로 소문난 최희섭은 지난해 ‘전체 삼진에서 루킹삼진이 차지하는 비율’이 28.7%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37.5%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최희섭은 “지난해는 기다렸으면 볼이었을 공들이 올 시즌엔 스트라이크로 판정나며 루킹삼진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스트라이크 존 확대가 경기시간 단축에 도움이 됐다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올 시즌 전체 184경기를 치르는 동안 리그 총 투구수는 5만 6300개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같은 경기수에서 리그 총투구수는 5만 5444개였다. 지난해보다 올 시즌 리그 총투구수가 900개가량 증가한 셈이다. 투구수 증가는 당연히 경기 시간 연장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올 시즌 경기당 소요시간이 지난해보다 12분이 준 건 12초룰과 클리닝 타임 적용으로 불필요한 시간이 상당부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KBO가 스트라이크 존 확대와 경기 시간 단축의 연관성을 애써 설명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 시즌 유영구 KBO 총재는 ‘클린 베이스볼’과 ‘스피드 업’을 주창했다. 그러나 인위적인 스트라이크 존 확대는 현장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란 지적이 많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타이완과 일본 사회인야구팀에 연패하며 KBO는 “국제대회 경기력 향상”이라는 취지 아래 기존 스트라이크 존의 좌우를 좁혔다. 덕분에 한국야구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텅텅 비었던 야구장에도 관중이 물밀듯 찾아왔다.
KBO는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코앞에 두고 ‘국제용’이라던 스트라이크 존을 과거로 회귀시켰다. 많은 야구인은 지금도 유 총재가 무슨 생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넓혔는지 궁금해 한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