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분한 친박부대 ‘군기’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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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싫다는데…’ 박근혜 전 대표가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에도 친박계 좌장격 인사들이 ‘대표설’에 불을 지피는 등 내부 분열 조짐이 감지됐다. 박 전 대표의 ‘한마디 정치’에 균열이 생긴 것일까. | ||
그러나 박 전 대표를 비롯해 친박계 다수가 이에 부정적이어서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의 우세한 견해다. 이 때문인지 한때 강경한 목소리를 냈던 친박 의원들 중 상당수가 지금은 다소 누그러진 듯한 기세를 보이고 있다. 박 전 대표 핵심 측근들은 이러한 일부 계파 의원들의 ‘항명’에 가까운 움직임에 대해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 여권 주류가 있을 것이란 의구심도 갖고 있다.
전당대회 등을 앞두고 친박 내부의 분열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친이계 일각에서는 ‘주군’에 대한 로열티가 강하기로 정평이 난 친박이 박 전 대표의 당권 접수를 꺼내든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포함해 박 전 대표가 당을 맡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박근혜 대표론’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박근혜 전 대표가 7월 14일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지방선거 직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주로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였다. 이들은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 계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가 당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적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팎에선 이 위원장이 7·28 재보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측근들을 통해 전당대회에 나갈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박근혜 대표론’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소멸되는 듯했다.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것은 친이가 아닌 친박이었다. 친박 내 일부 중진 의원들이 박 전 대표가 집권 후반기에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이들이 당 내 인사들을 접촉하며 그 정당성을 설득시키려는 모습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비례대표 출신의 한 친박 의원은 “친박에서 좌장급으로 여겨지는 분들이 박 전 대표를 당 대표에 추대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친이-친박을 떠나 적지 않은 의원들이 이에 동조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방선거 이후 ‘쇄신론’을 들고 나왔던 초선 의원들은 여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하는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엔 친이는 물론 친박 의원들도 포함돼 있었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홍사덕 의원은 지난 6월 15일 “박 전 대표가 당을 맡는 게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준 메시지”라며 본격적으로 공론화를 시작했다. 홍 의원 측은 “전당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론’이 분명 실체가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제기해서 토론하는 것이 필요했다. 친박의 어른으로서 솔선수범한 것이라고 봐 달라”고 설명했다. 이틀 뒤인 17일 또 다른 친박 유기준 의원은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박 전 대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현실을 외면하거나 책임을 회피한 적이 없다. 이러한 분이 당을 맡아주신다면 책임 있는 정당, 변화하는 정당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친박의 유력 의원들이 이러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던 15~17일, 3일 동안 친박 인사들은 수시로 비공개 회동을 갖고 의견 조율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는 친박 의원 모임 ‘여의포럼’도 15일 만찬을 갖고 박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가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여의포럼 소속의 한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침묵할 수는 없다는 데 동의했다.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박 전 대표의 마음을 돌려보자는 얘기를 나눴다. 유 의원과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주도했다”고 귀띔했다.
박 전 대표는 “전당대회에 안 나간다”고 자신이 분명히 선을 그었던 15일에 여의포럼이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도 그동안 박 전 대표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친박의 이러한 행동을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박 전 대표는 사태가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16일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다시 한 번 불출마 의지를 보였다. 이와는 별도로 박 전 대표는 부산 지역 초·재선 의원들과 만나 “국민에게 면목이 없어 못 나가겠다. 당 대표가 된들 대통령에게 불편만 주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완곡하게 양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의원 보좌관은 “박 전 대표가 다소 변한 듯했다. 예전 같으면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몇 마디만 했을 텐데 그 날은 자신의 상황을 길게 설명했다. ‘쿠데타’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니 박 전 대표도 심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적극적인 모션을 취하자 달아오르던 친박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도권 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박 전 대표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걸로 받아들이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당대회나 세종시 표결 등 친이와의 싸움을 앞두고 우리끼리 갈려서는 안 된다는 말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쇄신파’에 속하는 친박 의원들 상당수가 박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공개적으로 박 전 대표 문제를 거론했던 홍사덕·유기준 의원 역시 당분간 ‘신중 모드’를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친이 초선 의원 일부가 ‘박근혜 대표론’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힘이 현저하게 빠진 상태다. 수도권의 한 친이 의원 보좌관은 “지방선거 훨씬 이전부터 우리 쪽은 박 전 대표의 역할에 대해 거론해왔다. 이번에 부각됐던 것은 친박이 합세했기 때문인데 다시 (친박이) 빠지면서 시들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단 봉합은 됐지만 박 전 대표 측근들은 ‘내부 단속’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최측근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이번에 일부 의원들이 (당 대표 문제로) 박 전 대표에게 ‘항명’을 한 것은 아무래도 2012년 총선 때문이 아니겠느냐. 당권을 박 전 대표가 잡아야 자신들도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박 전 대표를 흔들어서야 되겠느냐. 누구 때문에 금배지를 달았는지 돌이켜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론 겉으로는 박 전 대표가 세대교체론에 휩쓸릴 것을 우려했다지만 솔직히 당 대표가 되면 더욱 (세대교체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현재의 위기를 만든 장본인들인 여권 주류가 아무런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박 전 대표에게 무조건 설거지만 시키려 해서야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친박 일각에서는 이번 ‘대표 논란’을 7월 전당대회와 연관 짓기도 한다. 정치권에선 이미 친박 진영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기로 결론을 내린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이계가 지지하는 후보와 표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 따라서 여권 핵심부가 친박 내부를 분열시켜 전당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박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설을 꺼내들었다는 시각이다. 박 전 대표 최측근들이 “홍사덕·유기준 의원과 친이계가 교감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전 대표 비선라인의 한 전략가는 “홍사덕·유기준 의원은 김무성 원내대표와 함께 친박 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가까운 정치인으로 꼽힌다. 현 정권 들어 YS는 박 전 대표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반면 MB와는 코드를 맞추고 있다. ‘박근혜 대표론’에 현 정권 실세로 통하면서, YS의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과도 가까운 사이인 한 대학교수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내부 분열을 경계하고 있는 친박은 최근 있었던 국회 의장단 선거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선 친이로 분류되는 박희태 의원이 지난 5월 일찌감치 국회의장에 내정된 후 부의장은 친박 몫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친박의 박종근·이해봉 의원이 모두 출사표를 던지면서 표가 갈려 어부지리로 친이계인 정의화 의원이 부의장에 당선됐다. 친박 진영에선 이 과정에 친이 주류가 개입한 흔적을 잡고 의구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 일부에서 선거 전 ‘내부 교통정리’를 할 가능성이 높았던 박종근·이해봉 의원 중 한 명에게 접근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다. 중도에 그만둘 필요 없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친박 표는 분산됐고, 정의화 의원이 승리해 친이 전략은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론’의 동력이 떨어지자 여권 주류는 아쉬워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박 전 대표가 집권당 수장이 될 경우 이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원안을 고수했던 박 전 대표가 당을 맡으면 그 역풍이 덜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고 한다. 가깝게는 7월 재보선에서의 활약도 기대했다는 전언이다. 더군다나 대표론이 무산되더라도 친박을 흔들 수 있으니 친이로서는 ‘밑질 게 없던’ 장사였던 셈이다.
청와대 정무라인의 한 관계자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한 친박 의원들의 이번 행동에서 이해 안 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박 전 대표에게 당을 맡기기 위해선 이 대통령 탈당을 포함한 당·청 분리 요구가 나왔던 것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가 확실하게 당을 장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차기에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자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