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운송과정·보관관리 민간에 맡겨 허술…부검까지 절차 많아 훼손·부패, 되레 진실 은폐되기도
병사로 끝난 사건이 알고 보니 타살이었던 사건도 있었다. 2016년 충북 증평에서 한 80대 노인이 사망했다. 병사라고 기재된 검안서에 따라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고 시신을 화장까지 했다. 그런데 이후 유족들에 의해 범행 현장 CCTV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단순 병사에서 살인사건으로 재조정됐다. 알고 보니 담당 경찰이 범죄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해 검안에 참여하지도 않은 의사로부터 허위 검안서를 발급받았던 것이다. 피해자는 부검을 받을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이처럼 시신 운송과정에서의 실수, 잘못된 판단, 복잡한 절차 등으로 시신이 훼손돼 정확한 사인 규명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거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신의 운송과정과 보관에서부터 국가가 관여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모든 주검에 부검이 필요하지는 않다. 현행법에서 사법부검의 대상이 되는 사건은 △살인, 강도살인, 강간살인 등 강력사건에 기인한 변사사건 △범죄에 기인된 여부가 불명확하거나 사인불명의 사건 △유족이 사인을 다투는 사건 △사회의 이목을 끄는 변사사건 등으로 정해놓고 있다.
사망 이후 흐름도. 사진=김형미 디자이너
통계청이 밝힌 2018년 사망자는 약 29만 8900명이다. 이 가운데 76.2%는 의료기관에서, 23.8%는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 위 네 가지에 해당하는 사건의 시신이 사법부검의 대상이 되는데 2018년 한 해 동안 전국 국과수에서 실시된 사법부검 건수는 총 9131건이었다. 월 평균 761건, 매일 25건 이상의 시신이 부검대에 오른 셈이다.
변사사건에 대한 절차 규정도 있다. 일단 변사자를 발견하거나 관련사건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서장에게 사건을 보고한다. 필요시 검시를 진행하는데 검안의 참여와 관련 예산은 경찰청에 예편되어 있으나 지휘권은 검사에게 있다. 또 검시에 지장이 없는 한 변사자의 가족이나 동거인, 지자체 공무원 등도 검시에 참여할 수 있으며 조사가 끝난 뒤 사체 소지금품은 24시간 이내에 유족에게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법부검 처리 과정이다.
그럼에도 ‘병사’가 ‘타살’로, 혹은 ‘타살’이 ‘병사’로 둔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검까지의 절차가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긴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현장의 시신이 국과수로 이송되기까지는 많은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훼손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관리 소홀로 시신이 훼손된다고 해도 누구의 잘못으로 어느 부분이 훼손됐는지 현실적으로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검안 관련 업무를 맡았던 한 전직 경찰은 “사망 직후 시신은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는데 119 구급대원, 경찰, 민간 장례업자, 검안의, 영안실, 검사 등 거쳐야 하는 곳이 많고 만나는 사람도 많다. 아이러니하지만 국과수 부검의가 시신이 만나는 가장 마지막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신 이송 절차는 길고 때로는 비위생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시신 보관이 민간 장례업자 혹은 병원에 맡겨져 있다. 시신을 옮기는 이는 대개의 경우 국가기관이 아닌 변사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설 구급차라고 불리는 민간 이송업자다. 이렇게 이송된 시신은 병원 영안실과 민간 장례식장에 보관되어 있다가 검안 등 절차를 거쳐 부검이 결정되면 그제야 부검실로 재이송된다. 이 과정은 길면 최대 5일까지 걸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검대에 오르기까지 시신이 훼손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는 실정이다.
광주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 내부. 사진=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보관으로 인한 부패다. 모든 것이 민간에 맡겨져 있다 보니 시신 운구 차량이나 장례식장 안치실 내 시신 보관 냉동 창고 상태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파악할 의무가 있는 기관도 없다. 실제로 적정 온도에서 보관되지 못해 부패한 시신이 국과수로 이송돼 사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막상 현장에 나가보면 황당한 일들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은 “부검 장소에 도착한 시신을 보면 심한 부패로 시신이 2~3배로 부풀어 오르는 등 변사 현장에서 찍은 사진 속 시신 상태와 부검 직전 시신의 상태가 너무나 다를 때가 있다. 부패가 심한 시신은 정확한 부검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지적했다.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실시했는데 보관 과정에서 되레 진실이 은폐되는 모순이 생기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시신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동균 대구한의대학 교수의 ‘한국사법부검 제도의 개선방안’에 따르면 부검의 최대 목적은 억울한 사망을 찾아내어 침해된 인권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국민의 권리가 억울하게 침해당한 것이 없는가를 가려내는 국가의 마지막 배려이자 복지인 셈이다.
한편 세계 여러 국가들은 자국 내에서 발생한 모든 사망의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효율적인 검시제도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많은 국가에서 채택한 방법은 법의연구소 혹은 공시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공시소란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신 보관소로 모든 시신을 일차적으로 정부가 직접 보관하고 관리함으로써 이송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표창원 전 의원이 자신의 저서 ‘누가 진짜 범인인가’를 통해 증거 보관실과 시체 공시소가 없어 재수사가 불가능한 상황 등을 지적했다. 경찰청 역시 시신 관리 소홀 문제점을 인식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시체 보관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연구자료 등을 내놓았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개선된 점은 없는 상황이다.
서중석 전 원장은 “국가가 국민 죽음의 원인을 밝혀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면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적절한 곳에서 시신을 보관하고 있다가 합리적으로 돌려드리고 장례를 치르게 해드리는 것이 돌아가신 분에 대한 국가의 마지막 복지다”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