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센 언니’ 편견, 예능으로 반전 성공…“제시가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변했다” 분석도
2005년 데뷔한 제시는 최근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피네이션 제공
신곡 ‘눈누난나’로 음악적으로도 데뷔 이래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가수 제시(32)가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는 예능은 지난 9월 3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tvN 예능 ‘식스센스’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찾는 육감 현혹 버라이어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예능은 메인 MC인 유재석이 데뷔 이래 최초로 여성 고정 출연진들과만 함께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유재석과 함께하는 여성 연예인들은 이미 앞선 다른 예능에서 ‘범상치 않은 캐릭터’로 보장을 받은 인물들. 모범적인 진행을 보여 왔던 유재석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출연진에게 시달리는 그림 자체가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 셈이다.
그 범상치 않은 면면들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가 제시다. 엉뚱함과 ‘사이다’ 사이를 줄타기하며 보여주는 유재석과의 티격태격 궁합이 대중들의 취향을 직격한 것이다. 이런 계산되지 않은 예능 감각으로 제시는 첫 방송 만에 온라인 커뮤니티를 떠들썩하게 하며 각종 짤방(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사진과 영상을 편집해 만드는 파일)과 유행어를 만들어 내 시청자들의 ‘원 픽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식스센스’의 정철민 PD는 이 같은 ‘재제(유재석-제시) 남매 케미’를 두고 “제시가 실제로 보면 솔직담백하고 참 여린 친구”라며 “유재석 씨와 제시가 서로를 많이 아낀다. 좋은 사람들끼리의 시너지 덕에 프로그램 속에서 서로 투닥거리는 모습이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인기 요인을 설명했다. 제시만의 악의 없는 솔직담백한 태도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치고 또 받아주는 유재석의 진행 능력과 어우러지면서 플러스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시가 보여주는 엉뚱한 사이다 매력은 이에 앞서 SBS ‘런닝맨’ MBC ‘나혼자 산다’와 ‘놀면 뭐하니’ 등에서 검증 받은 바 있다. ‘나혼자 산다’의 경우 게스트를 면박주거나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던 일부 출연진에 대해 제시가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모습이 “사이다 대응”이라며 호응을 얻었다. ‘런닝맨’과 ‘놀면 뭐하니’는 ‘식스센스’와 마찬가지로 유재석과의 티격태격 케미에 호평이 쏟아졌다. 이후 ‘놀면 뭐하니’ 속 환불원정대라는 프로젝트 그룹 결성으로 이어진 데에도 제시가 구축해 낸 캐릭터성이 한몫했다.
‘식스센스’ 속 제시는 유재석과의 티격태격 케미로 단 1화 만에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사진=tvN ‘식스센스’ 캡처
대중들이 제시에게 가진 이 같은 선입견은 그가 같은 해 MBC 예능 ‘진짜 사나이2-여군특집’에 출연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남성들이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군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단체 생활에서 튀는 출연진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기존 여성 연예인과는 전혀 다른 면모와 서구적인 태도로 임한 제시가 화살받이가 된 셈이다. 당시 ‘진짜 사나이2’ 방송 관련 기사가 뜰 때마다 제시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 전체 댓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일이 잦을 정도였다.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대중들은 제시에 대해 단순히 ‘센 언니’ 또는 ‘한국 연예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교포 연예인’이라는 두 가지의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토종’이 아닌 연예인들을 감정적으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한 업계 특성에 비추더라도 제시의 이미지 전환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런 대중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6년, KBS2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제시가 고정 출연을 하면서부터다. 음악 예능이 아닌 지상파 예능에서 정식으로 고정 출연을 하게 된 것은 이때가 최초였으며, 이는 대중들의 인식은 물론 제시의 이미지에 있어서도 거대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전까지의 센 언니가 아닌 막내로서 귀여우면서도 엉뚱한 면모를 보여 지상파 예능에 자연스럽게 섞임은 물론이고, 이후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1에서 결성된 걸그룹 ‘언니쓰’로도 인기를 견인하며 성공적인 예능 캐릭터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약 4년 동안 ‘해피투게더 3’ ‘한끼줍쇼’ ‘개는 훌륭하다’ 등 다양한 예능에 출연하며 2016년에 구축한 캐릭터성과 그에 따른 대중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6월부터는 유튜브 채널 SBS 모비딕에서 ‘제시의 쇼!터뷰’ 단독 MC를 맡아 진행 중이다. 제시의 인기를 입증하듯 ‘제시의 쇼!터뷰’는 론칭 한 달 만에 700만 뷰를 돌파, 단기간에 통합 조회 수 2000만 뷰를 눈앞에 두는 등 명실상부 대세 콘텐츠로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센 언니’를 강조한 비호감 캐릭터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2015년과 달리 2016년 KBS2 예능 ‘언니들의 슬램덩크’에 출연하면서 제시의 이미지 반전이 시작됐다. 사진=KBS2 ‘언니들의 슬램덩크’ 캡처
이처럼 예능에서 확고한 캐릭터성을 내세워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미국 교포 연예인들의 계보로 꼽자면 제시는 ‘스티브 유(유승준)→박재범→박준형’에 이은 네 번째이자 최초의 여성이 된다. 스티브 유의 경우는 ‘출발 드림팀’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등을 통해 전국민이 사랑하는 연예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박재범은 2PM 활동 당시 ‘떴다 그녀’ ‘와일드바니’ 등 그룹 예능으로 케이블TV 임에도 대박 시청률을 견인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둘 모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한 차례 밑바닥을 찍어야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박준형은 다소 늦긴 했으나 지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2018년부터 출연 중인 유튜브 채널 ‘와썹맨’으로 223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제시의 경우는 이전까지는 비호감으로 받아들여지던 그의 거침없는 입담이나 행동이 어느 시기를 기점으로 인기 요소로 탈바꿈했다는 특이점이 있다. 이에 대해 방송가 관계자들은 단순히 그의 커리어 전환점인 ‘언니들의 슬램덩크’만이 아닌 당시 사회적 분위기의 전환도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2015년 후반~2016년을 기점으로 해서 페미니즘이나 걸크러시 등의 단어가 유행하면서 여성 연예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까지는 제시의 욕이나 말투, 강강약약(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의 태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성 연예인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팬을 제외한 대중들이 썩 좋게 보지 않았다”며 “그러나 걸크러시 이미지가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도 ‘먹히는 이미지’가 되면서 제시라는 예측불가 캐릭터가 그들의 갈증을 채워주는 존재가 된 것 같다. 제시는 변하지 않았고 그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지금의 인기가 있지 않나 싶다”고 분석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