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의 ‘만개’ 중 내 입에 착, 감기는 부분이다. 봄날 천지를 채우며 흩어져 내리는 꽃비가 연상되기도 하고, 추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차라투스트라의 예언의 말 같기도 하다.
이번 앨범 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곡은 ‘우산이 없어요’와 ‘백화’다. ‘백화’는 ‘만개’의 저 부분과 오버랩 되며, 어느 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시던 날, 세상은 온통 꽃비였다. 아버지를 묻는 날도 꽃비가 내렸다. 그즈음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운전하다가도 울고, 길을 걷다가도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나는 아름다운 것이 통곡일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몇 년 동안, 나는 벚꽃이 피고 지는 봄날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번에 김호중이 ‘백화’를 부르는데 왜 그리 꽂혔는지.
이주향 수원대 교수
노래에 스며들며 깨달았다. 이제 내가 그리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사실 그리움을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이 통곡이 되는 것은 그래도 건강한데 종종 우울이 되고 병이 되지 않나.
어느새 김호중의 팬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김호중의 구설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작정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퍼트리는 일방적인 내용보다는 서른도 되지 않는 젊은 청년에게 지나간, 혹은 지나가고 있는 풍파에 대한 관심이다.
그 풍파는 100년을 살아낸 노인의 그것만큼이나 많은 것 같다. 그는 자포자기하기도 했고, 희망을 놓지 않기도 했던 것 같다. 외롭고 막막했을 고해(苦海)를 ‘노래’ 하나에 의지해 건너며 치열하게 살고 있는 그를 응원한다.
그는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작정하고 미워해서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다면 현대 사회에서 삶이 전쟁터가 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더구나 울타리 없이 살아온 천재에게 그것은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가 팬미팅 ‘우리가 처음으로’의 마지막에 “때”를 불렀을 때는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 지난 일도 돌아보면 추억되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새기는 사람은 삶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흔들리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 생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다. 그런 운명의 비바람 한 자락을 맞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런 운명을 두려워해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맞서는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우산이 없다는 것. 원래 운명의 신은 우산을 주지 않는다. 우산이 없어요. 내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비가 와요, 비가 와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안에서 울컥거리며 뭔가가 올라온다. 그대는 마디마디 아픈 삶을 통과해갈 때 제대로 우산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원래 우산은 없다. 고통이 찾아들고 또 찾아들 때는 겪는 수밖에 없다. 매화꽃 향기는 차가운 날들을 겪고 또 겪는 데서 생긴다고 하지 않나. 겪고 또 겪는 와중이니 그의 삶이 그 자체로 노래가 되어 만개하고 퍼지는 것 아닐까.
우산도 없이 비를 받으며 삶 혹은 운명이라 할 수 있는 시시포스의 바위를 굴려 올리다 어느 새 파란 하늘, 쏟아지는 햇살을 만나면, 잠시 숨을 돌리며 그동안의 눈물과 고통이 바로 이 햇살의 온기를 깊이 느끼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고백하게 되는 시간이 오는 것 같다. 그 시간에 “노래가 있어 고맙소”라고 고백하며 그 힘으로 또 오욕칠정의 전쟁터인 세파를 당당히 건너갈 것이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노래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김호중의 노래는 그 자체가 메시지다. 노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김호중은 노래를 통해 버겁기만 한 생의 무게를 소화해내며 그의 노래가 만들어내는 행복감을 우리에게 전한다. 김호중을 축복한다. 그나저나 김호중에게 ‘노래’였던 것이 그대에게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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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