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인기와 동시에 쏟아진 성범죄·빚투 논란…‘사이버 렉카’ 유튜버 무분별한 폭로 비판론도
지난 7월 9일 첫 선을 보인 이래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유튜브 콘텐츠 ‘가짜사나이’가 출연진들의 각종 논란 및 의혹에 휘말렸다. 사진=유튜브 ‘피지컬갤러리’ 캡처
올해 7월 9일 민간 군사전략컨설팅회사 무사트(MUSAT)와 운동 및 체형교정 콘텐츠를 주력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 ‘피지컬 갤러리’가 손잡고 선보인 ‘가짜사나이’는 올 한 해 가장 핫한 콘텐츠로 꼽혀 왔다. 이미 알려진 인터넷 방송인들이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훈련 과정을 경험한다는, 바탕은 다소 단순했지만 유사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었던 현실감과 자극성이 유튜브 세대를 사로잡은 것이었다. 국내 인터넷 방송의 저변을 뒤집은 이 콘텐츠는 고작 3개월 만에 다른 인터넷 방송 플랫폼은 물론 지상파, 케이블, 종편에 이르기까지 국내 전 미디어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 받은 인물은 군사 컨설턴트이자 유튜버 이근 해군특수전전단 예비역 대위(36)였다. ‘가짜사나이’의 교육대장을 맡은 그는 교관으로서 독특한 캐릭터성과 “너 인성 문제 있어?” “4번은 개인주의야. 4번은 혼자밖에 생각하지 않아” 등 특유의 대사로 구독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어 왔다. 지난 8월 개인 유튜브 채널 개설 6일 만에 구독자 수 10만 명을 넘어섰고, 15일 기준으로 75만 명가량의 구독자 수를 보유하게 된 그는 명실상부한 인플루언서였다.
유튜브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는 다른 미디어로까지 이어졌다. JTBC 코미디 프로그램 ‘장르만 코미디’를 시작으로 SBS ‘집사부일체’ ‘제시의 쇼!터뷰’, MBC ‘라디오스타’, 방송인 박준형의 유튜브 웹예능 ‘와썹맨’ 등이 저마다 이근 대위 모시기에 나섰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광고업계 역시 이 같은 이슈에 편승했다. 지난 9월 남성 스킨케어 브랜드 ‘바버501’을 시작으로 온라인 게임 ‘검은사막’, 롯데리아 ‘밀리터리 버거’, 지프(JEEP), KB저축은행 ‘키위뱅크’가 이근 대위를 모델로 내세웠다.
이근 대위는 독특한 캐릭터성과 어록으로 ‘가짜사나이’ 출연진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다. 사진=유튜브 ‘가짜사나이’ 영상 캡처
비연예인 신분의 인플루언서가 이처럼 단 기간에 인기 몰이를 하고, 방송과 광고계를 종횡무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를 섭외하려 했던 업계 관계자는 “다른 유명 유튜버나 인터넷 방송인들에게는 주로 자신의 콘텐츠 성향에 맞는 광고만 주어졌다. 예컨대 뷰티 유튜버면 무조건 화장품 광고, 게이머라면 게임 광고 모델로 섭외되는 식”이라며 “그런데 이근 대위는 뜨자마자 웬만큼 알려진 연예인들이나 받을 만한 다양한 광고가 들어올 정도지 않았나. 그만큼 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승승장구와 더불어 폭로전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2일 이근 대위의 지인이라고 밝힌 피해자의 ‘200만 원 채무변제불이행’ 폭로를 시작으로 각종 의혹과 논란이 꼬리를 물고 튀어나와 그를 기용한 업계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첫 폭로의 경우는 피해자와 이근 대위의 진실 공방 끝에 지난 5일 상호 합의 사실을 알리며 종결됐지만, 폭로의 무대가 지인에서 유튜브로 옮겨지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이른바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폭로형 이슈 몰이 유튜버들이 ‘가짜사나이’를 겨냥하고 나선 탓이었다.
‘사이버 렉카’는 온라인 핫 이슈를 두고 ‘고속도로에서 사고 난 차량에 달려드는 렉카(사설 견인차)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들 폭로형 유튜버들은 특히 지난 2일 첫 폭로가 터졌던 이근 대위를 중심으로 △허위 UN 근무 경력 △부친의 기부금 사기 △성폭력 전과 △폭행 전과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의혹이 아닌, 확실한 사실로 드러나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이 성폭력 전과였다. 공개된 사건 자료 등에 따르면 이근 대위는 2017년 11월 서울 강남구의 한 클럽에서 피해 여성(당시 24세)의 신체부위를 만진 혐의로 2018년 11월 1심에서 벌금 200만 원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명령을 선고 받았다. 이 판결은 이듬해 대법에서 이근 대위의 상고가 기각되면서 확정됐다.
이근 대위의 이번 논란으로 중단된 광고의 경우는 품위유지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이근 대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이근 대위 유튜브 캡처
판결문과 사건번호까지 공개되자 이근 대위는 처벌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는 해명문에서 “당시 CCTV 세 대가 있었고 제가 추행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나왔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오직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단 하나의 증거가 돼 판결이 이뤄졌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때문에 이근 대위를 옹호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여자가 무고한 사람을 성범죄자로 만든 게 아니냐”며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결국 피해 여성의 법률대리인인 홈즈 법률사무소 하서정 변호사가 직접 “이근 대위가 상고심까지 거치며 실체적 진실로 확정된 법원의 판결을 근거 없이 부정하고 있다.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가해자인 이근 대위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한 발언을 일체 중지하고 더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경고했고, 이후 이근 대위는 이 사건과 관련한 언급을 중단한 상태다.
이처럼 명확한 사실로 드러난 성범죄는 그를 기용한 업계에도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앞서 채무불이행이나 허위 UN 근무 경력, 부친과 관련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상황을 살피겠다는 입장을 보였던 광고·방송계는 성범죄 확인 직후 그가 출연한 모든 광고와 방송을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다.
또 다른 광고홍보사 관계자는 “업계에서 검증 받지 못한 인터넷 인플루언서들은 과거 행적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웬만해선 잘 쓰지 않는다.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근 대위의 경우는 군인으로서 행적이 명확했기에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해선 고지 의무가 없었다고는 해도 (이근 대위가) 도의적인 측면에서 이를 알리거나 섭외 제안을 먼저 거절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이근 대위 측은 이번 논란에서 이어진 광고·방송 중단에 대해서는 별 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통상적으로 광고 모델 계약에서 정하는 품위유지약정 위반의 책임이 있는 만큼 광고주들로부터 이에 대한 손해배상이 청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가짜사나이’ 물어뜯은 유튜버, 몸캠 공개했다가 역으로 된서리 이번 ‘가짜사나이’ 논란을 촉발시킨 이슈 몰이 유튜버들은 그들의 폭로전을 두고 “국민들의 알 권리와 사회 정의를 위한 단죄”라고 주장해 왔다. 과거사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인플루언서들이 대중 앞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직접 제보를 받아 검증에 나섰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검증은 사실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넘어서 또 다른 범죄로까지 이어진다는 게 이번 사태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가짜사나이’의 또 다른 출연진 로건, 정은주를 겨냥했던 정배우는 불법촬영물 유포 등 혐의로 현재 경찰 내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정배우 유튜브 캡처 그러나 공개된 메시지만으로는 이들이 실제 퇴폐업소를 방문했거나 성매매를 했다고 확신하기 어려워 보였다. 특히 로건의 경우는 단순히 음담패설에 맞장구를 치는 식으로만 대화를 이어나갔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사실 검증이 허술했다는 비판이 일자, 정배우는 지난 15일 반박 생방송을 진행하며 로건의 의혹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로 그의 ‘몸캠 피싱’ 유출로 추정되는 사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몸캠 피싱은 악성 바이러스나 개인 정보 유출 코드를 심은 모바일 앱을 통해 채팅에 참여한 피해자의 음란 사진이나 영상을 캡처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범죄 행위다. 당시 정배우는 “사진 공개 전 변호사와 상의를 거쳤는데, 이미 인터넷에 유출돼 있던 사진이라 (공개해도) 상관없다고 했다”며 “나는 진실을 알려주는 직업이다. (로건은) 일반인이 아닌 공인, 연예인의 사건”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배우의 이 같은 행위가 불법촬영물(음란물) 유포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퇴폐업소 방문이나 성매매 같은 실질적인 불법 행위가 아닌 사생활, 심지어 사실상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로 파악되는 사진을 소지하고 이를 유포까지 한 것은 현행법상으로도 범죄 요건을 구성한다. 여기에 피해자인 로건 측이 직접 자신이 몸캠 피싱을 당했음을 밝힌 뒤 “정배우는 저의 동의 없이 촬영된 영상을 입수해 저를 비방할 목적으로 다수가 시청하는 방송에 송출해 제 명예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사진 등을 소지하고 유포했다”며 민형사상 고소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도리어 논란에 휩싸이게 된 정배우는 결국 로건과 정은주에 관련한 모든 영상과 글을 삭제한 뒤 “제 잘못된 판단으로 이근, 로건, 정은주, 로건 아내분, UDT 대원 분들이 욕을 먹는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 원래 피해자를 인터뷰하고 도와드리는 취지의 채널이었는데 어느새 이상해지고 괴물이 돼버렸다”는 내용의 사과 영상을 새로 올렸다. 그러나 이미 그의 불법촬영물 및 명예훼손 고소 사건은 서울 강동경찰서가 내사에 착수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신고인 조사를 진행한 뒤 정배우에 대해 정식 입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