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파’로 한반도 문제 전문성 발휘 기대…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숨통 트일 전망
2011년 8월 11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청와대를 찾았던 조 바이든 후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
바이든 후보와 한국의 인연은 1980년부터 시작됐다. 바이든 후보는 당시 미국으로 망명해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친분을 쌓았다. 세기가 바뀌고 2001년 8월 바이든 후보는 미국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 대통령은 DJ였다. 바이든 후보는 청와대를 방문해 DJ와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 후보와 DJ는 넥타이를 바꿔맬 정도로 친분을 과시했다.
2013년 12월 바이든 후보는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바이든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중국)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는 외교적 메시지를 전해 화제를 모았다. 이런 발언은 전통적 동맹체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정세 안정을 꾀하는 바이든 후보의 2020 미국 대선 외교 정책 기조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앞서 언급한 방한 사례를 제외하고도 바이든 후보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 입성을 확정지을 경우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분담금 협상, 주한미군 철수 이슈 등 산적한 안보 이슈를 풀어나갈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군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안보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주한미군 주둔비에 대한 임시액이 결정되지 않아 임시비용으로 주둔비가 충당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분담금을 올리려는 가운데, 한미 당국의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속도가 날 수 있다고 점쳤다. 주한미군 감축·철수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 동맹을 강조하는 바이든 후보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섣불리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 분담금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 주한미군의 필요성 자체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전략을 써 왔다”면서 “그러나 바이든 후보의 경우엔 외교관계를 돈의 가치로 치환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선 튼튼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실익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다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협력 정책에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바이든 후보가 한반도 문제에 있어 강력한 대북제재를 바탕으로 ‘전략적 인내’ 방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재현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대북 정책에 있어선 바이든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엇박자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경제적으로 보면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이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외교 라인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면서 “바이든 후보는 ‘바텀업 방식’ 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여기다 6자회담을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채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 평화 정책 추진 속도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엔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3차례나 만났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이런 드라마틱한 장면이 재현되긴 쉽지 않다. 대북 평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다소 속이 타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이어 채 연구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안보·통일 라인 유지 여부를 두고 고민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