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캐릭터 맡아 처절한 소시민 모습 부각…2년 미뤄진 개봉 “살붙이 같은 작품 그저 기다렸을 뿐”
부산 사투리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 정우. 25일 개봉하는 ‘이웃사촌’에서도 부산 사투리 캐릭터를 맡았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이처럼 좋은 긴장감으로 연기에 임해 오던 정우에게 25일 개봉하는 작품 ‘이웃사촌’은 꽤나 큰 부담이었다. 그가 이제까지 맡아 왔던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큰 감정의 진폭을 가진 캐릭터가 ‘이웃사촌’의 유대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닫기 일보 직전인 도청팀의 팀장으로 발령받은 대권은 정부가 적대시하는 야권 인사 이의식(오달수 분)을 도청하기 위해 그의 옆집으로 이사한 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빨갱이’를 처단해야 할 존재 정도로 치부하며 강한 적개심을 보였으나 점차 의식에게 감화되면서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그런 감정을 ‘오버’하지 않고,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변화에 올라탈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이번 작품에서 가장 어렵고 부담스러운 지점이었다는 게 정우의 이야기다.
“작품을 겨울에 찍어서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물론 있었지만 감정적인 그런 신이 너무 많다 보니 그런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그런 고민이 많았죠. 감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신이라든지 압박감이 오는 신들이 있으면 그저 허들을 뛰어넘듯이 뛰어넘은 것 같아요. 그런 신을 준비할 때마다 제 안에 있는 감정이나 경험들을 꺼내 쓰거나 그걸로도 부족하면 상상을 해요. 벌어져선 안 될 상상을 하며 그 감정을 꺼내 쓰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고갈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감독님의 디렉션이 굉장히 큰 힘이 되더라고요. 감정을 끌어내주신다고 해야 하나, 그게 어떤 면에서 보면 디렉터로서의 장기가 아닌가 싶어요(웃음).”
‘이웃사촌’의 유대권에 대해 정우는 “감정의 진폭이 큰 캐릭터”라고 평했다.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이번 작품 찍을 때 감독님이 ‘절대 운동하지 마’라면서 당부에 당부를 하시더라고요(웃음). 그 신도 보면, 그냥 옷 벗고 뛰는 게 시나리오에서만 본다면 멋스러울 수 있는 신이거든요. 마치 슈퍼맨처럼 옷을 벗고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러길 원치 않으셨어요. 그 모습이 처절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게, 히어로 느낌이 아니라 소시민이 발버둥치는 느낌이길 원하신 것 같아요. 반어법적인 느낌으로, 그 신에서 배경음악은 또 레트로 풍이어서 신 자체의 분위기와는 또 다르거든요. 그런 식으로 ‘웃픈’ 느낌이 나길 원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작품을 ‘웃플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 밖의 이야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촬영을 마치고 2년여 표류해야 했던 ‘이웃사촌’의 뒷이야기는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도 꼬리표처럼 달라붙고 있는 상황. 함께한 주연배우 오달수의 연극‧영화계 ‘미투’ 가해자 지목 이후 개봉일자가 무기한 연기됐던 ‘이웃사촌’이었다. 지난해 오달수를 둘러싼 논란이 내사 종결로 마무리되면서 겨우 빛을 볼 수 있게 됐지만, 작품보다 먼저 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지는 것에 배우로서는 안타까움이 더 클 터다. 그러나 정우의 대답은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웠고, 담담했다.
“저도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보게 됐어요. 감회가 참 새로웠죠. 그때 당시 촬영했던 기억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같이 막 교차되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던 것 같아요. 한편으론 사실 영화라는 게 개봉을 하고 안 하고는 배우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니 저로서는 제작진 분들의 생각을 믿으면서 기대할 뿐이었던 같아요. 이게 제 살붙이 같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저 응원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죠.”
부산 출신으로 부산 사투리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생활 연기’라는 호평을 들었던 정우는 “서울 말을 써도 그런 말을 해주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진=영화 ‘이웃사촌’ 스틸컷
작품에서 배우 자신의 이야기로 조명을 옮겨 보자면, 정우는 유독 ‘생활 연기’가 찰떡처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 배우다. 특히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살짝 껄렁하면서도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하면 배우와 캐릭터가 한 몸이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 ‘바람’의 짱구는 정우의 학창시절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해도, 드라마 ‘응답하라1994’의 쓰레기처럼 애드리브와 실제 대사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정우가 부산 사투리 캐릭터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실감하게 된다. 이번 ‘이웃사촌’의 대권 역시 부산 사투리를 사용한다.
“저는 연기할 때 ‘이 캐릭터가 나라면 어떻게 말을 할까’를 생각하면서 해요. 스토리에 맞게 감정을 덮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하니까 그걸 생활 연기, 친근한 연기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딱히 생활 연기를 잘하는 비결은 없어요(웃음). 그냥 입에 붙을 때까지 계속 대사를 치는 것뿐이죠. 아무래도 제가 부산 출신이다 보니 부산 사투리를 생활 연기로 보시는 것 같은데, 근데 제가 표준어로 해도 생활 연기라고 하시던데요(웃음). 부산에서도 20년, 서울에서도 20년씩 반반 살아서 그게 적응이 돼서 그런가 봐요.”
배우에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연기가 있다는 것은 강점일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이미지가 과하게 각인된다면 엇비슷한 캐릭터로만 러브콜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대중에게 식상한 연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위험이 있는 탓이다. 이에 대해 정우는 “사투리를 사용하는 캐릭터냐 아니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작품 선택에서)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고 했다.
“말이란 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 중 가장 쉬운 수단이고, 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할 뿐 그 이상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아무래도 조금 눈에 띄는 억양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그런 (사투리) 정서가 느껴지니까 대중이 보시기엔 ‘어, 전에 봤던 모습이 이번에도 좀 있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땐 그 캐릭터들이 아예 다 다르다고 봐요. 제가 해 왔던 장르가 휴먼(드라마)이 많기도 하고, ‘응답하라’나 ‘바람’이 좀 강하게 각인이 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이제 장르를 바꾸면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시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저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게 많거든요. 액션도 근사할 것 같고, 공포물이나 코미디도 재밌을 것 같아요. 지금 준비 중인 카카오TV ‘이 구역의 미친X’도 로맨틱코미디라서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캐주얼하고 밝은 캐릭터거든요. 그런 걸 보시면 기존에 봤던 정우의 캐릭터와 또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