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예능·드라마 ‘여풍’ 거세…여성이 채널 주도권 쥐는 동시에 적극적 소비자, 흥행작 잇따라
배우 신민아, 이유영이 주연을 맡은 ‘디바’는 연출자인 조슬예 감독과 제작자 김윤미 대표가 뭉친 ‘여풍당당’ 영화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여풍당당, 여성이 중심이다!
배우 신민아, 이유영이 주연을 맡은 ‘디바’는 연출자인 조슬예 감독과 제작자 김윤미 대표가 뭉친 ‘여풍당당’ 영화다. 얼마 전 독립영화 시장을 휩쓴 ‘벌새’ 역시 김보라 감독의 지휘 아래 박지후, 김새벽 등 두 여배우의 활약이 돋보였던 F등급 콘텐츠다.
F등급이라는 표현은 2014년 영국 배스 영화제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감독과 작가, 주연 배우 중 여성이 포함돼 능동적으로 활약을 하면 F등급의 범주에 들 수 있는데, 세 가지가 모두 해당되면 ‘트리플 F등급’으로 더욱 주목받는다.
외국 영화 중에서는 F등급 영화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지난 6월 국내 개봉된 ‘미스비헤이비어’는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작가와 제작자까지 여성들이 힘을 보태 만든 작품이다. 지난 4월 선보인 ‘라라걸’ 외에도 10월 관객과 만나는 ‘어디갔어, 버나뎃’, ‘프록시마 프로젝트’ 등도 F등급 영화로 분류된다.
충무로에서도 이런 영화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개봉됐던 ‘82년생 김지영’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 뜨거운 젠더 이슈를 던졌던 이 영화는 배우 정유미가 주연을 맡고 김도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벌새’와 함께 F등급 영화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82년생 김지영’의 바통은 10월 개봉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다. 배우 고아성, 이솜, 박혜수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세 여배우의 호흡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예능 시장에서는 2년 전부터 여풍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원조 ‘센 언니’ 이영자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부활하며 그해 연말 MBC 연예대상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듬해 대상 트로피는 ‘나 혼자 산다’와 ‘구해줘 홈즈’ 등에서 활약한 박나래의 몫이었다. 지상파 방송사 연예대상을 2년 연속 여성이 차지한 건 처음이다.
특히 박나래의 힘은 대단하다. 그는 박소현, 김숙, 산다라박과 함께 케이블채널 MBC 에브리원 ‘비디오스타’를 4년째 진행하고 있고, MBC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 예능인 ‘여우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에서 여성 멤버들만의 이야기를 구축했다.
본격적인 연예 활동을 재개한 가수 이효리의 위력도 만만찮다. 그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 방송인 유재석, 가수 비와 짝을 이른 혼성 그룹 싹쓰리로 여름 가요계에 정복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요즘은 가수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걸그룹 프로젝트 ‘환불원정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효리는 MBC ‘놀면 뭐하니?’에서 그룹 싹쓰리로 여름 가요계에 정복 깃발을 꽂았다. 그 여세를 몰아 요즘은 가수 엄정화, 제시, 화사와 함께 걸그룹 프로젝트 ‘환불원정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사진=MBC ‘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도 더 이상 부수적인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JTBC ‘부부의 세계’에서는 김희애와 한소희의 폭발력이 대단했고, 얼마 전 종영한 SBS ‘편의점 샛별이’와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각각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유정, 서예지가 돋보였다. 이 외에도 KBS 2TV ‘그 놈이 그놈이다’와 ‘출사표’,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MBC ‘십시일반’ 등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도권을 쥐고 극을 이끌었다.
여기에 공개를 앞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tvN ‘산후조리원’, MBN ‘나의 위험한 아내’ 등이 여주인공을 타이틀롤로 내세운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떻게 여성이 중심이 됐나
최근 여성 캐릭터를 부각시킨 콘텐츠가 연이어 제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맞물려 설명할 수 있다. 남녀평등사회를 외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사회 시스템 곳곳에서 불평등으로 인한 잡음이 새어 나왔다. 최근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여성을 중심에 세우거나, 그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이 채널 주도권을 쥐는 동시에 적극적인 콘텐츠 소비자로 부각된 것도 주요 요인이다. 안방극장에서는 중장년 여성들이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비롯해 VOD(주문형 비디오) 시장에서 여성 소비자들이 ‘큰손’으로 분류된다. 흥행 성공 또한 관련 콘텐츠가 늘어나는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아무리 의미가 큰 콘텐츠라 하더라도 재미가 없거나 대중의 외면을 받으면 더 이상 시장의 관심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남성들이 만드는 여성 콘텐츠와 여성들이 만드는 여성 콘텐츠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할리우드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룬 사극을 한국인보다 잘 만들 수 없는 것과 같다”며 “결국은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젠더 관점에서 주목받는 콘텐츠가 계속 제작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