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빼닮은 ‘커맨더 인 치프’ 재조명…드라마 ‘24’ 오바마 당선에 영향 미쳤다는 분석
이보다 앞선 1995년 개봉한 ‘대통령의 연인’에선 매우 로맨틱한, 그렇지만 용기 있는 대통령 앤드류 쉐퍼드(마이클 더글러스 분)가 많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할리우드 영화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경향이 두드러져 왔는데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1990년대에는 더욱 강한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가 할리우드 영화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당시는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 재임 시절(1993~2001년)이었다.
2008년 영화 사이트 ‘무비폰닷컴’이 실시한 최고의 대통령상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에어포스 원’의 해리슨 포드(왼쪽)가 1위, ‘딥 임팩트’의 모건 프러먼이 2위에 올랐다. 사진=영화 ‘에어포스원’ ‘딥 임팩트’ 스틸 컷
문제는 미국 정치지형의 변화다. 우선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90년대 후반 ‘르윈스키 게이트’에 휘말린다. 탄핵 위기에 몰렸지만 상원에서 기각돼 겨우 임기를 끝까지 마친 클린턴의 모습을 보며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과 전세계인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43대 대통령인 조지 부시 2세 재임 시절(2001~2009년)을 거치며 강한 미국 대통령의 이미지는 할리우드에서 거의 사라진다.
더 이상 미국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히어로가 아니다. 2013년에는 백악관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는 영화 두 편이 개봉한다. 바로 ‘화이트 하우스 다운’과 ‘백악관 최후의 날’이다. 두 영화에서 미국 대통령은 끝까지 용기는 잃지 않지만 테러리스트와 맞짱을 뜬 ‘에어포스 원’의 제임스 마샬 대통령(해리슨 포드 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대통령 역할은 주연도 아니며 당연히 주연 배우가 대통령을 구한다. 3년 뒤 개봉한 ‘런던 해즈 폴른’에서도 마찬가지다.
2016년에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도 이런 변화가 느껴진다. 전편의 강한 대통령 토마스 J. 휘트모어(빌 풀만 분)이 또 출연하지만 이젠 전직 대통령이고 현직 대통령 엘리자베스 랜포드(셀라 워드 분)는 외계인과의 전쟁에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다. 애담스 장군(윌리엄 피츠너 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지만 그 역시 전편의 휘트모어 대통령만큼 강력한 히어로 캐릭터는 아니다.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재임 시절(2017~현재)을 거친 뒤에는 미국 대통령이 영화에서 희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아직 할리우드 영화까진 아니지만 한국 영화지만 ‘강철비2: 정상회담’ 속 미국 대통령 캐릭터는 이미 희화화돼 있다.
트럼프 이후에는 미국 대통령이 영화에서 희화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아직 할리우드 영화까진 아니지만 한국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속 미국 대통령 캐릭터는 이미 희화화돼 있다. 사진=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스틸 컷
미국의 44대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2009~2017년 재임)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미국 사회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등장한 것은 2009년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흑인 대통령이 존재해왔다. 단편영화는 1933년작 ‘루퍼스 존스를 대통령으로’, 장편영화는 1972년작 ‘더 맨’이 최초로 알려져 있다. 가장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1998년 영화 ‘딥 임팩트’의 톰 벡 대통령(모건 프리먼 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영화사이트 ‘무비폰닷컴’이 실시한 최고의 대통령상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딥 임팩트’의 모건 프러먼은 ‘에어포스 원’의 해리슨 포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 흑인 대통령은 자주 등장한다.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2001년 미국 FOX에서 방영한 드라마 ‘24’의 데이비드 팔머 대통령(데니스 헤이스버트 분)이다. 부드러운 성격과 지적인 카리스마, 좋은 목소리와 열성적인 연설 능력, 가정적인 이미지 등을 고루 갖춘 데이비드 팔머 대통령의 이미지가 오바마 대통령과 유사했다. 드라마 ‘24’ 속 데이비드 팔머 대통령의 이미지가 훗날 오바마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을 제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돼 결국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는 미국 정치 분석가들도 있다.
드라마 ‘24’의 데이비드 팔머 대통령(데니스 헤이스버트 분)은 부드러운 성격과 지적인 카리스마, 좋은 목소리와 열성적인 연설 능력, 가정적인 이미지 등이 오바마 대통령과 유사하다. 드라마 ‘24’ 화면 캡처
현재 조 바이든이 당선된 가운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에게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으로 역시 할리우드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 부통령이 등장해왔다. 앞서 언급한 1997년 영화 ‘에어포스 원’의 케스린 베넷 부통령(글렌 클로즈) 역시 여성이었다.
A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커맨더 인 치프’의 주인공은 매캔지 앨런(지나 데이비스 분)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유사점이 많다. 사진=‘커맨더 인 치프’ 스틸 컷
많은 부분이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을 닮았다.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 역시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 출신으로 흑인 여성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이 됐고 2016년 캘리포니아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고령이라 재선을 포기하고 다음 대선에 부통령인 해리스가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커맨더 인 치프’가 첫 방송된 2005년 미국 정가에서는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의 출마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힐러리의 사전 선거운동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힐러리는 민주당 후보가 되지 못했다. 만약 해리스가 다음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경우 이미 20년여 전에 방영한 ‘커맨더 인 치프’가 다시 한 번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