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블랙리스트 물타기 하십니까’
그런데 문제의 ‘출연 금지 명단’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KBS가 밝힌 기준에 해당되지만 빠진 연예인이 여럿인데다, 출연 금지 기간도 명확치 않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 심지어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된 명단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열여덟 명 모두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예인들로 대부분 MBC와 SBS에서도 출연이 금지된 이들이다. 이경영과 송영창의 경우 영화를 통해서 연기 활동을 재개했지만 아직까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다.
KBS는 이들에 대한 출연 금지 근거로 KBS 심사위원회 제6조 ‘방송출연 규제 및 규제해제’ 1항을 들고 있다. KBS 홍보팀 관계자는 “심의실 내 방송출연 규제 심사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위법 또는 비도덕적 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 또는 일반인의 방송출연을 규제할 수 있다”며 “위법 또는 비도덕적 행위(병역기피, 습관성 의약품 사용 및 대마초 흡연, 사기·절도·도박, 폭행 및 성추문,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 등)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열여덟 명의 출연 금지 연예인과 비슷한 상황으로 방송에 출연을 못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명단에서 빠진 이들이 여럿이라는 점이다. 우선 역시 상습도박으로 처벌받은 가수 신혜성의 이름이 없다. 다만 이상민과 강병규가 도박 관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 받은 데 반해 신혜성은 벌금형이었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가장 최근에 발생한 도박 관련 사건 연루자임에도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또한 신혜성과 비슷한 시기에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개그맨 김준호는 6개월여 만에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컴백해 현재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 출연하고 있다. KBS는 또한 지난 2005년 11월 도박 혐의로 방송에서 하차한 신정환을 4개월여 만에 KBS 2TV <상상플러스>로 복귀시키는 등 도박 연예인에게 관대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대마초 관련 혐의로 구설수에 오른 연예인 가운데에는 박선주와 김지훈이 빠졌다. 특히 김지훈의 경우 지난 2009년 7월 엑스터시를 투약하고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지훈은 지난 2005년에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바 있어 재범임에도 KBS 출연 금지 명단에는 오르지 않았다.
폭행 및 음주 관련사고 관련자 대다수도 이름이 빠졌다. 최근에 벌어진 최철호의 경우 심의할 시간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음주 폭행 사건에 이어 음주 뺑소니 이후 도피 사건에도 연루된 슈퍼주니어의 강인을 비롯해 룸살롱 폭행 사건 이후 방송 활동을 중단한 이혁재 역시 출연 금지 명단에 없다.
폭행과 마찬가지로 병역기피 역시 출연 금지 사안이지만 병역기피 혐의에 연루된 다수의 연예인들 역시 출연 금지 목록에 이름이 올라있지 않다.
또한 성추문에 연루된 연예인들 가운데에도 황수정과 옥소리의 이름이 빠져 있다. 마약류 복용과 간통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황수정의 경우 이미 SBS를 통해 방송 복귀는 했지만 KBS와 MBC에선 여전히 얼굴을 볼 수 없다. SBS의 경우 별도의 출연 금지 명단이 없는 상황에서 사안과 사규에 따라 출연하고 있거나 출연 예정에 있는 연예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방송출연심의위원회가 심의하고 있다. 황수정의 경우 SBS 방송출연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 드라마에 출연한 것. 반면 KBS는 출연 금지 명단이 있고 MBC는 공영방송인 KBS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대체적으로 따르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KBS와 MBC에 출연하지 못하는 물의 연예인이 SBS를 통해 컴백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왔다.
이처럼 KBS가 밝힌 출연 금지 명단에서 다양한 허점이 드러나면서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부분과 출연 허용 시점이 불분명하다는 부분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인기가 있어 시청률 상승에 도움이 된다면 사안의 중대성과 출연 금지 기간에 관계없이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고 있어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연예인의 경우 한 번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지워지기 힘들 수 있다는 지적이 많은 것. 심지어 출연 금지 명단이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급조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KBS 심의실의 한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심사위원회에서 다수결로 결정하는 데 심의위원들의 생각이 각기 다르고 그때그때의 상황도 고려하다 보니 판단이 달라지기 마련”이라며 “판사에 따라 판결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혁재와 강인 등이 연루된 폭행 사건은 당시의 특별한 상황이 있을 수 있어 출연 금지 명단에 올리기보단 제작진의 자율에 맡긴다고 한다. 심의실 관계자는 “누구나 지탄하는 연예인의 경우 이의 없이 출연을 금지시키지만 이의가 있는 사안은 유의해야 한다”면서 “출연 금지는 사실상 연예인의 직업 생명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하려 하는데 가급적이면 출연 금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대신 제작진의 자율 의지에 맡기려 한다”고 대답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