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육사 출신 우대 기조로 향후 육군 인사 무한경쟁 모드…“현 정부 군 개혁 그림 완성 단계”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남영신 신임 육군 참모총장. 사진=연합뉴스
남영신 참모총장 인사가 발표된 날, 국방부엔 신임 장관이 취임했다. 서욱 전 육군 참모총장이다. 육사 41기인 서 장관이 영전하면서 남 총장이 그 빈자리를 메우게 된 셈이다. 서 장관은 비육사 우대 기조가 확실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 비결은 서 장관이 이견의 여지가 없는 ‘특급 작전통’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1사단에서 대대장과 작전참모를 지낸 그는 대령 진급 이후 31사단 93연대장으로 일했다.
향토사단 연대장 출신은 장군 진급이 어렵다는 속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 장관은 장군 진급에 성공했다. 쾌속 질주는 이어졌다. 한미연합사령부 작전처장, 기획참모부장(준장)을 지낸 서 장관은 25사단장, 합참 작전부장(소장), 육군 1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중장)을 거쳐 대장 진급 후엔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서 장관은 육사 동기들 중 유일한 경쟁자로 꼽혔던 조종설 전 특수전사령관(중장)을 제쳤다. 조 전 사령관은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당시 군내 사조직 ‘알자회’ 회원이라는 이유로 좌천된 뒤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이처럼 서 장관은 군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결국 장관에까지 올랐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현 정부가 비육사 우대 기조를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 장관만 한 장관 후보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도덕성 부문에도 큰 흠결이 없는 것이 청와대 입장에서는 반가웠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송영무-정경두 장관이 해군과 공군 출신이었다”면서 “육군의 차례가 왔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에서 서 장관을 제외한 선택지는 사실상 전무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쏠린 쪽은 따로 있었다. 신임 육군 참모총장 인사였다. 학군 출신 남영신 대장이 신임 총장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군 내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육군 참모총장 직은 ‘육사 카르텔’ 최후의 보루였기 때문이었다. 해방 이후 육군 참모총장은 군사영어학교 1기 출신이나 일본군 복무 경험이 있던 장교들이 장악해 왔다. 예외는 없었다.
서욱 신임 국방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채병덕, 백선엽, 정일권 등 한국전쟁 영웅으로 불리던 이들이 건국 초기 육군 참모총장 직을 역임했다. 박정희 유신 정권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잘 알려진 김계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제18대 육군 참모총장 출신이다. 서종철 제19대 육군 참모총장 시절부터 총장 직은 ‘육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서 전 참모총장 이후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된 비육사 출신 장군은 전무했다. 1969년부터 2020년까지 51년 동안 육군 참모총장직을 육사 출신이 맡는 것은 하나의 공식과도 같았다.
‘육군 참모총장’은 육사 카르텔을 대변하는 엘리트코스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안보 관련 요직을 차지했었던 남재준 전 국정원장(25기),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27기)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31기)이 대표적이다.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 직의 경우 간혹 해군사관학교(해사)나 공군사관학교(공사) 혹은 비육사 출신 육군들이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육군 참모총장 직에 있어선 육사 출신이 항상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 왔다.
육사가 육군 참모총장 직을 독식하는 철옹성은 2020년 9월 깨지게 됐다. 학군 출신 남영신 대장이 성역이었던 육군 참모총장 직을 꿰찼다. 남 총장은 장군 진급 이후 ‘최초’ 타이틀을 이어가게 됐다. 남 총장은 소장 시절 이른바 ‘백골부대’로 잘 알려진 3사단장을 지낸 뒤 특수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비육사 출신 최초 특수전 사령관이었다. 이후엔 비육사 출신으론 3번째 기무사령관이 됐다. 더불어 그는 마지막 기무사령관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령부를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전격 개편했다. 남 총장은 최후의 기무사령관-최초의 국가안보지원사령관 타이틀을 얻었다.
2020년 7월엔 탈북민 김민형 씨가 재월북하는 사태가 불거졌다. 당시 해병대 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은 엄중 경고 처분을 받았지만, 지상작전사령관이던 남 총장은 아무 처분을 받지 않았다. 이때부터 군 내에선 남영신 대장의 육군 참모총장 부임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소문은 현실이 됐다. 남 총장은 비육사 최초 육군 참모총장으로 발탁됐다.
비육사 출신의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비육사 출신이 육군 참모총장 직을 꿰찬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파격 인사보다도 파격적”이라면서 “육사 출신인 서욱 전 참모총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했지만, 학군 출신인 남영신 신임 참모총장이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어지는 말이다.
“서 장관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육사 출신이라고 더 이상 특혜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가 이번 인사에 함축돼 있는 듯하다. 남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군 개혁 작업의 핵심 인사로 활약해 왔다. 앞으로 남 총장의 존재감 여부에 따라 비육사 출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 가장 강력했던 육사 카르텔이 종말을 고하기 시작하면서 향후 육군 인사가 무한경쟁 모드로 돌입할 수 있다.”
2019년 육군사관학교 79기 생도 입학식 행사 장면.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전직 군 장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 ‘기수 건너뛰기’ 인사가 육사 카르텔 종말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냈다고 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마지막 육군 참모총장인 장준규 전 총장(36기)과 문재인 정부 첫 육군 참모총장인 김용우 전 총장(39기)은 3기수 차이”라면서 “정권 초기부터 육사 37~38기가 최고위 인사에서 명백하게 배제된 모양새였다”고 했다.
그는 “김용우 전 총장과 서욱 전 총장은 두 기수 차이가 나는데 이때 육사 40기도 최고위급 인사 승진에서 이탈했다”면서 “가용한 육사 출신 인력풀이 급격하게 축소되는 상황 속에서 현 정부가 비육사 출신 고위 인사를 단행할 수 있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왔고, 남영신 총장 부임으로 비육사 우대 기조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현 정부의 비육사 우대 기조와 별개로 남 총장 지휘 능력에 대한 기대감 어린 시선도 있다. 2015년 남 총장 3사단장 재임 시절 휘하에 있던 전직 군 간부는 “남 총장은 백골부대 재임 때 매월 3일을 ‘백골데이’로 지정해 강력한 훈련을 지도했다”면서 “훈련 중심으로 군을 육성하는 지휘관”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남 총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지휘관인데 비율로 따지면 카리스마가 90%, 부드러움이 10%”라고 했다.
2014년 남 총장이 특전사 7공수여단장(준장)에 보직돼 있을 당시 휘하에 있었던 전직 군 간부는 남 총장을 권위주의와 거리가 먼 소탈했던 군인으로 기억했다. 이 전직 간부는 “남 총장이 자신의 아들도 학군 51기로 복무 중이라며 초급 간부들을 자식처럼 생각했다”며 “남 총장에게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면 경례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경례 하겠느냐’고 답하면서 껄껄 웃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