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집착해 또 한 번 ‘인생 캐릭터’ 갱신 “현수가 처음 감정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 기억에 남아”
최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으로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갱신한 배우 이준기.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매번 그렇지만 이번 ‘악의 꽃’은 끝나고 나니 유독 복합적인 감정이 많이 느껴지네요. 작품을 완주했다는 안도감도 있고, 초반에 느꼈던 무게감을 무사히 완결로 승화시켰다는 성취감도 있고. 그리고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달려온 모든 분들을 떠나보냈다는 헛헛함까지…. 게다가 종영 후 바로 인터뷰까지 진행하니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느껴지면서 더욱 만감이 교차하네요(웃음). 참 외로우면서도,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지금입니다.”
최근 이준기는 tvN 수목드라마 ‘악의 꽃’에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의심되는 금속공예가 백희성(도현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의식대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다른 이의 이름을 빌려 삶을 살고 있는 캐릭터의 미묘하면서도 세밀한 감정 변화를 표현해낸 그의 연기력은 매회 시청자들의 감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정이 없는 캐릭터에 공감하도록 만든 데는 이준기의 철저한 연기 공부가 한몫했다.
“아무래도 다양한 인물들과 관계에서 보이는 리액션들에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현수이기에 아주 작은 표현부터 리액션 하나하나가 신 자체에 큰 힘과 설득력을 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 혼자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감독님과 작가님을 비롯해서 현장에서 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카메라 감독님, 그리고 배우 한 분 한 분과 계속해서 서로 생각들을 나눈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너무 뻔하거나 단조롭게 표현돼 도현수란 인물이 단순한 무감정 사이코패스로만 보일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디테일한 부분에 신경을 쓰고 집중했죠.”
감정이 없는 캐릭터지만 이준기의 백희성(도현수)은 다양한 지위에 따라 그에 맞는 얼굴과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금속공예가라는 독특한 직업 설정도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내 지원(문채원 분)에게는 그를 영원히 지탱해주는 남편이었고, 딸 은하(정서영 분) 앞에서는 다정한 아빠로서 면모를 보였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 작품 스토리의 특성상, 각 캐릭터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할 수 없었다는 게 이준기의 이야기다.
‘악의 꽃’에서 이준기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의심되는 금속공예가 백희성(도현수) 역을 맡았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서스펜스 멜로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앞세운 ‘악의 꽃’에서 서스펜스 부분을 이준기가 맡고 있다면 문채원은 멜로와 일부의 미스터리를 맡아 작품의 균형을 맞췄다. 이준기가 이 작품으로 또 다른 인생 캐릭터를 갱신한 만큼 그의 상대역으로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 문채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준기는 아내(?)에 대한 이 같은 평가에 공감하며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현장에서 배우 문채원은 섬세하고 집중력이 높아요. 그리고 본인이 그 감정을 해석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하죠. 그래서 서로 연기 합을 맞춰갈 때 제가 감정적인 부분에서 더 자극받고 도움받기도 했어요. 차지원이 있었기에 도현수의 감정들도 더 절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죠. 극의 몰입도를 매우 잘 만들어내는 배우기 때문에 아마 이번 작품에서 차지원의 감정을 표현해내느라 정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정말 고생도 많았고, 다음에 꼭 맛있는 거 사줘서 기력 회복을 시켜줘야겠어요(웃음).”
문채원의 차지원과는 또 다른 의미로 이준기에게 자극을 준 배우를 한 명 더 꼽자면 김지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극 후반에 그 정체가 드러나면서 극 중 등장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줬던 ‘진짜 백희성’ 김지훈 역시 이준기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통해 그를 다시 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지훈이 형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중후반부터 극적 긴장감을 올리는 빌런(악당)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촬영을 기다려야 했거든요. 정체가 공개된 이후에는 ‘역시나 칼을 갈고 있었구나’라고 느꼈어요. 워낙 성격이 좋고 즐겁게 촬영에 임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연기할 때 즐겁고 자극도 많이 됐어요. 심지어 신을 분석하고 고민하는 작업 스타일도 잘 맞아서 전화로 아이디어 공유만 거의 한 시간을 하다 목이 쉰 적도 있다니까요(웃음). 개인적으로 이번에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에서 빛나길 바라요. 정말 고마워요, 함께 최선을 다 해 줘서.”
이준기는 상대역이었던 문채원에 대해 “섬세하고 집중력이 높은 배우”라며 극찬을 했다. 사진=나무엑터스 제공
함께한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 세심하게 꼽아서 기억할 정도로 이준기에게 ‘악의 꽃’은 유독 소중한 작품으로 남아 있었다. 비단 가장 최근까지 함께한 작품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모든 장면과 대사가 여운처럼 남아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은 그가 이 작품에 임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고뇌했던 흔적이었다.
“모든 장면이 다 좋았지만 현수가 처음으로 감정을 깨닫고 오열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리허설을 할 때조차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고민하면 할수록 막히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완급 조절에 실패해 시청자분들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지금까지 이어오던 전체적인 감정의 흐름을 깰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결국에는 처음 제가 그 회차 대본을 받았을 때 느낌대로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이가 처음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모습으로요. 그렇게 수많은 고민과 상의 끝에 만든 신인데, 찍고 나서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이처럼 배우의 열정과 고뇌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2020년 이준기의 첫 작품이고, 그 이후의 스케줄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코로나19 여파가 방송가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탓인지 차기작을 닦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다만 이준기는 이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기대감을 높였다.
“저는 삶에서 내가 성장하고 잘되는 것보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충만감과 행복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저의 삶의 의미이자 중요한 가치고요. 그렇기에 이번 ‘악의 꽃’은 또 한 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됐고 인간 이준기를 한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시국이기에 미약하게나마 즐거움과 기쁨,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직업이 배우니까 좋은 작품으로 즐거움을 드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성실하게 몸과 마음을 잘 준비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다음 작품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