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 신당’의 당권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김근태 의원 (왼쪽), 김원기 고문 | ||
아직은 민주당 내에, 그것도 당 공식기구가 아닌 비공식 신당추진기구가 발족한 것에 불과하지만 9월 정기국회 개회 이전까지는 창당준비위원회 구성을 완료한다는 빡빡한 스케줄 탓인지 당권을 겨냥한 각 주자진영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는 신주류 중진그룹의 ‘투톱’인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 간에 이미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고, 신당 논의 과정에서 구주류와 중도파의 지지를 얻은 김근태 의원과 신주류 소장파를 대표한 정동영 의원의 경쟁대열 합류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먼저 신주류의 ‘좌장’격으로 ‘신당 대세론’ 확산에 공조해온 정 대표와 김 고문 간 관계에는 이미 이상 조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
특히 김 고문이 비공식 신당추진기구의 대표을 맡으며 전면에 나서면서 양 진영 간에 상호 견제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평가다.
신당 창당이 카운트 다운에 접어든 만큼 정 대표의 영향력은 갈수록 사그라들 것이 확실한 반면 김 고문은 지금대로라면 당 공식 신당기구의 ‘얼굴’도 맡을 것이 확실해 신당 창당을 계속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한화갑 전 대표의 사퇴(2월23일) 이후 대표를 맡아 끊이지 않는 신-구주류 갈등과 4·24재보선 패배 등으로 만신창이 신세였던 정 대표는 최근 김 고문을 신당의 전면에 내세우려는 신주류측 움직임에 일면 이해는 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을 적지 않게 표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구주류와 중도파 일부 의원들이 면전에서 김 고문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사부’로 불릴 만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데 비해 정 대표는 지난해 선대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노무현 사단’에 참여한 점을 들어 “정 대표도 신당이 창당되면 바로 ‘팽’(烹)당할 처지”라고 얘기하자 상당히 당황해 했다는 후문.
정 대표측은 특히 김 고문 주변에서 최근 검찰이 수사중인 S건설 로비 의혹에 정 대표가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을 흘리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상당히 격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고문의 핵심측근이 “S건설 로비 의혹 사건에 정 대표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분명히 돈을 받은 것은 맞는 것 같으며 본인은 영수증 처리했다고 무시하고 있지만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니다. 당에서도 이를 우려해 정 대표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얘기를 일부 기자들에게 흘렸다는 것이 첩보의 내용.
이에 대해 정 대표측은 초창기 “약간의 돈을 후원금으로 받은 것뿐이며 그것도 몽땅 영수증 처리했기 때문에 합법적이다”며 무시하는 듯했지만 김 고문측이 ‘비리 연루설’을 계속 흘리고 있다는 보고에 “사실과 다른 얘기를 마타도어식으로 퍼뜨린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김 고문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정 대표는 가급적 민주당이 분당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당이 창당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인데 김 고문측이 신당 당권을 염두에 두고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
특히 당무회의에서 신당 창당이 의결되면 정 대표는 자연스레 당무에서 손을 떼고 신당기구가 전권을 행사할 텐데 왜 김 고문측이 정 대표를 음해하는지 모르겠다. 정 대표가 워낙 낙천적인 분이라 조용히 넘어갔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내 재야파의 ‘수장’인 김근태 의원도 신당의 당권 경쟁의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기간 후보단일화 노선에 기울면서 노 대통령과 멀어진 이래 이제까지 신주류측과 소원한 관계가 계속되어 왔다.
김 의원은 그러나 정치권 내 이라크전 파병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당내 신당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노선을 견지하면서 재야파의 결속을 이뤄내고 구주류-중도파의 신망을 얻으면서 유력 당권주자로 발돋움했다는 평가다.
▲ 정대철 대표(왼쪽), 정동영 의원. | ||
김 의원은 한 전 대표와의 회동이 “상호 의견 교환 수준이었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이 지난 대선 이후 정치적 진로와 관련해 밀접하게 교감을 나눠왔다는 점에서 모종의 ‘밀약’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그 내용은 아직 신당 참여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한 전 대표가 막판에 신당에 합류해 김 의원을 중심으로 신주류에 대한 견제세력을 결집시켜 당권 장악을 후원할 것이라는 것이 뼈대.
두 사람과 절친한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한 의원은 “한 전 대표가 신당에 합류한다면 결국 손을 잡을 대상은 김 의원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 간의 인간적 신뢰관계를 봐도 그렇고, 신주류의 독선을 견제하기 위한 현실적 요구로 봐도 그렇다.
한 전 대표로선 자신이 당권 경쟁에 나설 수 없는 처지임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김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 막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 분명하며 김 의원 입장에서도 아직 당내에 무시 못할 세력을 갖고 있는 한 전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당권 도전, 나아가 ‘차기’의 가능성을 열어나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최고위원 경선, 2002년 대선 후보 국민경선에 뛰어들어 정치적 위상을 급격히 높힌 정동영 의원은 아직 당권에 대해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도전을 점치는 의견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여권 내 ‘대권 주자’로 평가받고 있고, 특히 주요 정치적 계기에 ‘도박’에 가까운 모험을 통해 진로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정 의원이 신당 당권 경쟁이란 절호의 기회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실제 정 의원은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 신주류 강경파들의 ‘신당 드라이브’에 본격 가세한 이후 이른바 ‘제 4세대 정당론’을 주창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15일 조선대 특강을 통해 “병목현상에 빠져 있는 현재의 한국정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압축적이고 혁명적인 정치변화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부상해야 하고 이는 시대적 소명”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주변에서는 정 의원이 신주류 소장파들이 주장하는 ‘세대교체론’을 등에 업고 당권 도전에 나설 뜻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 의원의 당권 도전에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아 이번엔 그가 무작정 정치적 모험을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우선 ‘정동영=신당 대표’가 ‘세대교체=중진 몰락’이란 코드로 읽힐 확률이 높아 계파를 막론하고 중진그룹에서 집중적인 견제가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한화갑 전 대표가 ‘탈(脫) 호남 4인방’ 중 한 명으로 지목할 만큼 구주류는 물론 중도파 내에서도 정 의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상당하다는 것도 부담이다.
여기에 “개인적 야심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노 대통령 측근그룹들의 비판적 시각이 여전하다는 것도 극복 대상. 특히 노 대통령 주변에서는 정 의원이 신당의 ‘간판스타’가 될 경우 자칫 차기 구도가 조기에 굳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조기에 레임 덕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를 몹시 경계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어 정 의원의 당권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