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열기 뜨면 그들도 뜬다
▲ 지난해 한구과 호주의 축구 친선 경기에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오른쪽)이 허정무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축구를 즐기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인들에게 월드컵 시즌은 좋은 ‘홍보 기간’이다. 한국과 그리스의 경기가 열린 지난 12일 저녁 많은 정치인들도 거리로 나와 길거리 응원전에 동참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는 각각 거리응원전의 메카인 시청 앞 광장과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찾았고,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 김진표 최고위원 역시 강남 봉은사 등에서 열린 길거리 응원전에 동참했다. 이처럼 정치인들이 길거리 응원을 함께하는 이유는 대중들에게 인지도도 높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번 월드컵으로 인해 가장 큰 ‘특수’를 노리는 이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다. 정 전 대표는 지난 6·2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으로 날아가 현지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 전 대표가 남아공을 방문한 더 큰 목적은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한국을 홍보하기 위함이다. 정몽준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대표직을 사임한 바 있다. 지방선거 이전만 해도 그가 오는 7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선거 패배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정 전 대표가 차기 FIFA 회장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이 근래 들어 유력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정 전 대표는 현재 FIFA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그가 처한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대표팀이 극과 극의 실력을 보여주었던 지난 그리스전과 아르헨티나전을 현지에서 바라본 그의 심경은 남달랐을 듯하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지방선거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정몽준 전 대표에게 월드컵은 절체절명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성적이 좋고 이를 발판으로 2022년 월드컵 유치까지 성사시킨다면 대권주자로서의 정몽준 전 대표의 입지도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축구인이자 정치인 신분인 그에게 월드컵은 ‘정치인생’을 좌우할 만한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역시 ‘축구’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 적이 있다. 지난 2005년 당시 통일부 장관을 맡고 있던 시절 정 전 장관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8·15 남북 축구경기’를 제안해 주목을 끌었다. 당시 정 전 장관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 축구경기를 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그 해 8월 4일 국가대표 남북축구팀의 대결이 예정돼 있던 데다 국가대표팀의 해외 경기도 계획됐던 상태라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촉박한 계획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하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높이고 있던 정 전 장관이 ‘정치적 오버’를 했다며 순수한 의도로 보지 않는 시각이 많았던 것.
“축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에도 결국 2005년 8월 14일 ‘2005년 남북통일축구’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성사되었고 결과는 대한민국팀의 3 대 0 승리였다. 경기가 열리기까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남북이 하나가 되어 응원하는 모습만으로도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정동영 전 장관의 주가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게 사실이다.
정치인 중에는 축구를 취미로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이는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강원도 화천의 GOP에서 군 복무를 했던 유 전 장관은 틈틈이 축구 시합으로 군 시절의 낙을 삼았다고 한다. 독일 유학 중에도 축구를 자주했다는 그는 지금도 고교 동창회 등에서 친선 경기를 할 때면 ‘선수’로도 이름을 날릴 정도라고. 말솜씨가 좋은 그는 인터뷰에서 ‘축구상황’을 빗댄 발언을 여러 번 하기도 했다. 2005년 여야친선 축구대회에서는 “정치인들은 패스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따끔한 비유를 하기도 했다. 축구마니아인 유시민 전 장관은 인터넷상에서 한때 ‘이영표 선수’와 생김새가 닮았다고 꼽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당선된 김두관 당선자 역시 축구 등 스포츠를 좋아하는 스포츠 마니아다. 남해 군수 시절엔 우리나라 최초로 ‘남해스포츠 파크’를 만들며 주목을 끌었고 2001년에는 국내 첫 유소년 클럽인 남해축구클럽을 만들어 많은 유망주를 키워내기도 했었다.
한 정치평론가는 ‘축구’에 유독 열광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성과 정치 사이에는 미묘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 평론가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정치에서 멀어지게 되고,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이러한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반감이 줄어드는 쪽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난 2009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상승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올림픽보다 대중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더 강한 월드컵의 경우 이러한 효과는 더 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