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직원 연루설 검찰 수사 타깃…“금감원 내부부터 신경 쓰라” 날선 비판론
대형 금융 스캔들로 번진 사모펀드 사태로 금융감독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사진=최준필 기자
“가볍게 보기 어려운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지만, 일단 돈의 흐름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번 라임·옵티머스 펀드를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바라보는 수사기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진위와 관계없이 정·관계와 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거론되는 건 금융사기 사건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라임·옵티머스 관계자들도 동업자와 투자자를 안심시키거나 자금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관계가 깊지 않은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했거나 그 관계를 부풀렸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종의 ‘신중론’이다.
실제 지금까지 라임·옵티머스 경영진 등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관계자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사문서 위조 등이다. 로비 의혹은 아직 수사를 통해선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검찰이 확인 중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라임·옵티머스와 연관된 회사들 간의 얽히고설킨 돈의 흐름과 움직인 시점 등이 명확히 확인되면 로비 흔적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선을 금감원으로 돌리면 얘기는 달라진다. 최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옵티머스 사태 수사 인력을 늘리고 로비 의혹으로 수사 방향을 확대한 직후 전직 금융감독원 국장을 ‘1호 타깃’으로 겨냥했다. 검찰은 지난 10월 13일 윤 아무개 전 국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는 2018년 3~4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에게 펀드 수탁사인 하나은행 관계자 등 금융권 인사를 소개하는 대가로 2000만 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를 받는다. 윤 전 국장은 1999년부터 금감원에서 재직하다 2019년 6월 퇴직했다. 그는 대출알선 등의 혐의로 옵티머스와 별개의 재판도 받고 있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았고 현재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옵티머스 사건에서 로비 의혹을 받는 금감원 출신 인사는 또 있다. 금감원 전 수사조사역 변 아무개 씨다. 그는 2019년 8월 옵티머스 계열 회사로, 펀드 자금이 흘러들어간 해덕파워웨이 상근감사로 선임됐다. 최근 로비 의혹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한 윤석호 변호사(구속기소)의 아내 이진아 전 청와대 행정관이 사외이사로 일하던 시점과 같다. 그는 지난 5월, 옵티머스 부실을 검사하는 금감원 국장과 팀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마음으로 봐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라임 사건에선 금감원 직원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금감원 김 아무개 팀장이 금감원 내부 검사 자료를 빼냈고, 그 대가로 고향 친구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3000만여 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 김 팀장은 지난 9월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지난 10월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헌 금감원장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진행 중인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들 외에 또 다른 비리 연루 금감원 직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최근 검찰과 금융권은 2017년 자본적정성 문제가 심각했던 옵티머스가 금융당국의 시정 조치를 유예받은 점을 주목하고 있다. 당시 옵티머스는 자기자본이 최소영업자본액보다 적었다. 이 경우 적기시정조치를 받게 되고, 한 달 안에 자본확충을 위한 경영개선계획안을 제출한 뒤 금융당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행하지 못하면 업계에서 퇴출된다.
결과적으로 옵티머스는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했다. 금감원 검사, 계획서 제출, 금융위원회 정례회의 등을 거쳐 적기시정조치 적용 기한을 유예받았다. 그러나 당시 옵티머스가 낸 자본확충 계획은 사기성이 짙었다. 당시 옵티머스는 양호 전 나라은행장과 A 회사 대표이사 등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자본을 확충하겠다고 했으나 A 회사에 문제가 있었다. 채권자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고, 한국거래소 지정 위험관리종목으로 지정돼 신규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옵티머스는 금감원에 제출한 자본확충 계획을 이행하지 않았다. 대신 앞서의 이진아 전 청와대 행정관과 다른 주주가 돈을 투자하면서 부족한 자본금을 채웠다. 본격적으로 불법적인 사모사채 투자가 시작된 건 그 이후부터다.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고, 대형 증권사 등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1조 원대 대규모 금융사기로 판이 커졌다.
여기까지는 감독 부실 문제로 볼 수 있지만,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김재현 옵티머스운용 대표, 양호 전 고문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로비 의혹으로도 번지고 있다. 양 전 고문은 2017년 11월 9일 금감원 적기시정조치 관련 내용을 듣고 최흥식 당시 금감원장을 만나기로 했다거나 금감원이 자신을 VIP 대접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2017년 10월 20일 금감원 직원에게 전화해 “최흥식 원장을 만날 일이 있다”라는 말을 하며 따로 약속을 잡는 내용도 공개됐다. 금감원 직원이 결격사유를 점검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내용도 추가로 공개되기도 했다.
이 녹취록에 대해 금감원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없진 않다. 사기 계약에 대해 알 수 없었고, 옵티머스가 자본만 확충하면 회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금융당국이 ‘죽이기’보다는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점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권에선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금감원이 옵티머스를 점검하던 시점은 부실한 사모펀드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한 때였다. 2015년 정부가 사모펀드 진입 조건을 대폭 완화한 이후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산운용사 195곳 중 약 40%가 적자를 내고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당시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시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물망에 걸렸던 옵티머스가 회생했다. 녹취록에 나온 대화 정도로 금감원이 신경을 썼다면 적어도 사후점검이라도 진행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양호 전 나라은행장 관련 녹취록을 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보다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금감원은 라임과 옵티머스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금융권에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거나 예고해왔다. 특히 금융권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온 대표이사 징계 사유가 ‘내부통제 부실’이었다는 점에 대해 날선 목소리가 나온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같은 논리로 금감원 직원들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금융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금감원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금감원 결정에 수긍할 수 있겠나.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 제도 개선이나 내부 단속과 관련한 쇄신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금감원은 최근 불거진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별다른 공식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로선 자체 진상조사 등을 진행할 계획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옵티머스 비리 의혹에 연루된 퇴직자 두 사람 모두 금감원 내부에 영향력을 미칠 지위가 아니었고 직원의 비밀 유지 의무, 감사원의 감사로 외부의 영향은 차단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석헌 금감원장 역시 최근 국정감사에서 옵티머스 감독 부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사모펀드 전반을 다 들여다보기에 금감원 인력과 수단이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