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 기술 발달했지만 검시 제도 못 따라와…부검 하나에 여러 기관 이해 얽혀 제도 개선 요원
검시는 사망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여 한 사람의 죽음이 범죄에 의한 것인가 아닌가 등을 법률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시체 및 그 주변의 현장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부검 역시 검시의 한 종류에 해당한다.
과거 강화도 캠핑 화재 현장의 피해자 시신이 국과수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존하는 검시제도는 크게 ‘전담검시제’와 ‘겸임검시제’ 두 가지로 나뉜다. 전담검시제도는 미국과 영국 등의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채택하고 있는데 사망사건 발생 시 시체 이송 및 검시 등을 일반 경찰이 아닌 법의학 전문가들로 이뤄진 검시관이 전담한다. 인기 미국드라마 ‘CSI’에 등장하는 검시 역시 전담검시제도다.
반면 겸임검시제도에서는 검시의 주체가 검사와 경찰 등 수사기관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일본 등 대륙법 체계를 가진 국가에서 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겸임검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나간 경찰이 먼저 시체를 살피고 필요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다. 그러면서도 검시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검사에게 있어 사실상 실무자와 결정자가 나뉘어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행위 주체와 권한이 분산되어 있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일요신문이 만난 다수의 법의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선진 각국의 검시제도와 비교할 때 제도적 체계성과 정교성이 낙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부검처리절차가 복잡해 검시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법의학적 지식이 없는 검찰과 경찰이 검시를 결정하고 현장조사를 담당하다보니 초동수사에서 증거가 훼손된 사례가 많을 뿐더러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법도 ‘죽은 자의 권리’에 무심한 편이었다. ‘시체 이송과 보존에 대한 법률안’이 존재하긴 하나 구체적이지 않으며, 의혹이 있는 죽음을 빠짐없이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실제로 법안을 살펴본 결과 ‘부검 시에는 시체에 정중하게 예의를 갖춘다’ ‘시체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지체없이 통보한다’ 등 다소 추상적이었다.
시체 훼손에 대한 처벌도 높지 않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전적 이익을 목적으로 시체 일부를 취득하거나 타인에게 양도하는 등 행위를 저지른다고 해도 받는 처벌 수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다. 시체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최근 강화된 처벌 수위로 2017년 이전에는 각각 300만 원의 벌금과 50만 원의 과태료 부과에 머물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볼티모어 법의학연구소 부검시설 내부(왼쪽)과 독일 뮌헨 법의학연구소의 공시소(오른쪽). 사진=SJS법의학연구소
반면 미국과 영국, 스위스 등의 선진국에서는 사망자에게 조금의 의심만 있어도 변사자로 취급하고 독립적으로 부검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 편이다. 본지가 복수의 법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각 국가의 부검 관련 제도를 살펴 본 결과, 이미 여러 국가에서 공시소를 포함한 법의학연구소를 운영 중이었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할 뿐만 아니라 사인규명을 위한 검시 실무, 전문 인력 양성 및 법의학 연구도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 영미법의 국가에서는 변사체가 발생할 경우 일반 의사가 검안을 하지 않고 곧바로 검시관에게 보고하고 검안과 부검은 법의병리전문의사가 맡는 등 전문가의 손을 거치게 돼 있다. 부검은 국가가 운영하는 법의학연구소에서 이뤄지는데 기본적으로 시신보관시설이 있어 공시소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 일본, 스코틀랜드 등 우리나라처럼 겸임검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검안은 모든 의사의 의무로 명백한 병사 이외의 모든 죽음에 대해서는 변사로 신고하여 그 원인을 조사하도록 돼 있었다. 특히 독일은 형사소송법에서부터 검시 방법과 범위를 자세히 명시하고 있는데, 2018년 법무부가 번역해 제공한 독일 형사소송법 제87조에 따르면 부검은 법의학적 전문지식을 가진 의사 2명이 하되 사망 직전 고인을 치료하던 자는 부검에 참여할 수 없도록 법률로 명시되어 있었다. 이 밖에도 신생아 부검, 독살의 의혹이 있는 죽음에 대한 검시도 법으로 규정해둔 것으로 나타났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사망의 유형을 19가지로 세분화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검사는 19가지의 죽음에 대하여 법적으로 조사의 의무를 가졌다. 검시의 집행권이 검사에게 있다고 해도 자의적 판단으로 부검 여부를 결정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몽골에서도 최근 공시소와 공영장례식장을 포함한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몽골도 최근 공시소와 공영장례식장을 포함한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사진=SJS법의학연구소
이처럼 여러 국가에서 법의학 발전을 위한 검시제도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그 움직임이 미미한 편이다. 공시소 도입과 검시제도 개선안이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나 수사기관을 포함한 법조계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만 십수년째 반복하고 있다. 공시소 등의 독립기관을 따로 설립하거나 검시권을 법의학자들에게 넘겨주려면 형법을 크게 손 봐야 한다는 이유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이렇게 되어왔으니 바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최영식 전 국과수원장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부검 관련 제도나 법률에 있어서는 오히려 사회주의 국가가 더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소련은 레닌과 스탈린도 부검대에 올렸다. 유독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부검에 대한 편견 역시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레닌과 스탈린뿐만 아니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 역시 사망 후 부검대에 올랐다. 죽음의 문제는 정치공학적인 부분과 별개라는 이유에서다.
최 전 원장은 “우리나라의 검시제도는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검시 결정은 검사가, 집행은 경찰이, 검안은 의사가, 변사자 부검은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막상 시신은 민간 병원에 가 있다. 부검 업무 하나에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막상 대한법의학회에서 검시제도 개선안이나 공청회 등을 열면 큰 관심을 갖는 부처는 많지가 않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 전 원장은 현재로서는 인력 확충과 더불어 장기적인 제도 마련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의견을 더했다. 실제로 활동하는 법의학자는 5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지금은 당장 부검 업무에 투입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공시소 도입과 인력 확충을 위한 인재 양성, 검시제도 개선 등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시신 관리와 부검 업무 등에 사실상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