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을 ‘왕의 남자’ vs 4당 연합군 누가 셀까
▲ 이재오 위원장. |
“은평 을의 이번 재보선 결과는 여야의 대리전이라는 상징성이 매우 큰 곳이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민주당 등 야권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거물급’ 인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이재오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 위원장과 야권 후보와의 경쟁은 여야의 대결 구도를 극명하게 보여주게 될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의미 부여도 훨씬 클 것이다.”
정치권의 한 선거전문가는 이번 7·28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 은평 을 지역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렸다. ‘왕의 남자’ 이재오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야권의 대항마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손학규 전 대표의 출마설이 나오고 있으나 손 전 대표의 ‘장고’가 계속되면서 최근 민주당에선 서울법대 조국 교수, MBC 신경민 기자에 이어 방송인 김제동 씨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등 당 밖에서 거물급 주자들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오 위원장이 나올 것에 대비해 은평 을 지역에 ‘반드시 당선 가능한’ 인물을 내세우겠다는 각오다. 지난 6·2 지방선거의 승리요인으로 ‘이명박 정권 심판론’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는 민주당은 이재오 위원장을 이길 경우 심판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와 18대 총선 때 이 지역의 투표 결과도 민주당의 자신감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6·2 지방선거에서 은평구청장은 민주당 김우영 후보(득표율 54.16%)가 한나라당 김도백 후보(40.83%)를 눌렀고, 은평구의 서울시장 득표율에서도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1만 표 가까운 높은 표차로 이겼다. 또 18대 총선에서는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52.02%)가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40.81%)를 이겨 파란을 일으킨 바 있기도 하다.
두 번의 선거결과만을 살펴본다면 이번 재보선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유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관건 중 하나는 ‘투표율’이 될 것이라는 전망.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보통 재·보궐 선거는 투표율이 30%를 넘기가 힘들 정도로 낮다. 특히 이번 재보선은 휴가철에 실시되기 때문에 투표율이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되며, 야당 성향의 젊은 유권자층이 투표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여기에 기존의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에선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기 때문에 야권에 대한 ‘역견제’ 심리가 발동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한나라당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이재오 위원장이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에게 패했듯이, 민주당에서 참신하고 대중성이 높은 ‘의외의’ 인물을 영입할 경우 2008년 총선 때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민주당 등 야4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국민참여당)이 이 위원장이 출마할 경우 야권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합의한 바 있어 6·2 지방선거 때의 위력적인 ‘단일화 바람’이 재보선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인천 계양 을은 대체로 민주당의 승리를 낙관하는 의견이 높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으로 당선된 송영길 당선자의 ‘텃밭 지역구’라는 점과 지방선거의 승세를 이번 재보선까지 이어갈 교두보라는 점에서 민주당 내에서도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두 차례의 선거 표심으로 나타난 지역 민심도 민주당에 유리한 상황. 6·2 지방선거에서 인천 계양구청장의 경우 민주당 박형우 후보(53.97%)가 한나라당 오성규 후보(32.22%)를 큰 표 차로 이긴 바 있고, 인천시장 선거에서도 계양구는 민주당 송영길 당선자가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를 인천 부평구에 이어 큰 표차로 이긴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송영길 당선자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46.09%의 득표율로 당시 한나라당 이상권 후보(41.14%)를 꺾은 바 있다. 송 당선자가 이 지역에서 지난 16대~18대까지 ‘3선’을 했을 정도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어 그의 뒤를 민주당 후보에게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인천은 이번 재보선에서 가장 자신 있는 지역구이다.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도 전폭적인 지지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지난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로 인천지역에 출마했었던 한 인사는 “인천은 안상수 시장 시절 재정악화가 심해졌다. 송도 신도시에 대한 민심도 좋지 않다. 여당 후보가 이번 재보선에서 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길 당선자 역시 최근 “선거 때만 해도 인천시 부채가 총 8조 원으로 예상된다고 비판했는데 알고 보니 올해 말 기준 9조 4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며 인천시의 심각한 재정상황에 대한 비판과 걱정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21일 인천 계양 을 후보로 이상권 변호사를 공천하기로 확정했다. 이상권 후보는 인천지검 부장검사를 거쳐 현재 인천 계양 을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인운하 조기 완공’을 주요 공약을 내걸고 있어 눈길을 끈다. 경인운하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와 계양 을 재보선을 통해 ‘경인운하 심판론’ 대결이 예상되는 대목. 일각에서는 ‘경인운하’ 찬반 논란이 이번 인천 계양 을 재보선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여론조사 관계자는 “인천 민심에는 경인운하를 통한 지역 개발을 원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경인운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다면 경인운하에 대해 찬성했다가 반대 의견으로 돌아선 송영길 당선자와 민주당 후보의 맞대응이 여론의 주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원권에서는 원주, 태백·영월·평창·정선,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 등 총 3곳에서 재보선이 열리게 된다. 세 곳 중 원주시만이 한나라당의 지역구였고 나머지 두 곳은 민주당의 지역구였던 곳이어서 한나라당으로선 세 곳 중 두 곳에서만 이겨도 성공했다는 자평을 할 수 있을 만하다. 하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한나라당에게 ‘반성’과 ‘긴장’을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계진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원주시의 경우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원창묵 후보가 47.22%의 득표율로 한나라당 원경묵 후보(34.71%)를 예상보다 쉽게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다. 더구나 도지사 선거에서도 원주시민들은 지역구 의원이었던 이계진 후보보다 민주당 이광재 당선자에게 더 많은 표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이광재 당선자 7만 966표, 이계진 후보 5만 8889표). 지난 18대 총선에서 당시 이계진 후보(65.93%)가 통합민주당 박우순 후보(20.92%)를 압도적 표차로 눌렀던 것을 감안하면 민심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KSOI 윤희웅 실장은 “검찰 수사로 당선 직후 직무정지를 당한 이광재 당선자에 대한 동정여론도 만만치 않아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이 또 한 번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 당선자는 법원으로부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도지사직 직무정지를 당한 상태다.
이광재 강원지사 당선자의 지역구였던 태백·영월·평창·정선의 경우에도 이번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의 선전이 눈에 띄었던 곳이다. 이광재 당선자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득표율 54.57%로 한나라당 최동규 후보(42.99%)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태백시장은 한나라당 김연식 후보가 당선되었으나 무소속 박종기 후보와의 표차가 500표 미만이었으며, 평창군·정선군의 경우 민주당 후보가 모두 승리한 바 있다(영월군수 박선규 한나라당 후보는 무투표 당선). 그러나 민주당 입장에선 영입에 공들였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불출마 의사를 밝힌 터라 지역민들에게 호감도 높은 인물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KSOI 윤희웅 실장은 “영월·평창·태백·정선 지역은 강원의 타 지역에 비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지역구 의원인 이광재 당선자에 대한 검찰 수사에 반감 여론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후보가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에 ‘전통적 텃밭’ 영남권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강원 지역에 더욱 ‘매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원 지역 세 곳 중 철원·화천·양구·인제의 경우 한나라당의 승산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분석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인제·화천·철원 군수 선거의 경우 각각 무소속 이기순 후보, 한나라당 정갑철 후보, 한나라당 정호조 후보가 당선되었고 양구 군수 역시 한나라당 전창범 후보가 무투표 당선되어 한나라당이 ‘노려볼 만한’ 지역이라는 평가다.
이들 지역은 강원도지사 투표에서도 타 지역과 달리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의 득표율이 우세해 눈길을 끈 곳이기도 하다. 철원군의 경우 모든 지역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으며 화천·양구·인제 역시 이광재 당선자보다 이계진 후보를 찍은 이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강원지역 여론은 ‘종잡기 힘든’ 것으로 분석된다. 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는 “강원도는 민심을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역이라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여당세가 강하면서도 여당에 대한 비판심리가 가장 강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청권 두 지역(충북 충주, 충남 천안 을)에서 치러지는 재보선의 경우 ‘세종시 이슈’가 여전히 여론을 움직일 화두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충주시의 경우 지난 18대 총선(통합민주당 이시종 후보 48.04%, 한나라당 윤진식 후보 46.09%)과 6·2 지방선거(민주당 우건도 후보 49.06%, 한나라당 김호복 후보 45.74%)에서 모두 민주당(통합민주당) 후보가 접전 끝에 이긴 바 있다. 충주가 지역구였던 이시종 전 의원이 지방선거에서 충북지사에 당선된 만큼 이번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에 다소 유리한 선거 구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상당수 선거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된 충주 출신의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총선에서 이시종 당선자를 상대로 선전(1500표 차 패배)한 바 있어 접전을 예상하는 전망도 적지 않다. 민주당 역시 충주 출신의 이인영 전 의원에게 출마를 권유했으나 이 전 의원이 고사하고 있어 후보군 확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충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영호남에 비해 지역색은 약하지만 충주 여론도 지역 출신에 대한 호감이 강한 편”이라며 “결국 인물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충남 천안 을의 경우 현지에서 영향력이 큰 이완구 전 충남지사의 출마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지사는 자유선진당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42.80%)가 한나라당 김호연 후보(35.79%)를 누르고 당선된 지역.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의원직을 내놓고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박상돈 전 의원의 낙마로 자유선진당이 ‘탈환’을 노리는 곳이다. 6·2 지방선거 당시 천안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성무용 후보(37.44%)가 자유선진당 구본영 후보(32.86%)를 꺾고 ‘3선’에 성공한 바 있어 양당 후보의 각축전이 또 한 번 예상된다.
세종시 수정 논란으로 민심이 들끓었던 지역인 만큼 국회의 세종시 수정안 처리 결과에 따라 천안 민심 또한 또 한 차례 파도를 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세종시 원안 지지를 표방해온 선진당 등 야권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지만 일각에서는 세종시 문제가 한나라당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에서 수정안이 폐기될 경우 지역 개발을 원하는 민심이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출될 수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호남권의 유일한 재보선 지역인 광주 남구의 경우 민주당의 텃밭인 만큼 당 안팎 인사들의 공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강운태 광주시장 당선자가 6·2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궐석이 된 곳. 지난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출마한 강운태 후보(59.43%)가 통합민주당 지병문 후보(31.44%)를 이긴 바 있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광주 지역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 주류, 비주류가 크게 충돌한 전례가 있어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번 재보선에서도 무소속 출마 러시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민주당에선 지병문 전 의원, 이윤정 당 광주남구지역위원장, 정기남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등이 후보등록을 마친 상황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재보선 이후 전당대회가 열리는 만큼 이번 광주 지역 재보선은 당내 계파 갈등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는 차기 지도부 구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