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피습 은폐하려 사건 조작했다”
▲ 지난 2005년 6월 연천 530GP에서 발생한 김동민 일병 수류탄 투척 및 총기난사 사건이 북한군의 소행임을 주장하며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지난 6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져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5년 전 전방부대에서 12명의 사상자를 낸 연천530GP 피격사건(연천사건)도 북한군의 피습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유가족과 30여 개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진 ‘연천530GP피격사건진상규명촉구 국민협의회(이하 협의회)’는 6월 8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과 관련한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제시하는 한편 당시 군 발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진실 재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사건 5년째를 맞이하면서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연천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 속으로 들어가 봤다.
2005년 6월 19일 새벽 2시 30분경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530GP에서 8명의 장병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군 수사기관은 제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1소대 소총수 김동민 일병이 내무반에서 수류탄 1발과 K-1 소총으로 44발을 난사한 사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김 일병이 선임병들의 괴롭힘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범행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하극상에 의한 내무반 총기사고로 알려진 이 사건에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많다. 특히 사건발생 5년을 앞두고 ‘진상규명촉구국민협의회’가 발족돼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진실 재규명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가족 대표를 맡고 있는 조두하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사기록과 부대일지, 생존 소대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연천 사건은 당시 정권에 의해 은폐·조작됐음을 알게 됐다. 북한도발을 아군에 의한 사건으로 둔갑시킨 이 사건은 소중한 우리 아들들을 친북정책 희생양으로 만든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군 수사기관의 조사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사건발생일인 18일부터 19일까지 28사단 81연대 GP에서 ‘주-야간 차단작전’이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이는 후에 3군 사령부 답변서 등으로 확인이 됐다. 협의회 측은 “사건 전일 제28사단과 최전방부대는 5사단 27연대에서 북한 사병 리동수 검거에 따른 조치로 ‘진돗개 둘’ 발령과 최고조의 경계근무가 실시되고, 사건 당일 주·야간 차단작전이 실시됐지만 군 당국은 이 사실을 은폐했다”고 지적했다.
군이 사건 직후 모든 전투복을 소각한 것과 반납된 총기 22정이 부족한 이유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협의회 측은 “군 수사발표대로 내무반에서 취침 중 당한 사고였다면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을 텐데 군이 굳이 왜 전투복을 모두 소각했을까. 또 작전시 사용되는 K3총을 비롯한 무기가 회수되지 않은 것도 장병들이 당시 차단작전에 투입됐다는 증거다. 심지어 ‘작전에 참여했다’ ‘폐기하라는 총기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는 소대원들의 증언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협의회 측이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는 이유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사건 당시 전파내용이 담긴 부대일지와 생존장병의 진술이다. 협의회 측은 ‘미상화기 9발 피격, 5명 사망’ 등의 전파내용이 담긴 부대일지 및 ‘야간 차단작전 중 사고였다’ ‘사고 후 그 상황에서 시신을 배치하라는 지시를 받고 피를 닦아가며 혼자 시신을 배치했다’는 생존 장병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한 협의회 측은 당시 ‘대응사격과 경고방송’ 지시가 하달됐으며 대응을 위해 ‘전 화포 대기’ ‘전 간부 비상소집’이 이뤄졌고, 이는 육본과 합참까지 보고됐다는 사실을 확보했다.
시신상처에 대한 의혹도 있다. 협의회 측은 ‘수류탄과 총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상화기 열화탄에 의한 상처’라는 정래혁·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과 참모진 등 군 전문가 10여 명 진술 등을 확보한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다. 당시 군은 사고가 내무반에서 발생했다고 발표했지만 석고판으로 이뤄진 내무반 천장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고, 김 일병이 총기를 난사했다는 방향의 관물대에도 총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이 차단작전 지역과 GP옥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협의회 측은 “사건 직후 유족들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군은 GP옥상에 천막을 치고 바닥에 흙을 깔아놓고 뜬금없이 휴게실을 만들었다. 피 한방울 없을 장소에 이럴 이유가 있었겠는가. 실제로 ‘GP옥상 경계근무 중 사고를 당했다’ ‘GP주변 철조망에 혈흔은 물론 희생자들의 의복과 신체 일부분이 산재해 있었다’는 사병의 증언도 있었다. 19일 새벽 5시경 28사단 공병대가 투입돼 GP옥상 복구작업을 한 이유를 밝혀야 한다. 이는 포격장소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적과의 교전이 아님에도 25명의 생존 소대원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을 조기전역시키고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점도 의문이다. 협의회 측은 ‘입막음용 특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한 2002년 서해교전 때 당시 부상자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8명이나 사망한 엄청난 사건임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실형을 받은 사병이나 장교는 없었다. 일례로 2008년 11월 23일 새벽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의 모 사단 내무반에서 수류탄 1발이 터져 5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 당국은 소속 중대장은 물론 사단장까지 문책한 바 있다.
부GP장 최 아무개 하사와 박 아무개 일병은 사건 직후 유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분명히 ‘작전 중 사고’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이들은 전역 후 공중파 방송 취재과정에서 ‘유가족의 강압에 의한 진술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협의회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시 정부가 이 사건을 은폐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협의회 측은 남북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정치적 상황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전기 200만㎾ 지원을 내세워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게 알려지면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남북정상회담에도 제동이 걸릴 게 뻔했다”고 협의회 측은 주장하고 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민감사 청구를 준비하고 있는 협의회 측은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현 정부가 진실규명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면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5년 전 최전방 GP에서는 과연 밝혀지지 않는 비밀이 있었던 것일까. 북측이 개입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연천사건이 천안함 정국과 맞물리면서 또다른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조두하 유가족 대표 인터뷰
“김 일병 범행 증거 전혀 없어”
협의회 측이 내세우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김동민 일병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김 일병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이유에 의문이 생긴다. 이와 관련, 유가족 대표 조두하 교수는 “그 점이 우리로서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아무리 어떤 회유나 압박이 있었다 해도 동료대원을 8명이나 죽인 살인자라고 허위자백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 아니겠나. 하지만 당시 생존 소대원들의 증언과 진술 등을 통해 석연치 않은 점들을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몇몇 생존 소대원들에게 왜 동민이가 자신의 짓이라고 자백했을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 상황상 군의 명령을 거역할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만약 동민이가 아니라 저를 지목했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동민이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들이었다.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의 동민이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스타일로 사건은폐를 위한 적임자로 지목됐을 가능성이 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급박한 상황과 당시 군의 분위기, 물밑보상 및 사형미집행에 대한 강조 등으로 누군가 동민이를 회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교수는 특히 정작 유가족들이 김 일병을 ‘가짜범인’이라 주장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5년간 발벗고 뛰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 일병의 가족들은 일체 무관심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동민이 아버지를 만나서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제기했지만 협조는커녕 내내 시큰둥했다. ‘동민이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전혀 놀라거나 반색하는 기미가 없었다.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작은 의혹이라도 있다면 부모가 먼저 발벗고 나서는 것이 상식일 텐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민이도 사건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재판 당시 동민이가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재판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사실 제 자백뿐이지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라구요.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동민이와 생존장병들의 양심선언이 있다면 끝나는 일이지만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연천사건의 주역인 김 일병은 2008년 5월 사형을 확정받고 현재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김 일병 범행 증거 전혀 없어”
“몇몇 생존 소대원들에게 왜 동민이가 자신의 짓이라고 자백했을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의 얘기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 상황상 군의 명령을 거역할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만약 동민이가 아니라 저를 지목했다 해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동민이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들이었다. 유난히 내성적인 성격의 동민이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스타일로 사건은폐를 위한 적임자로 지목됐을 가능성이 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급박한 상황과 당시 군의 분위기, 물밑보상 및 사형미집행에 대한 강조 등으로 누군가 동민이를 회유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교수는 특히 정작 유가족들이 김 일병을 ‘가짜범인’이라 주장하며 진실규명을 위해 5년간 발벗고 뛰어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김 일병의 가족들은 일체 무관심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동민이 아버지를 만나서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제기했지만 협조는커녕 내내 시큰둥했다. ‘동민이가 범인이 아니다’라고 했는데도 전혀 놀라거나 반색하는 기미가 없었다.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작은 의혹이라도 있다면 부모가 먼저 발벗고 나서는 것이 상식일 텐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민이도 사건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재판 당시 동민이가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재판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사실 제 자백뿐이지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라구요.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동민이와 생존장병들의 양심선언이 있다면 끝나는 일이지만 모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연천사건의 주역인 김 일병은 2008년 5월 사형을 확정받고 현재 육군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김동민 일병 이모부 인터뷰
“동민이 입 닫아 우리도 답답”
연천사건의 진실 재규명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동민 일병 측은 어떤 입장일까. 기자는 수소문 끝에 6월 11일 김 일병의 이모부 A 씨와 전화통화를 통해 가족 측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사건발생 직후 각종 의혹을 제기해 온 유족 측과 수시로 접촉하며 진실규명에 나름 애를 썼던 A 씨는 “지금은 솔직히 그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 발생 5년을 맞는 현재 사실상 김 일병의 가족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것은 김 일병의 가족들도 김 일병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김 일병의 가족들은 누구보다 ‘그날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 김 일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김 일병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동민이가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 동민이 부모의 생각”이라는 게 A 씨의 얘기였다.
김 일병의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유족 측의 지적에 대해 A 씨는 “아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는데 부모 속이 편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동민이가 그 사건에 대해 일절 얘기를 하지 않으니까 부모 입장에서도 섣불리 나설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A 씨가 김 일병 부모를 만나 몇 번이나 얘기를 꺼내봤지만 “본인이 가타부타 얘기를 안하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만 확인했다고 한다.
실제로 A 씨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의 주역인 김 일병이 ‘자백’을 번복할 가능성도 없어보였다. 여지껏 가족들은 김 일병으로부터 ‘사건’과 관련된 어떤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 일병은 가족들과의 면회에서도 ‘사건’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렸다고 한다.
“동민이 엄마가 물어봤는데도 ‘내가 했다’ ‘내가 한 짓이 아니다’라는 말도 없이 무조건 침묵으로 일관했다. 재차 물어보면 ‘그 얘기는 왜 자꾸 하느냐’며 급기야 짜증을 냈다. 육군교도소라는 곳이 워낙 감시가 심하고 면회시에도 옆에서 지키고 있다 보니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민이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부모 입장에서 진실을 논할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A 씨는 유족들이 주축이 된 협의회의 움직임에 일말의 기대를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A 씨는 “단 1%라도 동민이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 유족들과 뜻을 모아 재규명 움직임에 협조해야 하지 않겠나”며 “조만간 동민이 부모를 만나 사건진행 사항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설득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동민이 입 닫아 우리도 답답”
연천사건의 진실 재규명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동민 일병 측은 어떤 입장일까. 기자는 수소문 끝에 6월 11일 김 일병의 이모부 A 씨와 전화통화를 통해 가족 측 입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사건발생 직후 각종 의혹을 제기해 온 유족 측과 수시로 접촉하며 진실규명에 나름 애를 썼던 A 씨는 “지금은 솔직히 그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건 발생 5년을 맞는 현재 사실상 김 일병의 가족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중요한 것은 김 일병의 가족들도 김 일병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김 일병의 가족들은 누구보다 ‘그날의 진실’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지만 가족들 입장에서 김 일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김 일병의 이해할 수 없는 침묵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인 동민이가 입을 열지 않는 상황에서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 동민이 부모의 생각”이라는 게 A 씨의 얘기였다.
김 일병의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유족 측의 지적에 대해 A 씨는 “아들이 그런 상황에 처했는데 부모 속이 편할 리 있겠는가. 하지만 동민이가 그 사건에 대해 일절 얘기를 하지 않으니까 부모 입장에서도 섣불리 나설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A 씨가 김 일병 부모를 만나 몇 번이나 얘기를 꺼내봤지만 “본인이 가타부타 얘기를 안하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만 확인했다고 한다.
실제로 A 씨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건의 주역인 김 일병이 ‘자백’을 번복할 가능성도 없어보였다. 여지껏 가족들은 김 일병으로부터 ‘사건’과 관련된 어떤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침묵’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 일병은 가족들과의 면회에서도 ‘사건’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렸다고 한다.
“동민이 엄마가 물어봤는데도 ‘내가 했다’ ‘내가 한 짓이 아니다’라는 말도 없이 무조건 침묵으로 일관했다. 재차 물어보면 ‘그 얘기는 왜 자꾸 하느냐’며 급기야 짜증을 냈다. 육군교도소라는 곳이 워낙 감시가 심하고 면회시에도 옆에서 지키고 있다 보니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민이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부모 입장에서 진실을 논할 엄두를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A 씨는 유족들이 주축이 된 협의회의 움직임에 일말의 기대를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A 씨는 “단 1%라도 동민이가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면 유족들과 뜻을 모아 재규명 움직임에 협조해야 하지 않겠나”며 “조만간 동민이 부모를 만나 사건진행 사항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설득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