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의 대가’ 룸 하나로 강남 유흥가 평정하다
경찰수사 결과 이 씨는 그동안 ‘바지사장’을 내세워 불법 영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이중장부를 만들어 수익을 은닉하고 차명계좌를 통해 수익을 분산 관리하는 등 자신의 실체를 철저히 감춰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경찰과 유착해 단속을 피해온 정황도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북창동 삐끼에서 시작해 5년 만에 유흥업계 대부가 된 이 씨. <일요신문>은 이 씨가 서울에 상경한 후부터 줄곧 그를 지켜본 최측근 A 씨를 통해 그의 인생 스토리 및 실체를 들어봤다.
대출로 산 외제차 한 대. 이 씨가 5년 전 가졌던 전 재산이다. 그는 이 외제차 한 대로 5년 후 한 달 매출 50억 원에 달하는 유흥업소 13곳과 강남 일대 노른자위 아파트 세 채를 살 정도의 큰손으로 성장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월급 100만 원 안팎을 받는 북창동 삐끼였던 그가 어떻게 급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씨는 전북 모 지방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로 상경해 북창동 삐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 씨의 측근인 A 씨에 따르면 대학시절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언변이 뛰어났던 그는 호객꾼으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손님을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장점을 잘 활용해 호객꾼에서 금방 자신의 손님을 직접 관리하는 영업상무 자리에 올랐다.
북창동에서 유흥업계 생리를 익힌 그는 곧 북창동을 떠나 강남 유흥업계로 손을 뻗쳤다. 업계의 흐름대로라면 보통 성업 중인 업소에 스카우트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는 ‘러브콜’이 들어온 업소 중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대출을 받아 고가의 외제차 한 대를 구입했다.
그가 외제차를 몰고 처음 찾아간 곳은 강남 신사동에 위치했지만 매출이 부진한 한 유흥업소였다. 그는 업주를 만나 거래를 제안했다. 가게에 방 한 곳만 내 준다면 몇 달 사이에 그 방에 자신의 손님을 끌어 모아 매출을 배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업주로서는 밑져야 본전 격인 제안이었다. 장사가 안 되는 가게에 알아서 영업을 뛰겠다고 하니 잘 되든 못 되든 딱히 손해 볼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조건을 거는 것이 현금이 아닌 방 하나였기에 당장 비용이 드는 일도 아니었다.
업주는 이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 씨는 약속대로 호객꾼 시절부터 자신이 관리했던 손님들을 해당업소에 데려와 매출을 두세 배로 올려줬다. 영업이 잘 될 때마다 그는 차츰 가게의 방 하나를 더 줄 것을 제안했고, 얼마 가지 않아 업소 방 전체를 관리하게 됐다. 이 씨는 자연스레 가게의 지분을 나눠가지는 동업관계를 제안했고, 유흥업소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첫 시도가 성공하자 그는 강남 내 유흥업소 중 매출이 부진한 곳을 타깃으로 잡아 같은 식으로 접근했다. 다른 업주 역시 그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이 씨는 자신이 실질적인 업주가 아니기에 영업방식도 대담하게 정했다. 유사 성매매, 구강성교 등 불법적인 시스템에서부터 란제리 쇼, 풀살롱, 매직미러까지 손님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들을 도입해 소위 업계 내에서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는 사이 이 씨의 몸값도 차츰 높아졌다. 업계 주변에서는 그에게 투자하면 떼돈을 번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스폰서들도 몰려 들었다.
영업상무들도 성업 중인 유흥업소가 아닌 그의 밑에서 일하기를 희망했다. 그가 일하는 곳이 바로 ‘대박가게’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업주들은 그에게 먼저 찾아와 영업을 부탁했고 지분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 씨의 욕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는 자신의 영업방식이 먹혀들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분을 가진 가게들의 매출액이 한 해 수십억 원에 이르고 스폰서들이 속속 나타나자 동업관계라 지칭하던 기존 업주들의 지분까지 모조리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렇게 그는 초기 투자금 한 푼 없이 강남 일대 유흥업소 여러 곳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물론 ‘바지사장’을 내세워 자신이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업주들은 그때서야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일이 자신의 가게를 그에게 손쉽게 넘겨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음을 깨닫게 됐다.
이 씨가 유흥업계 내 밤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불만도 생겨났다. A 씨는 “그는 2인자가 생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주변에 동종 업소가 생기면 영업 방식과 서비스를 조사한 후에 그 영업방식을 가게에 도입해서 가격을 반으로 깎아 버렸다. 그런 식으로 손님을 빼앗아 강남 일대에 자신의 업소만 남게끔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밤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바로 이 같은 행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불법 영업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음에도 지난 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다. 모든 수익을 차명계좌로 관리하고 ‘바지사장’을 내세웠기 때문에 경찰 단속에 걸리더라도 그는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이 씨를 둘러싸고 유흥업계 주변에서는 그가 강력한 배후세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평소 ‘관 처리’가 뛰어나다고 소문 난 그를 둘러싼 일화들도 전설처럼 퍼졌다.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설부터 정·재계 인사가 그의 투자자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소문뿐이지만 이 때문에 그가 구속됐음에도 여전히 유흥업계 내에서는 이 씨가 무사히 풀려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하다.
동종업계에 일하고 있는 B 씨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맥은 경찰과 검찰을 아우른다. 그가 보유한 고객들만 해도 실세들이 많다”며 “지금은 누구도 이 씨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잘못 누설하면 업계를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평생 쫓겨 다녀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 씨 역시 구속됐음에도 당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30일 기자와 통화한 서울지방경찰청 폭력계 관계자는 “이 씨는 변호사를 다섯 명 선임해 수사과정에 딴죽을 놓는가 하면 주변인들을 매수해 그가 업소의 실질직인 업주라고 자백하게 만드는 등 수사에 혼란을 주고 있다”며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는 42억 원 탈세뿐이지만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여죄가 더 드러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