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을 붙들기 위해 모 주자가 돈을 뿌렸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주자측의 인사들을 1위 가능성이 점쳐지는 주자측에서 매수했다더라’는 소문까지 퍼져 있다.
이들 당권 주자들 가운데 ‘소문’ 속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서청원 전 대표다. 그는 지난 4월30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한 이후로 ‘대선 패배 책임에 따른 불출마 선언’의 번복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 지난 1월 이회창 전 총재가 일본으로 출국하기 앞서 서청원 대표 (왼쪽) 등 당직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 ||
서 전 대표측은 “서 전 대표의 이름이 괴소문 속에 자꾸 등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당권주자들이 서 전 대표의 출마를 탐탁지 않게 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불출마 선언 번복 못지 않게 최근 들어 서 전 대표 주변에서 부쩍 논란을 일으키는 소문이 하나 있다. 바로 서 전 대표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밟고 갈 것’이란 것이 소문의 골자.
당초 한나라당 안팎에선 서 전 대표의 당권 도전을 두고 ‘창심’ 논란이 벌어졌었다. 서 전 대표가 대선 과정에서 당대표로서 이 전 총재와 손발을 맞춰 함께 뛴 전력이 있는 탓이다. 여기에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바라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서 전 대표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맞물려져 논란이 확산됐던 것.
그러나 애초 서 전 대표를 지원할 것처럼 보였던 민정계 중진 의원 모임 ‘함덕회’의 내분으로 서 전 대표측의 ‘창심 업기’는 빛이 바랬다. ‘함덕회’ 인사들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친이회창계 그룹으로 분류된 바 있다. 게다가 이 전 총재 측근들마저 각 당권 주자 진영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서 전 대표 주변의 ‘창심’ 논란은 수그러든 상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 전 대표가 창을 밟고 가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정가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서 전 대표 주변을 주목하는 정가의 인사들은 “서 전 대표에게 ‘친창’은 더 이상 어울리는 수식어가 아니다. 오히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전 총재에 대해 공개적으로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당권주자측은 아예 “당권 경쟁 초기 ‘창심’을 붙잡던 서 전 대표가 이젠 ‘반창’으로 돌아섰다”고 단언하고 있다.
상당수 정가 인사들은 대선 패배 책임 논란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서 전 대표가 일정 부분 ‘이회창 밟고 가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고 당권에 도전한 이상 서 전 대표가 이끌었던 당지도부의 역량 부족보다는 대통령 후보(이 전 총재) 본인에게 문제가 있어 대선에서 패했다는 논리를 펼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지난달 있었던 한나라당 윤경식 의원 후원회에 참석한 몇몇 인사들은 “서 전 대표로부터 깜짝 놀랄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한 참석자는 “후원회에 참석한 서 전 대표가 축사를 하다가 ‘지난 대선에서 패한 것은 당 지도부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 곧 그들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라”고 전했다.
이 같은 서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다른 당권 주자 진영의 한 인사는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의 비주류로서 당 지도부에 비협조적이던 인사들을 지적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밝혔다. 이 인사는 “대선 패배 책임 추궁을 비켜가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궁극적 책임을 차후 누구에게 돌릴지는 자명한 게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은 이런 시각에 대해 “서 전 대표가 윤경식 의원 후원회장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대선 패배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책임은 지되 당대표로 새롭게 선출돼서 새로운 선진적 정책 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한 당권주자측은 “서 전 대표가 최근 몇몇 친한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 전 총재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더라”고 밝혔다.
서 전 대표 입에서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성사 직후 충청권 공략을 위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JP)를 잡자고 했지만 이 전 총재가 거부해 무산됐다. 이 전 총재가 JP를 찾아갔더라면 대선 판도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서 전 대표가 JP를 ‘모셔오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 전 총재가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는 이야기는 이미 대선 직후에 일부 언론에 공개된 바 있다.
이 전 총재를 후보 시절 보좌했던 한 인사는 “서 전 대표가 이 전 총재에 대해 안좋게 이야기했다고 들었다. 대선 패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이미 정계를 떠난 분에게 지우고 자신만 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인가”라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측은 “JP와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 캠프 내부에서도 해석이 엇갈리지만 대선 패배 책임을 이 전 총재에게 떠넘기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서 전 대표의 한 측근인사는 “당원들이 당권 불출마 선언 번복 책임까지 묻는다면 우린 ‘그것까지 모두 이번 전당대회에서 심판 받겠다’란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 전 대표측은 오히려 합동연설회나 TV토론이 본격화되면 다른 후보들이 대선 패배 책임론을 거론할수록 서 전 대표가 ‘유리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당권에 출사표를 던진 인사들 중 김형오 의원만 빼놓고 강재섭 김덕룡 이재오 최병렬 의원 모두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선대위 고위직에 있던 인사들인데 이들이 대선 패배 책임을 서 전 대표 한 사람에게만 떠넘길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서 전 대표가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 이상 다른 당권주자들에 의해 대선패배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대선 때 당의 얼굴 역할을 한 서 전 대표로서는 이 전 총재를 딛고 가지 못하면 별다른 출마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