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 전·현 직원 공모 의혹, 사모펀드 쪼개 팔아 제재받기도…금융사들은 공모·OEM 부인
지난 7월 6일 금융정의연대는 서울 중구 하나금융지주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감독원 라임 분쟁조정 결과 수용을 촉구하고 파생결합펀드(DLF)·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배상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허일권 기자
#하나은행 사기판매에 직원 연루 의혹까지…
하나은행이 판매했던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가 사기판매이며 직원이 관련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10월 13일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시민사회단체인 금융정의연대와 함께 삼일회계법인의 이탈리아 현지 실사 보고서 분석한 결과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가 사기판매로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상품설명서에 언급된 투자 구조가 현지 실사 보고서에 기술된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배진교 의원에 따르면 펀드 만기는 25~37개월이지만 6~7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는 매출채권들이 섞여 있었다. 이마저도 시장 할인율(15~25%)보다 높은 가격(평균 할인율 7~8%)에 사들였다. 또 상품설명서에는 이탈리아 진료비 매출채권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ESC그룹이 전반적인 모니터링을 한다고 돼 있었지만, ESC그룹은 사실상 역할을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CBIM과 ‘한남어드바이저스’라는 회사가 불량채권 매입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도 이런 사실을 지난 3월 파악했으나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다.
투자설명서에도 없는 ‘한남어드바이저스’는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를 연결해주고 약 4%에 달하는 판매수수료를 받았다. 판매사인 하나은행의 수수료가 1.2%, 국내 자산운용사의 평균 수수료가 0.16%인 점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수료를 챙긴 셈이다.
이에 더해 하나은행 직원 A 씨와 한남어드바이저스의 공모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A 씨는 헬스케어펀드를 초기부터 기획했으나 지난해 사모펀드 문제가 불거진 후 퇴사하고 외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헬스케어펀드뿐만 아니라 다른 펀드도 기획했고 그 규모가 총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배진교 의원은 “A 씨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의심이 가는 상황이기에 헬스케어펀드를 포함해 다른 펀드까지 실사가 필요하다”며 “하나금융그룹의 종합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감원은 이러한 사실관계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나은행은 “직원이 공모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상품판매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는 등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투자자에 소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6월 29일 한국투자증권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 대책위는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투자증권과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팝펀딩 관계자 등 6명을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사진=허일권 기자
#고질적 병폐 ‘OEM 펀드’ 속속 드러나
한국투자증권이 판매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도 하나은행과 비슷한 상황이다. 자비스팝펀딩·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 대책위원회는 한국투자증권과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책위는 “투자제안서 등에 설명된 대출채권의 일부 차주 명단과 차주의 대출상환 이력이 허위였다”며 “또 부실 대출, 담보물 횡령 등으로 인해 가입 당시 제시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으면서 총 5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팝펀딩이 OEM 펀드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팝펀딩을 기획한 헤이스팅스자산운용은 한국투자증권의 전 직원들이 2017년 5월 만든 회사다(관련기사 정부 극찬받은 팝펀딩의 배신, 한투는 과연 몰랐을까). 지난해 한국투자증권 프라이빗뱅커(PB)들은 피해자들에게 2018년 3월부터 많은 검토와 시뮬레이션을 거쳐 팝펀딩을 만들었고 본사 상품·리스크 부서로부터 4번의 걸친 혹독한 점검을 받았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사실관계가 나오기 전까지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OEM 펀드라고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쪼개 팔기도 OEM 펀드로 지적된다. 금융사들이 공모펀드에 적용되는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회피하고자 동일 상품을 1, 2, 3호 등으로 나눠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49인 이하로 사모펀드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6월 24일 금융위원회는 NH농협은행에 대해 과징금 20억 원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농협은행이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 아람자산운용에 OEM 방식으로 펀드를 주문했고 사모펀드를 쪼개 팔아 공모펀드 규제를 회피했다는 이유다.
OEM 펀드 판매사가 제재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당국이 규제 사각지대를 악용한 판매사의 행태를 앞으로 봐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월 13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펀드 쪼개기 판매’에 대해 “불법이라고 생각하고 조사에 따라서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모펀드 피해액 금융권에선 OEM 펀드는 물론 사모펀드 사업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5년간 금융회사에서 판매한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피해에 따른 보상금액이 1조 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금융투자상품 투자자 피해에 대한 보상지급 내역’에 따르면 2016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은행·증권사가 판매한 금융투자상품 중 문제가 발생해 투자자들에게 선지급했거나 지급 예정인 보상금액은 1조 666억 원에 달했다. 특히 사모펀드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은행이 지급 결정한 피해 보상액은 총 4615억 원이다. 라임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의 피해 보상액이 1390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라임 무역펀드를 판 신한은행이 1370억 원,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와 라임·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한 하나은행이 1085억 원을 지급했다. 증권사들은 총 6051억 원에 달하는 보상액을 피해자들에게 선지급했거나 지급할 예정이다. 라임·독일헤리티지 펀드를 팔았던 신한금융투자가 2532억 원으로 가장 규모가 컸다. 옵티머스펀드를 판 NH투자증권이 1780억 원을, 라임펀드를 판매한 신영증권과 대신증권이 각각 570억 원, 462억 원을 보상하기로 했다. 규제뿐 아니라 감시마저 완화되며 사모펀드 사태가 불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5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투자한도를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낮췄다. 문제는 투자자 범위를 크게 확대했음에도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완화했다는 점이다. 사전에 심사를 받지 않고도 자산운용사를 설립해서 펀드를 판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간소화했다. 금융감독원에 통상 보고해야 하는 운용 전략, 투자 대상 자산의 종류, 투자 위험 관련 사항 등을 모두 면제해줬다. 실제 사모펀드 자산운용사는 2014년 10개사에서 지난해 217곳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모펀드 수는 615개에서 3324개로 늘었고,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170조 원대에서 400조 원대로 확대됐다. 이에 대해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사모펀드 운용사의 위험관리 조직 및 체계, 내부통제에 관한 요건 등을 재정비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레버리지, 위험 익스포져, 비유동성자산 현황, 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등 시스템과 운영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운용사의 불법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 기능과 처벌 규정을 강화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