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지세대 못 잡으면 ‘대권 문’도 닫힌다
▲ 지방선거 이후 검지세대로 대변되는 젊은 층의 정치 참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친박 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들의 표심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합성. |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지지율 1위는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지지율은 올해 1월 40%대에서 처음 30%대로 떨어진 뒤 3월에 20%대로 첫 추락했고, 최근에는 25% 정도의 ‘부진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율은 15~18%로 역대 정치인 가운데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의 득표율은 14%에 이르렀음). 이런 점에서 보면 25%라는 지지율은 거의 마니아 지지층만 남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제 박 전 대표에게는 그의 ‘인물’만 보고 ‘묻지마 투표’를 할 열혈 지지층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1위라는 성적도 그 ‘내용’을 보면 더 악성이다. 세종시 여파로 수도권 지지율은 호남권과 비슷할 정도로 떨어졌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의 지지율이 평균을 훨씬 밑돌고 있다. 그를 지금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주축 집단은 대구·경북과 충청 지역 50대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예상외의 참패를 당한 가장 큰 요인은 젊은 층의 ‘투표 반란’이었다. 특히 20대의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그 표들이 대거 야당으로 흡수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지방선거 결과를 박 전 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 ‘내용’에 대입해보면 2012년 대선의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과 같다. 젊은 층의 새로운 코드와 문화를 그의 리더십에 적용시키지 못하면 ‘대선 필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박 전 대표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현재 리더십은 여전히 ‘오만·불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심지어 친박 내부에서도 ‘대표 추대론’이 나오는 과정에서 오만·불통 리더십 주장이 불거지기도 하는 등 이 문제는 점점 수위가 높아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에 대해 “한국에서는 정책내용에 대한 평가보다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선거경쟁의 중심이 되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과도한 권력집중(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반작용’이 바로 이번 지방선거의 민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여야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이 대통령의 오만한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꾸짖음”이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마에 낙인찍힌 ‘오만한 리더십’의 주홍글씨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그대로 오버랩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부소장은 이에 대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보였고, 지난 정부에서도 확인된 사실 중 하나는 대중들이 지도자의 독선만큼은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는 오만, 요지부동 밀어붙이는 독선, 다른 사람은 말도 못하게 하는 강압 등에 대해선 어김없이 ‘투표 짱돌’(paper stone)을 던졌다.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 박 전 대표가 바로 이런 독선의 리더십 행태를 보여준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여론이 적지 않다. 이것이 그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에게 세종시와 4대강은 정권 존립에 관한 대표적 정책이다. 이를 같은 여당의 전임 대표가 ‘죽어라고’ 막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대화가 없는 일방적 반대가 ‘오만’으로 비쳐지는 게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6·2 지방선거가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한 권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의 표출이었다고 할 때, 박 전 대표의 오만한 리더십도 향후 선거에서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친박 진영의 한 전략 관계자는 “정치만큼 ‘언행일치’의 가치가 중요한 곳도 없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이 같은 정치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정책에 대한 비협조가 본질이 아니라 언행일치를 충실히 따르는 게 박 전 대표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내부의 진단과는 사뭇 다른 외부의 시선과 평가다. 그런 점에서 ‘오만’과 함께 ‘불통’의 리더십 이미지는 박 전 대표를 더욱 곤혹스럽게 할지 모른다. 앞서의 이철희 부소장은 “특히 주목할 것은 20~30대의 정서다. 선거에서 이들이 화를 낸 이유는 한마디로 답답함 때문이다. 예컨대 김제동 논란에서 보듯,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세대고, 감성세대다. 또 독선과 위계를 싫어하고 공존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세대다. 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이 갖는 한계는 분명하다”라고 주장한다.
청와대는 지방선거 참패 뒤 즉시 온라인 커뮤니케이터직을 신설했다. 이번 선거가 젊은 층의 ‘트위터’ 커뮤니케이션 중심으로 여론이 빠르게 형성·전파된 것이 여당의 예상치 못한 참패로 이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새로운 투표 트렌드에서 ‘박근혜의 리더십 좌표’는 어디쯤 있을까. 과연 박 전 대표는 젊은 층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을까. 그의 ‘소통’ 능력은 광속으로 움직이는 젊은 층의 여론 형성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박 전 대표는 몇 년 전부터 싸이월드를 통해 젊은 층과 소통을 하고 있다. 정치인으로선 거의 원조에 해당하는 싸이월드 애용자다. 하지만 싸이월드는 ‘박사모’ 중심의 일촌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폐쇄성이 단점으로 통한다. 반면 트위터는 실시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금세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개방성이 트위터의 묘미다. ‘격식’과 ‘일촌’에 얽매인 박 전 대표로서는 쉽게 자신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드러내는 트위터식의 소통 구조에 익숙해지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개설만 해놓고 팔로워(follower·트위터 친구 등록자)들과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서 보듯 기성세대 전반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박 전 대표는 아직 트위터를 개설하진 않았지만 보좌진 등을 통해 스마트폰의 기능과 트위터 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트위터가 쌍방향의 즉흥적인 단문 메시지 문화라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진솔하게 ‘베일’을 벗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의 소통 방식을 보면 전근대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박 전 대표는 세종시 전쟁을 통해 비타협적이고 권위적인 리더십을 노정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여기에는 ‘약속’과 ‘신뢰’를 지키기 위한 원칙주의자라는 긍정적 해석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측근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보면 이것이 광속 같은 모바일 정치시대의 여론형성 시스템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정치인 가운데 가장 친해지기 힘든 사람으로 통한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형식과 격식에 워낙 익숙해져 있는 스타일이라 쉽게 친해지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박 전 대표의 소통 방식이 너무 권위적이고 ‘엄숙’해 상대가 주눅이 들어 제대로 ‘통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의 소장파 측근들은 항상 박 전 대표 앞에선 긴장하고 말조심을 한다.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한 측근은 “회의 등을 하면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의견을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하기 때문에 참석자들도 ‘추종’할 뿐 자유롭게 그에 대한 반대의견을 내지 못하는, 일종의 ‘금단의 성’ 같은 것을 느낀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한 원희룡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의 대표였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어떤 회의에서 누가 원칙적인 의견을 개진하면 박 대표는 ‘그러면 다른 분들과 의논해 달라’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놔 달라’라며 완성도 높은 대안을 제시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뭔가를 주장하기 어렵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조정하면서 나아가게 해주는 게 당내 리더십 역할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표 측근들에 따르면 최근 들어 박 전 대표에게 리더십이나 스킨십 부족을 지적하거나 이의를 다는 의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만날 약속을 하지 않고선 접촉할 수 없으니 만남의 기회도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정해 놓은 원칙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박 전 대표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 평소 계파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측근정치도 멀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믿었던 심복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았던 교훈을 박 전 대표가 뼛속깊이 새기고 있기에 향후 그의 측근 배제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치지형의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은 검지세대(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세대를 가리킴)로 대변되는 젊은 층의 정치 참여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들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현재 소장파 중심의 쇄신작업과 세대교체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도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당연한 대응책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표에게 검지세대의 의미는 어떻게 다가올까. 친박 진영 일각에서 박 전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표직 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 유용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검지세대의 표심을 박 전 대표도 당장 수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렇지 않고 마냥 대선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다가는 자칫 급변한 모바일 시대에서 영원한 미아로 떨어져 대선 승리의 대의마저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지구의 1인자에서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고 멸망한, 느린 공룡처럼.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