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서 목소리 잃은 순천댁 역할…“과거 부상으로 ‘연기 인생 끝났다’ 좌절했지만 스스로 극복”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배우 이정은은 사고로 목소리를 잃었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묵묵하게 보여주는 순천댁을 맡았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공
인생은 당신의 생각보다 길고, 그 긴 인생 속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므로 자신의 다리로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내가 죽던 날’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극 중 이정은은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순천댁으로 분해 삶의 고통에 직면한 이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의 등에 힘을 실어준다. 무작정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는 것보다 다리에 힘이 붙을 때까지만 기다려주는 목발 같은 위로를 전하는 셈이다. 이 역시 자신의 경험에서 기인했다고 이정은은 말했다.
“공연으로 부상을 입었을 때 다시 공연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망감이 굉장히 컸어요. 무대에 못 서게 된다면 연기 인생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또 제가 혼자 살다 보니 병원에 혼자 가는 게 숙명인 거예요. 결혼도 안 했는데 누가 날 병원에 데리고 다니겠어요(웃음). 그래서 혼자서 진짜 열심히 다녔어요, 일주일에 세 번씩. 그랬더니 몸도 나아지고 정신도 맑아지더라고요. 그때 ‘왜 나는 누구한테 자꾸 기댈 생각만 했을까? 인생이 긴데, 자기가 자길 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날 돌봐주는 사람이 없지?’ 하면서 정신적인 기대감만 가지고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용기를 내야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거죠.”
배우와 관객이 서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영화 ‘내가 죽던 날’은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과 배우들이 대부분 여성이어서 작품 외적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여성들이 만드는 여성 서사가 가진 특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은 요즘 세상에 너무 식상할 수밖에 없다. 이정은 역시 ‘여자들이 모여서’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특별함을 느낀 일은 딱히 없었다고 설명했다.
‘내가 죽던 날’에서 첫 호흡을 맞춘 김혜수와 인연은 2000년대 초반 시작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공
이번 작품에서 이정은은 김혜수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지만, 이들 인연의 시작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극 ‘타임 플라이즈’ 공연 연습을 보러 왔던 김혜수가 자신이 작품 활동을 하며 모아 놓은 소품과 의상을 연극 팀에 모두 빌려준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고 했다.
“그때 정말 ‘와, 저 사람 되게 호탕하고 멋있다. 스타인데도 연극도 좋아하나 보다’ 싶었죠(웃음). 그 뒤에도 제 공연에 몇 번 왔는데 그때마다 너무 잘 봤다는 말을 해주고, 또 다음 작품에 쓸 수 있는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또 서포트 해주는 거예요. 연극영화계 인재 등용에 아주 크게 이바지하는 사람이었던 거죠(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김혜수 씨가 얼마나 연기를 심도 있게 생각하는지, 영화 작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것 같았어요.”
김혜수를 ‘스타’로 추억한 이정은 역시 전작인 ‘기생충’을 통해 대중에게 강렬한 한 방을 날린 참이었다. 영화의 분위기 반전의 기점 역할을 했던 가정부 ‘문광’ 역으로 쉽게 잊히지 않는 캐릭터 성을 확립했던 이정은은, ‘기생충’의 흥행 당시 상황이 여전히 잘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영화계를 초토화시킨 지금에 와서는 더욱 꿈결처럼 느껴진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일상으로 돌아왔기에, 꿈 같은 행운에 안주하고만 있지 말고 언젠가 물러날 때를 가슴에 안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옛날엔 ‘배우라면 아카데미 정도는 갔다 와야지’ 이런 헛소리 하고 그랬는데(웃음). 막상 이뤄지니까 어떤 감흥이 있다는 말보단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제가 너무 잘된 것 같더라고요. 누구는 저보고 욕심이 없다 그러고, 제 친한 후배는 ‘혹시라도 언니가 내려온다고 생각할 땐 우아하게 내려와, 지질하게 말고’ 그랬는데 사실 그런 게 두려워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인생이 내가 원한다고 위에 가 있고 또 떨어지고 그런 게 아니라 행운처럼 왔다 가는 거잖아요. 예전에 이준익 감독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넌 그래도 다행이다, 젊지 않아서 기고만장은 안 하겠다’고(웃음). 운이 좋은 사람 옆에 딱 붙어 있으면 실패할 일은 없대요. 저는 이런 식으로 길게 남는 법을 알게 됐어요(웃음).”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강렬한 이미지 탓에 보통 사람의 연기가 잘 상상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사진=‘내가 죽던 날’ 스틸컷
“‘기생충’ 전에 했던 작품에서는 ‘근데 재봉틀 틀던 아줌마는 누구야?’ 하면서 저한테 평범하다고 그랬는데(웃음). 어쨌든 지금은 눈에 띄는 배우가 됐지만, 보통 사람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그 말은 작품 속에 더 잘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어요. 잔재주를 부리지 말라는 것. 예전에 모 감독님과 작품을 찍을 때 ‘연기하지 마시고 그냥 가만히 계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하면 쿠세(배우들의 연기에 붙는 특징 또는 버릇)가 붙고 과도한 제스처로 캐릭터가 왜곡될 수 있으니 존재만으로 편안할 수 있는 배우가 되란 말씀이었어요. 그 말씀이 제게는 살이 되는 것 같아요.”
겸손하게 말했어도 이정은에게는 데뷔 30년 차의 관록이 묻어났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넘어 이제는 드라마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새겨가고 있는 그는, 이제 막 연기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힘과 위로를 실어주고 싶다고 했다. 기회가 오지 않을 때 쉽게 자신을 탓하지 말 것. 언젠가 너를 알아주는 사람이 반드시 네 진가를 찾아내 줄 것을 잊지 말라는 게 이정은이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문학적 소양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문학 외의 매체가 많이 발달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이전 세대에 비해 월등하다고 생각해요. 자기표현은 책만 많이 읽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솔직함이 투영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표현이 뚜렷한 아이들이 많다 보니 예전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텐데, 제가 이 길을 걸어오면서 도움이 됐던 조언들 중에 ‘너한테 어떤 역할이 오지 않을 때 그건 네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미지를 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러니 몇 번으로 포기하지 말고 더 많이 도전해서 여러 색깔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발휘되는 순간이 꼭 올 테니까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