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국회를 졸로 보는 것” vs 경호처 “원내대표 검색 면제 대상 아냐”…사과·수용으로 마무리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과 국정 운영 방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한 뒤 퇴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나라가 왜이래!’라고 적힌 종이를 들어 보이며 시위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10월 28일 국회에선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시정연설이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며 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국회를 직접 방문해 국정 전반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예산 편성 관련 정책적 사항을 말하는 행사다. 보통 시정연설 직전 대통령과 여야 당 대표, 원내대표 간 간담회가 이뤄진다.
이번 시정연설은 시작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시정연설에 앞선 대통령과의 간담회에 불참한 까닭이었다.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에 대한 특검을 거부하자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불참을 결정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김 위원장은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특검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한 항의 표시로 문 대통령과의 사전 간담회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종인 위원장이 빠졌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당을 대표해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사전 환담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마저도 순조롭지 않았다. 환담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경호팀이 주 원내대표 몸수색을 강행하며 시비가 붙었다. 주 원내대표는 바로 발길을 돌렸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청와대가 의사당 내에서 야당 원내대표의 접근조차 막는 것인가. 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 원내정당 지도자를 만나러 온 대통령의 목적을 잊었나. 국회의사당 내에서 야당 원내대표의 신체 수색을 강압적으로 하는 것은 의회에 대한 노골적 모욕”이라며 “대통령은 협치를 말하면서 경호팀은 의사당 내에서 야당 원내대표 신체수색을 거칠게 하는 나라, 야당 원내대표의 간담회 접근에도 ‘문리장성’이고 ‘재인산성’인가”라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YTN 라디오에 출연해 “내가 원내수석부대표를 할 때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단 한 번도 몸수색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주인이 손님을 맞으러 가는데 손님 측에서 주인을 검색한다? 이게 말이 되나. 국회를 완전히 밑에 졸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시정연설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시정연설 시작에 앞서 “야당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철저히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합당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대에 선 이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고성은 멈추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박병석 의장을 바라봤다. 이에 박 의장은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먼저 드린다”며 “대통령 시정연설을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당도 예의를 갖춰 달라”고 했다. 이윽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을 멈췄고 시정연설은 시작됐다.
청와대 대통령 경호처는 주호영 원내대표 몸수색에 대해 해명하며 유감의 뜻을 표했다. 대통령 경호처는 “경호업무지침에 따르면 외부 행사장 참석자에 대해선 전원 검색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회 행사의 경우 청와대 본관 행사 기준을 준용해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 및 정당 대표 등에 대해서는 검색을 면제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어 “원내대표는 검색 면제 대상이 아니다. 원내대표가 당 대표와 동반 출입하는 경우 등 경호 환경에 따라선 관례상 검색 면제를 실시해왔다. 하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홀로 환담장에 도착했다”면서도 “경호처장이 ‘현장 경호 검색요원이 융통성을 발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유감을 표했다”고 덧붙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0월 29일 “의전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에 대단히 죄송하다”는 대통령 경호처의 사과를 받았으며 이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경호처는 시정연설이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 권총 등으로 무장한 청와대 경호원을 다수 배치했었다고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0월 30일 “국회 경호과에 따르면 권총으로 무장한 청와대 경호처 요원 5~6명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 본회의장안으로 진입했다”며 “청와대 경호처가 제1야당 원내대표 몸수색으로 수치를 안긴 뒤 무장요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직행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시정연설 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피켓 시위를 벌였다. 문 대통령이 입장하는 국회의사당 로텐더홀 계단에 서서 ‘이게 나라냐!’, ‘나라가 왜 이래!’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었다. “특검법을 수용하라”, “특검으로 진실규명 대통령은 수용하라”, “국민의 요구 특검법 당장 수용하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